그냥 닥치면 닥치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아주 여여하고 즐겁게
하늘이 딱딱 비벼져서 곤죽이 돼서 내려온다 하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말고 그렇게 사세요
그 생각이 문제입니다. 생각이요! 해골을 놓고도 그 해골과 자기와 둘이 아닐 때 비로소 자기를 아는 겁니다.
옛날에 이런 예가 있었습니다. 묘지가 두 개가 있는데 ‘너 저기에 묘지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아비 거고 하나는 자식 거니라. 그런데 양쪽에 구멍이 뚫렸느니라. 그런데 아비가 자식한테로 가면 자식으로 하나가 되고, 자식이 아비한테로 가면 아비로 하나가 되니 그건 무슨 연고인가?’ 하고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때에 스물 몇 살인데 말입니다. 알 게 뭡니까? 가만히 생각을 하는데 아, 발이 떼어 놓아져야죠. 그래서 3일을 그냥 그것 때문에 앉아 있었어요. 그러다가 ‘아하!’ 이럭하고선 일어났죠. 생각을 해 보세요. 영에다 영을 넣어도 둘이 아니요, 이쪽 영을 이쪽에다 넣어도 둘이 아니요, 만 불을 하나에다 넣어도 둘이 아니요. 이랬으니 어찌 공했다고 부처님께서 말씀 안 하셨겠습니까? 이 묘한 법을 말입니다.
질문자1(남): 감사합니다.
질문자2(남): 큰스님께 질문을 준비해 오면 법문하시면서 항상 먼저 말씀을 하시기 때문에 질문할 것조차도 없습니다. 그러나 준비해 왔으니까 여기에 모이신 여러 불자님들을 위해서 질문 올리겠습니다. 큰스님께서 진리의 법을 모두 설하셨지만 미혹한 저희들이 실천하는 것을 또 잊어버렸습니다. 죄송스럽게 생각하며 더욱 정진할 것을 약속드리면서 질문 올리겠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불성이, 주인공이라는 나의 근본 생명, 영원한 생명이 우주 전체를 싸고 있는 근본처라고 항상 저희들에게 간곡히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들은 이 근본처를 알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재가불자들 가운데 부처님의 형상을 조성해 놓고 남의 사주를 봐 주며, 사찰에서도 부처님의 진리 공부는 뒤로 미루고 세간과 중생들이 즐겨 찾는 각종 행사에만 치중하는 사례가 날로 늘어가고 있으며 그 수효가 점차 증가하여 대부분의 불자들이 이러한 것이 부처님의 법인 것처럼 알고 생활화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재가자나 출가자가 부처님의 진리를 이런 형태로 받아들이는 현실적인 여건 속에서 우리 불자들이 첫째, 금강과 같은 흔들림 없는 공부 방법과 둘째, 이분들을 제도할 때의 주의 사항, 그리고 이분들과 자손들이 받는 과보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법을 설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큰스님: 하여튼 그냥 간단히 대답을 해 드리려고 했는데 말이 또 조금 붙어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영원히 자기는 자기대로 발견하기가 어렵죠. 그리고 과보라고 하는 것도, 지금 여러 가지의 과보가 딴 데 있는 게 아니라 현실에 있는 겁니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날 때 자기가 아는 대로 자기 차원대로 모습을 가지고 나옵니다. 왜냐하면 눈이 떠지질 않고 보질 못하고 듣질 못하니까 그냥 아무거나 짝 짓는 데로 들어가게 됩니다. 아무거나 짝 짓는 데로 들어가서 그 모습을 가지고 나오게 됩니다. 닭이다, 토끼다, 뱀이다, 두꺼비다, 올챙이다 뭐 갖가지 짐승들이 짝을 짓는 데로 그냥 들어가는 겁니다. 사람인지 뭔지도 모르고요. 그렇게 되면 뭐가 됩니까. 그 모습으로 나오게 되면 천 년이 가도 그 모습을 벗고 인도환생을 하기가 참 어렵다 이런 말입니다.
