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이 남는다는 것
삶을 살다보면 수많은 흔적을 보게 된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소복히 쌓인 하얀 눈 위에 발자국도 흔적이 될 수 있고, 가끔 신기하게 쳐다보는 파란 하늘 위에 구름을 헤치며 지나간 비행기 자국도 흔적이며, 또는 누군가 오랫동안 물건을 쓴 듯한 흔적, 누군가 내 차에서 내리고 난 후 남은 향취도 흔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듯 흔적은 눈에 보이는 것일 수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흔적이건 간에 흔적을 보고 느끼는 우리는 그 흔적의 실체가 현재 옆에 있거나 없어도 그 존재 자체를 상상할 수 있고, 되새겨지거나 아스라이 떠올릴 수 있다.
“발자국의 주인공은 어린아이인가 보구나”, “지나간 저 비행기는 어디를 가고 있는 것이었을까?”, “이 고가구에는 사용하던 그 사람의 정성이 가득 배어 있구나…”, “그녀의 향수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네…” 등등 흔적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 존재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키게 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나의 흔적을 아주 잘 남겨야 지나간 발자국이 아름다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며, 나의 잔향이 향기롭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군가 마음에 다녀간 흔적
뭐니뭐니 해도 흔적 중에 제일은 사람이 마음에 다녀간 흔적일 것이다. 누군가 마음에 다녀가고 나면 두 가지 흔적이 남는다. 아름다운 향기를 남길 수도 있고 아픈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아름다운 향기는 따뜻하고 설레게 만들어주며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반면, 아픈 상처는 시리고, 차갑고 슬프게 만들어 주며 미어지는 통증을 느끼게 한다. 특히 시간이 길었던 짧았던 간에 질긴 정이 들었던 사람이 다녀가면 그 흔적과 여운은 더욱 지워지지가 않고 오래 남기에 마음의 준비를 잘 해야만 한다.
내가 흔적의 주인공이면 나의 뒷발자국이나 여운에 대하여 느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그러나 내가 흔적이 남아 있는 필드의 주체라면 너무나 선명하게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다. 다녀간 사람에게는 흔적이 남지 않지만 흔적이란 것이 남겨진 사람에게만 깊이 새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다녀간 흔적을 문득문득 느낄 때마다 그 여운을 잊지 못하고 놓지 못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그리워하며 웃음 짓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흔적이 남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흔적은 내가 원하던 원치 않던 남기 마련이다. 누군가 마음에 다녀 갈 때도 원하건 원치 않던 예고 없이 왔다, 통보 없이 가는 것처럼.
#내가 남겨 놓은 흔적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내가 다녀간 흔적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챙겨볼 필요성이 있다. 어떤 흔적이냐에 따라 상대를 너무나 기쁘게 만들어 줄 수도 있고, 그 반대로 너무나 힘들고 슬프게 만들어 줄 수도 있기에. 힘들고 슬프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다들 겪어 보아 잘들 알지 않는가? 기쁘고 환한 웃음을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너무나 잘들 알지 않는가? 고통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기에 그 슬픔을 상대에게 남기고 싶어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 남기지 말도록 해야 한다. 행복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기에 그 기쁨을 상대에게 최대한 많이 남기려고 해야 한다. 아니 많이 남겨야만 한다. 그래야 흔적을 남기고 온 나의 뒤가 함께 풍요로워지고 밝고 따뜻해지며 사랑스러워질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 나의 흔적으로 인해 울고 있다면 비록 내가 함께 있지 않아도, 평생 만날 수 없는 사이라 할지라도 그 슬픔과 고통의 에너지는 그대로 나에게 오게 되어 있다. 반대로 누군가 나의 흔적으로 인해 뿌듯해하고 따뜻해하며 웃고 있다면 행복에너지는 수백 배가 되어 그대로 나에게 전이돼 나도 함께 환희로워지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명확한 수수법칙이다. (02) 576-75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