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 종합 > 기사보기
스스로 한걸음 떼놓을 수 있는 멋쟁이들이 되세요
여러분의 한생각이 자기를 홀랑 벗겨놓을 수도 있고
홀랑 씌워놓을 수도 있으니 참 묘한 도리입니다

이에요. 여기 아프면 여기 만져 줬다가 저기 아프면 저기 만져 줬다가, 온통 고정된 게 하나도 없으니 보현신이자 화신이죠. 생각을 했다 하면 법신이니 바로 여러분이 마음내는 거와 같습니다. 마음을 내야 움죽거릴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고 그렇듯이 말입니다. 부처 법신 화신이 동시에 돌아가면서 하나지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하나도, 어떤 거 할 때에 나라고 할 수 없는 게 부처기 때문에 없는 것이 부처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처님은 여러분이 계시는 한, 풀 한 포기가 있는 한, 물 한 모금이 있는 한 전부 부처님이 안 계신 데가 없습니다.
나는 그전에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느 산골짜기에서 나무를, 옛날에는 나무를 동이 동이 이렇게 매서 쌓아 놨습니다. 산 밑에다가 치켜 쌓아 놓죠, 겨울에 때려고요. 봄에 때기도 하고 그러려고요. 동굴 속에 있다가 밤은 늦어지고 춥기는 하고 그래서 거기를 찾아가려고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돌부리에 차여서 발톱 반이 빠졌습니다. 피가 줄줄줄줄 흐르면서 걷잡을 수 없이 아파요. 그래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 자리가 딴 자리가 없건만 내 욕심에, 뜨뜻하게 잘 욕심에 가다가 그랬구나.’ 그 돌부리도 추상같이 호령을 하면서, 자리가 따로 어디 있기에 자리를 찾아가느냐고 악을 벽력같이 썼습니다. 그러니 요런 돌덩어리 하나 부처 아닌 게 없고 법신 아닌 게 없고 화신 아닌 게 없습디다. 그러한데 어찌 제가 잘났다 못났다 이론으로 하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학술적인 이론으로써 해(害)를 보고, 정신계에 입각하지 못하고 나를 밝게 보지 못해서 올바르게 발전과 개혁을 하지 못한 채 불나비 날아다니듯 이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생각하셔서 자기를 먼저 믿고 물러서지 않고 찾는다면 찾을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여여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고요. 달마 대사께서도 양 무제가 그렇게 많은 시주를 했건만 공덕이 하나도 없다고 한 것을 여러분이 더 잘 아시겠죠. 왜 공덕이 없다고 했겠습니까? 소크라테스의 ‘너부터 알라’ 한 그 말 한마디가 이날까지 살아서 귀에 쟁쟁합니다. ‘너부터 알라’ 한 소리가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와 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걸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아마 저보다 더 잘 아실 거예요. 예전에 인도에서는 산에다가 송장을 그냥 갖다 놓으니까 해골이 그냥 무더기 무더기 있었죠. 그런데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거길 지나시다가 그 해골바가지를 보고 큰절을 하셨답니다. 그래서 “사생자부이신 어버이신데 어찌 이런 해골바가지에다가 큰절을 하시나이까?” 하고 제자들이 물으니 “얘야! 그런 소리 말아라. 미생물에서부터 수억겁을 거치면서 쫓고 쫓기면서 자식이 됐다 부모가 됐다가,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다시 모여서 또 자식이 되고 또 부모가 되고 이렇게 하기를 수없이 거듭거듭 해 나왔느니라. 그러니 저 해골이 바로 우리 친척도 될 수 있고 할머니도 될 수 있고 할아버지도 될 수 있고 내 부모가 될 수 있으니까 그 뜻을, 그 도리를 깊이 생각하라.” 하시니 그 제자들은 “미처 이런 도리를, 이렇게 크나큰 도리를 몰랐습니다.” 하고 엎드려서 울었답니다.
그와 같이 여러분! 여러분도 지금 현재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마는 죽으면 바로 사대로 흩어져서, 네 가지로 분류가 돼서 다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그 원점으로 돌아간 이유가 뭘까? 그 원점으로 돌아갔던 것은 다시 생산처로 투입이 됩니다. 그것이 다시 모여서 다시 누구네 집의 자식이 또 됩니다. 구름이 흩어졌다가 또다시 다른 구름하고 모이듯, 또 구름이 흩어졌다가 다른 구름하고 모이듯 이렇게 말입니다. 우리는 바로 한식구로서 마음의 배낭을 짊어지고 캠핑 나왔다가 같이 모여서 살고 같이 놀다가, 한 철 놀다가 가는 친구들이죠.