내가 항상 우리 스님네들한테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신도들한테도 그렇고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한 철 날 때에, 먹고 살기 위해서 온통 마음으로 밟아 뭉그러뜨리고 내치고, 기를 쓰고 올라가고 떨어지면서 남의 거를 뺏어 먹고 죽이고 살리고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아나간다면 그 모든 모습을 그대로 가져오게 되는 거니까, 닭으로도 태어나고 그렇게 된다면 이건 칼산지옥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산 거를 칼로 턱 턱 쳐서 넣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화탕지옥이다 하면 이건 물에다가 그냥 텀벙텀벙 넣어 가지고 그냥 끓여서 털을 뽑습니다, 모가지 이렇게 해서. 닭뿐이 아니에요. 생선도 그렇고요. 살아서 펄펄 뛰는 걸 그냥 도마에다 놓고 탁 탁 하고 자르니 칼산지옥이 아니고 뭡니까? 눈물을 흘리고 아무리 하소연을 해도, 소도 그렇고 개도 그렇고 염소도 그렇고 아무리 음매음매 하소연을 모두가 해도 사람은 그 말을 못 알아들어요. 하소연을 해도 어쩔 수 없이 그냥 목이 졸려서 죽는다거나 칼로 찔려서 죽는다거나 도끼로 머리를 맞아서 죽는다거나 해도 옴패부득 자기는 그 모습을 타고났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가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나오는데, 수명이 짧고 길고 이런 게 있지 않습니까? 1년 동안에 몇 번 알을 낳고 몇 번 자기 새끼를 낳고 이렇게 하면서 죽음을 당하는 그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지옥이 따로 있어서 받는 줄 알지 마세요. 우리들이 지금 하고 있는 그 자체가 바로 지옥, 천당입니다. 자기네들이 자기네들 아래로 내려간 그 모든 것들을 볼 때 둘 아니게 생각을 해야죠. 어떤 때는 산 거를 놓고선 칼로 탁 칠 때에 고개를 홱 돌립니다. 너무나 아휴! 보기가 귀찮아서 그래요. 그렇더라도 그 본 것만은 ‘아! 잘됐구나. 네 모습이 그게 뭐냐. 내 이 물방울 하나로 들어온다면 그냥, 찰나에 내가 되는 거고, 찰나에 또 블랙홀에서 별들을 출생시키듯이 그냥 나가니까 참 좋겠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을 하셔야지 ‘나는 못한다.’ ‘나는 이만하면 됐지.’ 이런 생각, 양면을 다 버리십시오. 버리시고 의연하게 그대로 닥치는 대로, 가는 거 잡을 것도 없지만 또 마다할 것도 없고 그냥 닥치면 닥치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아주 여여하게 즐겁게, 하늘이 딱딱 그냥 비벼져서 곤죽이 돼서 내려온다 하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말고 그렇게 사세요.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합니까?
질문자2(남): 감사합니다.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질문자3(남): 큰스님 은혜에 감사드리면서 질문드리겠습니다. 나의 근본은 전지전능한 한마음이라는데 어째서 미생물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윤회에 빠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자신의 업식에 가려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업식이 있기 이전에는 그대로 밝은 한마음 자리였을 텐데, 어떻게 하여 무명에 빠지고 업식이 생기게 되었는지 정말 알고 싶습니다.
큰스님: 지(地), 수(水), 풍(風) 세 가지가 한데 합쳐져서 그냥 그 암흑을 돌다가 부딪치고, 부딪치니까 화(火)가 일어난 거야. 안 그래? 일어나서 그것들도 다 생명이 돼 버렸어. 생명이 돼 버렸단 말이야. 그러다가 보니까 자기네들이 그렇게 집을 지어 놓고 자기네들이 그 미생물로 화한 거야. 연방연방 그냥. 그러면 그 미생물로 태어나서 모르면 할 수 없는 거지, 어떡해! 응?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물리도 터지고 지혜도 생기고 천체를 다 헤아리고 나갈 수 있고 대치할 수 있고 안아들일 수 있고, 이렇게 지혜가 터져야 자기가 벗어날 수 있는 거지. 만약에 뱀으로 태어났다 하면 뱀으로 살던 습이 있어 가지고 자기가 살던 데로 놀러 가려고 그러지 자기하고 맞지 않는 데는 가려고 하지 않거든. 그렇기 때문에 그 허물을 벗지 못하는 거야. 모두가 다 그래. 사람이 법도를 못 지키고 사람답지 못한 데로 빠져나가는 것도 자기가 좋으니까 가는 거야. 잘 하라고, 잘 살라고 이렇게 일깨워 주는 데는 싫거든. 그건 싫으니까 안 가는 거야. 그러니까 사람으로 안 가고, 만약에 독사나 짐승으로 태어나서 그 모습을 벗지 못하는 이유는 그게 마음의 차원 때문이야.
