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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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업을 쉬고 정신을 길러라
[원문]
若有此事 卽是成道之因 唯自知 不可向人說. 或靜園林中 行住坐臥 眼見光明 或大或小 莫與人說 亦不得取 亦是自性光明. 或夜靜暗中 行住坐臥 眼見光明 與晝無異 不得怪 是自心欲明顯. 或夜夢中 見星月分明 亦自心諸緣欲息 亦不得向人說. 夢若昏昏 猶如陰暗中行 亦是自心煩惱障重 亦自知. 若見本性 不用讀經念佛. 廣學多知無益 神識轉昏. 設敎只爲標心. 若識心 何用看敎. 若從凡入聖 卽須息業養神隨分過日. 若多嗔喜 令性轉 與道相違. 自無益. 聖人於生死中自在 出沒隱顯不定. 一切業拘他不得 聖人破邪魔.
“만약 이런 일이 있으면 부처를 이루는 씨앗이 되리니 혼자서만 알고 있지 남에게는 말하지 말지니라. 혹 고요한 숲 속에서 거닐고 머무르고 앉고 눕다가 크고 작은 광명이 보이더라도 남에게 말하거나 집착하지 말지니라. 이것도 자기 성품의 광명이니라. 혹 어두운 밤중에 행주좌와(모든 일상적인 행동) 하다가 대낮같은 광명이 보이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지니라. 모두 자기의 마음이 밝아지려는 것이니라. 혹시 꿈속에서 별이나 달이 분명하게 보이면 자기 마음의 온갖 연이 쉬려는 것이니, 역시 남에게 말하지 말지니라. 꿈속이 어두워 캄캄한 곳을 다니는 것 같으면 자기의 마음이 번뇌의 장벽으로 무겁다는 것이니, 스스로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본성을 보게 되면 경을 읽거나 염불을 할 필요가 없느니라. 두루 배우고 많이 안다고 해도 별 이익이 없으며, 의식만 오히려 어두워지느니라. 가르침을 만들어둔 것은 마음을 가리켜 설명하고자 한 것이니, 마음을 알면 경전을 볼 필요가 어디에 있겠느냐. 만약 범부가 성인의 경지에 들고자 하면 업을 쉬고 정신을 길러서 분수에 맞게 세월을 보내야 하느니라. 성을 자주 내거나 기뻐하는 것이 많으면 도(道)에 어긋날 뿐 아니라 스스로를 파는 것이라 아무런 이익이 없느니라. 성인은 생사 가운데를 자유롭게 드나들며, 숨거나 나타나는 것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일체 업이 그를 구속하지 못하며, 능히 삿된 마구니들을 깨뜨리느니라.”

[해설]
어떤 보살님이 “정진하는 중에 환영이 보이는데, 왜 보입니까? 환영이 안보여야 깨칠 수가 있다는데 왜 환영이 보입니까?” 라는 질문을 한 적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을 해드렸습니다. “정진을 하다 보면 맑아지니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도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점점 공부가 잘 되어가고 있는 과정이니까 계속 정진하십시오.” 공부를 많이 해서 식(識)이 드러나면 미래의 일까지도 느끼게 된답니다. 우리 마음은 천년 전이나 천년 후나 그대로이고 과거 현재 미래가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환영에 끄달려가지 말고 남에게 말하거나 집착하지 말라고 달마 스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도 자기의 성품의 광명이니라. 혹 어두운 밤중에 행주좌와(行住坐臥) 하다가 대낮 같은 광명이 보이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지니라.’
걸어다니거나, 멈춰 서있거나, 앉아있거나, 누워있거나 간에 한 생각 놓지 않는 그런 수행 가운데 광명이 혹시 나타나더라도 절대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수행하는 과정 중에 나타날 수 있는 경계입니다. 보살님들도 수행하는 중에 이런 경계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혹시 꿈속에서 별이나 달이 분명하게 보이면 자기 마음의 온갖 연(緣)이 쉬려는 것이니 역시 남에게 말하지 말지니라.’
별이나 달이 보이는 것은 우리 불성이 맑아지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것은 전생의 업이 녹는 증거입니다. 만약에 불성이 드러나서 성품을 보게 되면, 경을 읽거나 염불을 할 필요가 없다는 얘깁니다. 이것은 오랜 수행을 통해서 업이 맑아지고 밝아졌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만약 범부가 성인의 경지에 들고자 하면 업(業)을 쉬고 정신을 길러서 분수에 맞게 세월을 보내야 하느니라.’
경전의 가르침은 우주의 근본 실상, 본래 자리를 일러 주는 겁니다. 수행을 통해서 깨닫기 위한 길을 일러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를 알면 경을 볼 필요가 없다는 얘깁니다. 왜냐하면, 경이 그 자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수에 맞게 세월을 보내야 한다’는 말씀은 이런 저런 바쁘다는 핑계가 있지만 사실 다가오는 죽음이 더 바쁘거든요. 할 일은 미룰 수가 있지만, 죽음은 미룰 수가 없습니다.
‘성인은 생사 가운데를 자유롭게 드나들며, 숨거나 나타나는 것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일체 업이 그를 구속하지 못하며, 능히 삿된 마구니들을 깨뜨리느니라.’
너무 성을 내거나 즐거움에 빠져도 도(道)에는 도움이 안 됩니다. 도를 깨쳐 불성의 광명체가 드러나 안과 밖이 없는 사람들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자기 몸을 마음대로 나툴 수가 있습니다. 불성자리, 광명체가 우주와 하나가 된 경지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런 경지에 마음대로 몸을 나툴 수가 있고 걸림이 없다는 얘깁니다.
■ 청주 혜은사 주지

2009-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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