그런데 또 그렇게만 됐으면 좋겠는데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무쇠전에는 무쇠가 모여 있고 넝마전에는 넝마가 모여 있고, 금방에는 금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시장에 나가 보니까 과일도 배는 배대로 놓고 사과는 사과대로 놨습디다. 일체 다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구름과 한데 모였다가 다시 딴 구름하고 모일 때에 똑같은 차원끼리 모여요. 그러니까 종지는 종지대로 놓고 접시는 접시대로 놓고 대접은 대접대로 놓듯이 그렇게 끼리끼리, 누가 모으려고 안 해도 끼리끼리 모이죠. 여러분이 더 잘 아실 거예요.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대로 모이고 과학자는 과학자대로 모이고, 기업가는 기업가대로 모이고 상인은 상인대로 모이고 이러죠? 누가 오란 말 안 해도 장사를 하려면 시장으로 들어갑디다. 그러니 끼리끼리 모이는 건 자연적인 겁니다. 여러분 마음 차원의 그릇에 따라서 모이게 돼 있죠.
그러니 한 가족이 모인다 하는 것도 인연 따라서 모입니다. “야, 너 이놈아! 왜 그러니? 공부를 왜 안 하니? 왜 그렇게 이탈을 해 가지고 나가서 안 들어오느냐?” 하고 온통 야단을 하고 원망을 하고 욕을 하고 “저놈의 새끼, 나가서 죽지도 않아. 뭐 어째….” 이러거든요. 그런 것 좀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여러분의 자식이라 할지라도 여러분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소유물이 아니라 바로 인연 따라서 서로 만난 인연들이죠.
그래서 다섯 식구면 다섯 식구, 이렇게 모두 묶어서 같이 살자고, 같이 한 철 나자고, 우리 선방에 가서 한 철 나듯이 그렇게 사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 뭐 가질 게 있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선방에 가서 한 철 나듯이 나는 생활 속에서 그릇대로의 만남이니까 깡통끼리 모였으면, 깡통끼리 만났으면 깡통 소리가 나지요. 그러니 속상하고 그거 뭐, 말도 못하죠. 병고에 휘달리고 우환에 휘달리고 증오에 휘달리고 배신감 이런 데 또 휘달리고…. 요새 뭐 한두 건이 아니죠. 회사에 나가서도 그렇고 살아나가는 데도 그렇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잘 생각해서 사회에 나가더라도 절대로 남의 탓을 하지 마시고, 남이 미운 짓을 하더라도 ‘아하! 내가 모자랐을 때 나였구나.’ 하시고 말을 막 하걸랑 ‘아하, 내가 모자랐을 때, 그전에 내가 말을 막 하고 몰랐을 때 내 모습이로구나.’ 하고 모든 거를 몰랐을 때 나로 본다면, 크면 큰 대로 나로 생각하고 작으면 작은 대로 나로 생각한다면 여러분이 정말이지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바로 그런 자유인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불법이 국한돼 있는 게 아니라고 아까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지구 항아리 속에 붙어 사는 벌레밖에 안 됩니다. 고등 동물로서 태어났지만 사생의 뜻이, 천차만별로 돼 있는 무리들이 다 붙어서 사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으로서 벗어나야 할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벗어나게 되면 다 줄줄이 붙어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계평화를 가져오려면 우주의 섭류를 알아야 하고 우주를 평화롭게 하려면 바로 삼천대천세계의 섭류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 도리를 공부함으로써 젊은 청소년들이 서로가 서로를 알고 베풀 수 있는 자비가 근원에서 샘물처럼 쏟아질 것이고 우리 국가의 역사도 빛날 것입니다.
또 경제도 빚을 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발전을 거듭거듭 할 것이요, 세계가 평화롭도록 우리가 참 멋지게 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런 것이 여러분의 마음에 의해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똑똑하기는 하나 지혜롭지 못해서, 불법을 탄압하고 모두 유교만 숭상했기 때문에 무심 도리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고,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그 뜻을 한 번도 안으로 깊이 새겨 보지 못한 까닭에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가져오게 되었습니까?