질문자3(남): 감사합니다. 아직 확실히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큰스님: 왜 알질 못해? 내가 대답을 해 줬는데…. 너로만 있는 게 아니야. 너로만 있는 게 아니라 너도 나중에 청년이 되고 아버지가 되고 또 할아버지가 되고 이렇게 자꾸 뒤바뀌어 가면서 요다음에 또 어린애가 되고, 여자가 될는지 남자가 될는지 그것도 모르고, 네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나오게 돼 있어. 이제 알아듣겠니?
질문자3(남): 스님, 그 과정은 알겠습니다만 그렇게 윤회하게 되는 시작의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왜 그렇게 시작이 되었는지?
큰스님: 아이고, 시작은 너한테서부터 시작이 되는 거지. 하하하….
질문자3(남): 그러면 죄송하지만 한 가지 더 질문드리겠습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경우지만, 주인공에게 관한다 하더라도 명확하게 답을 얻은 경우가 드문 것 같고, 잘 안되는 것도 법 잘되는 것도 법이라지만 제가 바로 가고 있는지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큰스님: 바로 가든지 외로 가든지 뭐 아래로 내려가든지 무조건 네놈이 하는 거니까 네놈한테다 놔 버려. ‘너만이 일체를 다…, 잘못하는 것도 너니까 잘하게 하는 것도 너 아니냐, 이놈아!’ 이렇게 해 버려, 그냥.
나는 시키는 대로 이렇게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이 승가대학 기금 마련에 동참하시길 바랍니다. 아까 얘기했죠? 둘이 아니라고요. 영원히 둘이 아니라고요. 스님네들이 따로 있고 여러분이 따로 있는 게 아니죠. 부모 형제 다 버리고 스님이라는 소임을 맡아 가지고 이 세상에 나왔는데 말입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노력하고 모두 응신이 돼 주시는 그 스님네들이 많이 발전을 해서 배출돼야 여러분께서 아마 다 승천하실 겁니다.
그리고 또 두번째는 여러분이 하신 거는,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갔을 때에 만약에 비싼 물건을 사려면 돈을 많이 가져가야 하고, 싼 물건을 사려면 돈을 조금 가져가야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 집안 형편껏 어떠한 문제가 닥쳤는지, 큰 건지 작은 건지 그거를 생각하셔서 큰 거라면 크게 놓으시고 작은 거라면 작게 놓으시고 마음대로 하세요.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갔을 때도, 내가 돈을 주고 내 물건을 사 왔으니 돈을 준 사이도 없고 그 쪽에서도 물건을 준 사이도 없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예전에 스님네들이 “나는 너한테 받은 사이도 없고 내가 너 준 사이도 없느니라. 그러나 부처님한테서는 너에게 그런 공덕이 갈 수 있고 선물이 갈 수 있고 복덕을 이룰 수가 있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오늘 승가대학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스님네들을 위해서, 또 앞으로는 자기네들을 위해서 하신다면, 그 대가는 거짓말 없이 꼭 갈 겁니다, 내놓은 대로. 일억이 걷히든지 몇천이 걷히든지 여러분이 내놓으면 내놓는 대로 그 대가는 거짓 없이 증명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거짓이 없거든요. 아주 보증 수표거든요. 하하하…. 그러니 모두 동참해 주십시오. 제가 이런다고 건방지다고 하지 마시고요. 조그마큼 도와주신다 해도 여러분의 그 애로는 풀리실 겁니다.
여러분, 아까도 얘기했듯이 여러분의 마음이 이 세상 일체 만물과도 다 가설이 돼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체 모든 우주의 별성들하고도 모두 직결이 돼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짓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정말 요다음에 한번 그 자리에 가서 혼날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가 여럿이 뭉치면 이루어 내고 흩어지면 살 수 없다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서…. 어느 사람도, 기독교인 가톨릭교인이라 할지라도 한 불교 안에, 한 지구 안에서 지구를 몸뚱이 삼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지구를 우리는 마음으로 벗어나서, 지구가 나중에 팽창되거나 타 버리는 일이 없이 수명을 길게 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지구라는 우리 집이 뚫어진 게 있으면 에너지를 다 갖다가 고치고 해서 쓸 수 있게끔 우리는 마음을 한마음으로 내서 해결합시다.
그러고도 스님네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각자 여러분을 위해서 동참하신다면 아마 자손들 대까지도 세세생생 나갈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이제 내려가도 됩니까?
(앞쪽에 앉아 있는 학생들을 보시며) 감사해요. 정말 어린 싹들이 앞으로 자기 나무는 자기 뿌리를 믿어야 푸르르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꼭 아주 증명해야 돼요. 알았죠?
학생 일동: 네.
큰스님: (합장하시며)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