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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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부처님 위신력은 ‘불가사의’
버들 감로 옥동자 구룡 등으로 불법의 신성함 설명
일체만물로 합일된 법의 실상 은유적 표현 돋보여

[원문]
양류초두감로쇄(楊柳稍頭甘露灑)
연화향리벽파한(蓮華香裏碧波寒)
칠보지중표옥자(七寶池中漂玉子)
구룡구리욕금선(九龍口裡浴金仙)
-대승사 대웅전

[번역]
버들로 머리를 감고 감로를 뿌리네
연꽃 향기 속에 푸른 파도가 차갑도다.
칠보 연못 속에 옥동자를 띄우고
아홉 용의 입이 금빛신선의 몸을
깨끗하게 닦도다.

[선해(禪解)]
요즘 내가 승가에 몸담고 있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게 있다. 일전에 불교TV 회장 성우 스님과 말씀을 나누면서 나온 말이 바로 스님들의 노후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1980년대 초 성우 스님은 홀로 파계사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던 한 노스님의 병이 위중한 것을 알고도 진료조차 하지 못했던 상황을 회고했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 상황이 그대로라는 말씀이었다.
정부도 IMF 이후 기초생활보장법을 만들어 최저 생계비를 밑도는 사람에게 소득과 생계비의 차액을 보조해 주어 큰 보탬이 되게 만들었다. 하물며, 평생을 승가에서 보낸 노스님들의 노후복지가 되지 않고 있으니 마음이 아프다.
일전에 ‘불교미래사회연구소’에서는 “승려노후복지가 안 되면 스님들은 사라지고 사찰 건물만 남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불교발전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의미심장한 분석을 내 놓은 적이 있다. 현재의 조계종 승려 인원 중 세납 50대 이상이 45%를 넘어 서고 있고 급속도로 승가도 고령화로 접어들고 있으며 반대로 30대 이하는 19.2%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 있어 불교지도자들이 최선책으로 내 놓아야 하는 게 바로 ‘승려노후 복지 대책’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평생 노스님들은 부처님의 제자로 살아오면서 ‘물질과 경제적’여유를 가질 수도 없다. 만약, 이러한 고령화가 지속된다면 이후 어쩌면 한국 사찰은 엉망이 될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더욱이 이 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무려 65.4%의 스님들이 앞으로의 노후 생활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냈다. 출가자의 노후를 위해 정부는 무대책일 수밖에 없으며 종교자체의 복지 대책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이 승가는 일미화합의 공동체 조직이다. 궁극적으로 스님들이 수행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노후 생활이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원불교나 천주교 등 다른 교단에서는 성직자들의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조계종은 건강 검진조차 실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공단의 한 간부는 종단에서 전액 지원이 힘들다면 일부라도 의료비 지원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한국불교 종단의 복지를 단적으로 지적한 사례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불교 인재 양성이다. 30대 이하 출가자가 전체의 20%에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앞으로 불교의 미래가 암담하다. 일찍이 인도의 불교를 정착시켰던 아쇼카 왕은 기원전 2~3세기에 인도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룬 인물이다. 수십 명의 형제와 500여명의 신하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뒤 통일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전쟁에서 죽인 수십만 명의 피가 강물을 이루어 흐르는 것을 보고 참회해 불교에 귀의한 뒤 동물병원까지 만들 정도로 인간과 모든 생명을 위한 사회복지 정책을 제도로 정착시켰다.