그러니 여러분이 ‘이 교가 다르다, 저 교가 다르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는 지구라는 한 항아리에 붙어서 한 발짝도 에누리 없이 살아나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한번 자기를 돌아다볼 수 있고 자기를 생각해 볼 수 있고, 자기를 뉘우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 깊은 속에 바로 자기 부처를 자기가 가지고 있고, 아까도 얘기했듯이 마음이 움죽거리면 법신이 되고, 몸이 움죽거리면 화신이 된다는 그 사실을 여러분은 잘 아셔야 합니다. 우리 생활 속에 부처님은 항상 우리가 있는 데 계셔서, 내가 변소간에 있으면 변소에 계시고, 내가 방에 들어가면 바로 방에 계시고 들에 가면 들에 계시고 일을 할 때면 일하는 데 계십니다. 내 우스운 얘기 한마디 하죠. 예전에 스물 한 대여섯 됐을 때입니다. 서울에 백련사라는 데가 있습니다. 그때 가 보고 여직껏 안 가 봤습니다만 그때 제가 가 봤을 때는 나한전도 있었고 대처 스님들이 사셨습니다. 그랬는데 거기에 놀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시멘트로다가 네모반듯하게 해 놓은 자리가 있고 저 건너편으로 산소가 보였습니다. 그래 거기 앉아 있는데 날더러 ‘너, 아비가 자식한테로 가면 그냥 자식이 되고, 자식이 아비한테로 가면 아비로 하나가 돼 버리니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하고 물었습니다. 내가 그걸 몰라서요, 사흘을 이슬을 맞고 있었거든요. 나중에 팔다리가 움죽거려지질 않습디다.
그러나 죄 없이 그렇게 된 거는 빨리 풀리더군요. 죄가 있어서 다리가 비틀어진 거는 더디지마는 죄 없이 그렇게 된 거는 아주 다리가 빨리 풀려요. 그래서 그때 그랬죠. ‘다리를 이렇게 아프게 한 것도 너고, 또 다리를 이렇게 꼬이게 만들어 놓은 것도 너고, 풀리게 하는 것도 너다.’ 이러고는 그저 움죽거리기만 했죠. 그랬지만 그때 ‘그게 무슨 까닭이냐?’ 그래서 아이, 글쎄 마음은 체가 없다는 걸 아예 생각지도 못했잖습니까? 나를 깨달아 가지고도 말입니다. 그래서 깨닫는 거보다 깨달아 가지고 둘 아닌 도리를 알게 하는 자기의 작업이 아주 더 어렵다는 거를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앞으로 더한층 편안하게, 그냥 살아나가는 대로 사시려면 다 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다 놓고 어떻게 살라고 합니까?” 그러거든요. 여러분이 사시는 게 다 주인이 사는 거지 여러분 몸뚱이, 산 송장이 사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산 송장도 꼭 있어야만 한다는 거죠. 이 송장, 몸뚱이가 없으면요, 허망함 속에서 참나를 찾지 못하거든요. 발견 못해요. 그러니까 열반, 구경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이거지요. 그러니까 여기에 모든 것을 다 맡겨 놓고 나는 시자로서 살 수만 있다면…. 그렇게 거기 다 맡겨 놓고, 거기서 다 하는 것이니까, 아프더라도 말입니다. 보세요, 아프더라도 거기다가 다 맡겨 놓고 한마음 속에서 아프게 만든 거니까 한마음 속에서 낫게 해야죠.
그것이 과거의,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카세트란 말입니다. 카세트에 입력이 되어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솔솔 나오는 거니까 어떠한 거든지 다 거기다 맡겨 놓으시면 그것이 바로 재입력 하는 겁니다. 그러니 재입력 하면 앞서 입력된 게 바로 없어짐으로써 내 몸도 건강해질 수 있고 바로 가환도 없어질 수 있고, 내 불편도 괴로움도 편안하게 아마 쉬어질 겁니다.
예전에 한암 스님께서 “3년만 눈 뜨고 푹 쉬어라.” 아, 이러신단 말입니다. 그뿐입니까? “너는 죽어야 너를 본다.” 그래 가지고 죽으려고 차 밑에 말입니다, 밤에, 새벽같이 떠나는 차 밑에 몇 번이나 들어간 줄 아십니까? 여섯 번, 일곱 번을 들어가도 못 죽었어요. 그러고 보니까 그렇게 죽으라는 게 아니었습디다. 그러니까 모든 데서 속지 마시고 여러분은 그저 여여하게 더 가려고 하지도 말고 더 안 하려고 하지도 말고 여러분 생활 속에서 그대로 실천하십시오.
‘내 한마음 주인공’ 할 때, 한마음이라는 거는 왜 넣느냐 하면 이 자생중생들이, 의식들이 헤아릴 수가 없이 숫자가 많거든요. 의식들이 이 도리를 알면 한생각이 수천 마음, 그 모습 없는 모습으로도 화할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부처님 법은 그렇게 광대무변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부처님 아님이 없는데 여러분 한생각의 차이니까, 한생각 차이에 여러분은 중생이고 부처란 말입니다.
부처님, 여러 큰 부처님들께서도 또 여러 작은 부처님들께서도 다 한마음으로 토론을 했으니 그쯤 아시고, 이제는 생활을 그렇게 해 나가시면서 바로 실험하고 체험하시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자유인이 되시기를 바라면서 이만 그치겠습니다.

※위 법문은 1991년 9월 1일 국내지원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09-09-09
 
 
   
   
2024. 5.17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