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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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해와 달 같은 가르침을 들어라
부처님의 지혜와 공덕 온 몸 감싸는 광명 같아
스스로 탐욕 끊고 청정해지면 그 속에 사는 것

[원문]
佛身普放大光明(불신보방대광명)
色相無邊極淸淨(색상무변극청정)
如雲充滿一切土(여운충만일체토)
處處稱揚佛功德(처처칭양불공덕)
光相所照咸歡喜(광상소조함환희)
衆生有苦悉除滅(중생유고실제멸)
-해인사 대적광전

[번역]
부처님이 널리 펴 놓으신 대광명은
형색과 모양조차 없어 지극히 청정하시네.
구름이 모든 국토에 충만하게 흐르듯이
곳곳에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고 있네.
광명이 비치는 곳마다 넘치는 환희여!
중생의 모든 고통들이 사라지고 있네.

[선해(禪解)]
천 개의 눈을 가진 관음보살로도
능히 보아 투철하게 알지 못하는 것,
이는 바람을 따라 비로 변하여
앞산으로 지나가는 것
과 같다.
법문을 들을 때에 졸지
말라,
그러니 잠자는 것이 곧
법문이다.
그러나 이는 재상의 딸
이 백정의 집으로
시집가는 격이 될 지도 모른다.

이 법문은 보월 선사의 법사(法師)이셨던 만공 월면(滿空 月面:1871~1946) 스님께서 하신 법문이다. 스님은 근대 한국 선의 중흥조인 경허 스님의 법제자로 스승의 선지를 충실히 계승해 선풍(禪風)을 일으킨 위대한 선지식이다. 법호는 만공, 법명은 월면이다.
스님은 일제강점기 선학원의 설립과 선승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선우공제회운동에 지도자로 참여했으며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31본사 주지회의에 참석해 조선총독 미나미에게 직접 일본의 한국불교정책을 힐책하기도 한 장본인이다. 이는 일제치하의 치욕스러운 불교정책을 쇄신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러한 만공 스님의 사상은 생사를 초월한 선사의 가풍이라 할 수 있는데 후에 한국불교정화운동의 사상적 근간이 되기도 했다.
위의 법문이 중생들에게 던져주는 힘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상(相)이란 모든 물체의 현상을 뜻한다. 하지만 그 상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다. 이를 깨닫게 되면 곧 부처인 여래를 보게 된다는 말씀이다.
원래 법문은 불립문자이다. 그래서 그 어떤 해석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보다 더 빠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관점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불자들은 스님들이 법문을 할 때, 꾸벅 꾸벅 조는 것을 많이 본다. 물론, 잠자는 것도 법문이라 할 수 있다. 일찍 아침을 챙겨먹고 가족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온 불자들이 때로는 가상하다. 그래서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부처님의 제자인 스님들이 법문할 때, 가급적 졸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법문 속에는 삶의 이치와 올바른 삶의 교훈들이 가득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공 스님도 법문을 할 때 조는 것은 ‘재상의 딸이 백정에게 시집가는 것과 같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우리 속담에 ‘눈 뜨고도 코 베어 간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스님들이 법문 하는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꾸벅 꾸벅 존다는 것은 마음 자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공 스님이 강조하신 재미있는 법문이 있다.
감기에 걸린 한 대중이 스님에게 물었다.
“해제인데 스님께서 설법을 하시지 않고 있사옵니다.”
만공 스님이 대답했다.
“감기가 낫거든 하겠다.”
대중이 다시 법문을 청했다.
“나고 죽는 일이 빠르오니 오늘 중으로 꼭 설법해주소서.”
만공 스님이 이르렀다.
“귀 먹은 놈에게 어떻게 설법을 할까 보냐.”
참으로 가슴을 울리는 법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귀먹은 놈이 돼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절을 찾아 부처님을 뵙기 위해 오거나 스님의 법문을 듣거나 할 때는 마음가짐을 단단히 해야 한다.
오늘은 한국불교의 성지인 해인사로 가보자. 법보종찰 해인사는 한국 화엄종의 근본도량이자 우리민족의 믿음의 총화인 팔만대장경을 모신 사찰이다.
해인사는 신라 의상 대사의 법손인 순응(順應), 이정(利貞) 두 스님이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802) 10월 16일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창건됐다. 창건의 참뜻은 해인(海印)이라는 낱말에 응집되어 있다. 이것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비롯된 것으로 일심법계와 부처님 정각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곧 있는 그대로의 세계, 진실된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객관적인 사상의 세계이며 영원한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또한 오염됨이 없는 청정무구한 우리의 본디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며, 우리의 마음이 명경지수의 경지에 이르러 맑고 투명하여, 서 있는 마음 그대로의 세계이며 그대로 비치는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모습은 한없이 깊고 넓으며 아무런 걸림 없는 바다에 비유돼 거친 파도와 같은 우리들 마음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 비치는 경지가 바로 해인삼매인 것이다. 이러한 여실한 세계가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모습이며 중생의 참 모습이다. 이것이 곧 해인삼매의 가르침이다. 청정도량 해인사는 우리 불자들의 마음의 고향이라 할 수 있으며 황량한 대지를 방황하고 있는 현대인들을 다정한 고향의 손짓으로 부르고 있는 곳이다. 더욱이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 높은 탑, 자연의 그윽함만 있는 게 아니다. 해인삼매의 한 생각, 맑은 마음 그 거룩한 도량이 바로 이곳이다. 그럼, 대적광전 주련의 내용 속으로 들어가 보자.
‘불신보방대광명 색상무변주청정.’
부처님은 어리석은 중생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연꽃 같은 깊은 가르침을 두루 펴시고 이 땅에 대광명을 펴 놓으셨다. 부처님의 이러한 은혜는 그 어떤 형상과 모양이 없으며 가없이 청정하다.
‘여운충만일체토 처처칭양불공덕.’
이러한 부처님의 공덕을 두고 중생은 물론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물과 산과 나무는 물론 구름조차도 찬양하고 있다. 그 만큼 부처님이 중생들을 위해 펼치신 공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넓고 크다는 것이다.
‘광상소조함환희 중생유고실제멸.’
그러므로 부처님의 대광명이 비치는 곳에서는 중생이 가진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오직 환희만 남게 된다는 지극한 말씀이 주련 속에 담겨 있다.
이 짧은 경구 속에서는 부처님의 지혜와 공덕이 모두 들어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부처님의 대광명을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받고 있다. 즉, 자신이 앉은 그 자리, 그 마음자리에 언제나 부처님의 광명이 해와 달처럼 비추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러한 사실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어리석음에 빠져 늘 헤매고 있다. 그러므로 사바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이 극락 같아야 극락세계에 갈 수 있듯이 항상 우리의 삶을 극락 같은 삶으로 바꿔야만 한다. 스스로 청정해 질 때 그 광명 속에 살게 된다. 또한 부처님 같은 대자비심으로 항상 남을 대하고, 우리 안에 공덕과 허물이 모두 있음을 생각하고 자신을 잘 다스려야만 한다. ■ 조계종 원로의원
2004-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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