오늘의 주련여행은 사불산 대승사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산마루에는 사면(四面)석불상이 있는데 <삼국유사> ‘사불산조’에 587년(신라 진평왕9) 커다란 비단 보자기에 싸인 사면석불이 공덕봉(功德峰) 중턱에 떨어졌는데, 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사불암이었다고 한다. 왕이 이 소문을 듣고 그곳에 와서 예배하고 절을 짓게 하고 ‘대승사’라고 사액(賜額)하였다. 망명 비구(亡名比丘)에게 사면석불의 공양을 올리게 하였고, 망명 비구가 죽고 난 뒤 무덤에서 1쌍의 연꽃이 피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뒤 산 이름을 사불산 또는 역덕산(亦德山)이라 하였다.
절로 들어서는 마당 입구에는 늙은 나무가 양쪽으로 서 있어 마치 대문처럼 보이는데 왼쪽으로 조선 후기에 세워진 삼층석탑이 있다. 대웅전은 용마루 치미의 물고기를 물고 승천하는 용, 꽃 창살의 모습이 매우 아름다운 건물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정성이 모아진 듯한 수미단과 만나게 되고, 천장엔 단색의 한지로 만든 연등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웅전 목각후불탱은 남아 있는 유례 중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걸작으로 이름난 조각이다. 조선후기에 조성한 아름답고 섬세한 목각의 후불탱으로, 그 관계 문서 등과 함께 보물 제575호로 지정되었다. 본래 영주 부석사(浮石寺)에 봉안되어 있던 것을 1869년(고종 6) 무렵 대승사로 옮겨왔다. 후에 부석사에서 반환을 요구하였는데 대승사는 반환 불가의 입장을 고수하였고, 1876년 대승사가 부석사의 조사전 수리비용을 부담한다는 조건으로 일단락되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목각탱은 예천 용문사와 상주 남장사 등에 남아 있다. 목각탱의 조성지는 모두 경상북도에 한정되어있고 조선 후기 불교문화의 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대웅전 뒤쪽으로 삼성각, 자유롭고 편안한 느낌의 응진전, 조금 아래 단청이 퇴색되어 고고함을 느끼게 하는 극락전과 명부전, 그리고 대승선원이 있다. 대웅전 앞엔 탑이나 석등은 없다. 그러나 2기의 봉로대와 탐스럽게 가꾼 나무와 조화를 이룬다
이 절에는 대승사목각탱부(木刻幀附) 관계문서(4장)와 사적비(寺跡碑) 및 아미타불상에서 나온 <금자화엄경(金字華嚴經)>(7권), 불사리 1과(顆) 등이 있다. 부속암자로 (반야암(般若庵) ·묘적암(妙寂庵) ·상적암(常寂庵) 등이 있는데, 특히 반야암은 기화(己和)가 <금강반야경오가해설의(金剛般若經五家解說義)>(1415)를 지은 곳으로 유명하다. 대웅전의 주련 내용은 ‘일체만물로 합일된 부처님법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양류초두감로쇄 연화향리벽파한: 버들로 머리를 감고 감로를 뿌리고 연꽃 향기 속에 푸른 파도가 차갑도다.’
한국 사찰주련들을 읽어 보면 언뜻, 한편의 뛰어난 한시를 보는 것 같지만 이 속에는 뛰어난 선문(禪文)이 깃들어 있다. 대개 대자대비의 관세음보살이 양류관음(楊柳觀音)으로 현신할 때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쥔 모습으로 나타나는 데 불교의 버들은 매우 상징적이다. 즉, 부처님 법의 향기는 버들로 머리를 감을 만큼 많은 양의 감로수가 극치를 이루고 있으며 붉은 연꽃향기 속에 일렁이는 푸른 파도가 차가울 정도로 넓고 깊다는 뜻이다.
‘칠보지중표옥자 구룡구리욕금선: 칠보 연못 속에 옥동자를 띄우고 아홉 용의 입이 금빛 신선의 몸을 깨끗하게 닦도다.’
금선은 부처님을 가리킨다. 보석으로 가득한 연못 속에 옥동자를 띄우고 구룡이 여의주를 가진 입으로 부처님의 몸을 닦는 모습은 바로 신성한 아홉 마리의 용이 부처님을 극진하게 모시고 있음을 뜻한다. 바로 불가사의한 부처님 위신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내용이다. 즉, 부처님의 법을 설화를 통해 매우 현실적으로 인식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지극한 부처님의 법열을 내포한다. 말하자면 대승사 대웅전의 주련 속에는 절대적인 부처님의 위용을 버들과 감로, 옥동자, 구룡을 통해 그 신성함의 극치를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 조계종 원로의원
2009-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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