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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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빈궁·괴로움 모두 망상에서 생겨
[원문]
初發心人 神識總不定. 若夢中頻見異境 輒不用疑 皆是自心起故 不從外來. 夢若見光明出現過於日輪 卽餘習頓盡 法界性見.
“‘빈궁과 괴로움이 모두 망상에서 생겨나니, 이 마음을 깨달아 서로서로 타일러서 힘쓰게 하되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자연 그대로이다’ 라는 생각만 내면 바로 여래의 지견(知見)에 들게 되리라. 처음 발심한 사람은 신식(神識)이 안정되지 못하니 꿈속에서 자주 이상한 경지를 보게 되더라도 의심하지 말지니라. 모두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지 밖에서 온 것이 아니니라. 꿈에 광명이 햇빛보다 더 밝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면 남아있는 습(習)이 한꺼번에 없어지고 법계의 성품이 나타나리라.”

[해설]
우리가 가난하고 고통 받는 모든 일들은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사실이 아닌 것에 끄달려서 분별·집착하는 가운데 생겨납니다. <금강경>에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가르침이 나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베풀더라도 집착하지 말라! 이 말은 우주를 그대로 하나의 마음으로 보고 행하면, 그 행위는 우주를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새지 않는 무루복(無漏福)이 된다는 뜻입니다.
육바라밀행 가운데 첫 번째 수행 덕목이 바로 보시바라밀입니다. 베품을 통해서 바라밀을 이룬다는 말은 곧, 성불한다는 말입니다. 실상을 바로 알고 큰마음을 갖고 행하면 우주를 상대로 무한의 복이 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상대에게 무언가를 줄 때 바라는 마음에서 행하기 때문에, 내가 행한 만큼 다시 돌아옵니다. 평생 우리가 살면서 물질적으로 베푼 것이 없다면, 이 사람은 빈궁함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인과의 원리라는 것은 털끝만치도 속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행한 것은 남이 몰라도 자기 자신은 잘 알고 있잖아요. 자기 자신은 누구입니까? 부처님을 속일 수가 있습니까? 자기 자신이 부처님입니다. 우리가 느낄 수가 없어서 그렇지, 본래가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이기 때문에 내가 한 것을 내가 알고 있고, 남이 몰라도 나는 알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내가 행한 것은 언젠가는 나에게 돌아오도록 되어있습니다. ‘자연 그대로’ 라는 말은 우주 실상 그대로 하나로 보고 행하면 반드시 성불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절에 와서 나름대로 정진을 해봐야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처음엔 잘 안되거든요. 처음부터 잘 된다고 하면 전생에 수행을 많이 하셨던 분들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정진하는 도중에 온갖 생각들이 다 일어나잖아요. 꿈속에서도 이상한 경지가 나타나는데, 마음의 작용이니까 이런 것에 끄달려가지 말라는 얘깁니다. 결국 내 마음에서 내가 만들어 놓는 겁니다. 그래서 달마 스님께서 집착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꿈속이 아니더라도 정진하는 중에 밝은 광명체가 비춰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본래 자성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햇빛이 나기 때문에 밖을 환하게 볼 수가 있죠? 그런데 구름이 끼면 볼 수가 없잖아요. 태양에 구름이 없으면 지상을 환하게 비출 수 있지만, 구름이 끼면 환하게 밝힐 수가 없듯이 우리 성품 자리도 태양과 같은 광명체입니다. 광명을 그대로 쓰는 분들이 성인이고, 광명이 있음에도 그것을 보지 못하면 중생이라고 그럽니다. 불성(佛性)은 부처님과 똑같은 광명으로 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과거로부터 익혀온 잘못된 견해로 인해 만들어 놓은 업(業)이 광명으로 된 기운을 가리고 있는 겁니다.
우리 불성을 싸고 있는 탁한 기운들을 정진을 통해서 녹이고 녹이면 빛이 드러나게 되는 겁니다. 과거로부터 익혀온 습이 덮고 있는 것을 수행하면 맑은 기운이니까 탁한 기운을 정화시켜서 본래 불성이 환하게 빛을 내는 겁니다. 빛이 나는 것이 성품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이 원리는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목이 탈 때 흙탕물이라고 하면 ‘후~’ 하고 불고 마시잖아요. 옛날 시골 개울물도 그렇게 마셨어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불성을 가리고 있는 탁한 기운들이 정진을 하면 드러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때 광명체 즉, 법신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쉽게 체험이 되면 그 순간에 우주의 실상을 깨치는 겁니다. 이것을 초견성(初見性)이라고 말을 합니다. <화엄경>에 보면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 발심했던 그 마음이 바로 성불이다’ 이런 의미입니다. 이 실상을 처음 체험했을 때를 얘기 하는 겁니다. 하지만 무거운 업이 다시 밀려오면 캄캄해지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바로 계속 수행을 해야 되는 겁니다. 영롱한 구슬이 때가 잔뜩 끼어 있으면 구슬을 볼 수 없듯이 여러분의 불성은 컴컴한 구름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 정진을 열심히 하면 컴컴한 것이 점점 엷어지면서 견성(見性) 체험을 할 수가 있습니다.
■ 청주 혜은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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