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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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대자대비에 귀의하고 行하라
관음보살은 어머니 같은 사랑으로 중생 보살펴
시간과 공간 초월한 가르침 실천할 때 불국토 성취

[원문]
병상록양삼제하(甁上綠楊三際夏)
암전취죽시방춘(巖前翠竹十方春)
일엽홍련재해중(一葉紅蓮在海中)
벽파심처현신통(碧波深處現神通)
-운문사 관음전

[번역]
꽃병에 꽂힌 버들 항상 여름인데
바위위의 대나무는 시방의 봄 일세
한 잎 연꽃은 바다 가운데 떠 있고
푸른 파도 깊은 곳에 신통으로 나타나시네.

[선해(禪解)]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류의 정로(正路)를 명시(明示)하셨으며 우주의 본체를 구명(究明), 미신의 테두리를 벗어나 즉심시불(卽心是佛)의 사자후를 토하여 암흑천지를 밝혀주기 위해 불교를 창도하셨다.
‘자기 자신을 믿어라. 그리고 자기 자신에 귀의하라.’ 자신 이외의 신에게 의지한다거나 남을 의존하는 것은 결코 안 되는 것이라고 강력히 역설하셨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은 바로 이런 뜻을 확실히 명시하신 일대 혁명선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대도(大道)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다소 변질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또한 그 방편(方便)의 가설(假設)들이 너무나 다양다색(多樣多色)하게 나타나 불교의 진수(眞髓)와 정로(正路)를 찾기가 매우 혼미해졌다. 불교가 여러 종파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여러 곳에서 거의 매일 법회(法會)가 많이 열리고 있는 것은 그만큼 불교가 생활 깊숙이 자리하는 증거가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참으로 다행한 일이요 경복(景福)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옛날과 달리 스님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에 있는 사람들도 깊은 교리를 전문성 있게 연구하여 이론상 또는 학술상으로는 매우 높은 수준에 있다. 이런 분들이 곳곳에서 불교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 불교는 대중화 현대화 되었다. 하지만 이것을 아무런 비판과 분석조차 없이 그냥 발전현상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불교란 이론과 설명과 학술에 그 진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수행과 정견의 정진에 진실한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론이나 설명 따위는 실천의 수행과 정견의 정진을 하기 위해 그 바른 길을 찾는데 필요한 보조수단에 불과하다. 이론과 설명을 가지고 성불했다는 사실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건혜(乾慧)나 지식(知識)만으로 해탈의 정상을 점거할 수는 절대 없다는 것이다. 이를 우리 불자들이나 불교 학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 불교는 참으로 다양해 졌다. 매년 사찰들은 일반 불자들을 단기 출가로 이끄는 행사를 하고 있으며, 사찰 템플스테이도 그 중의 하나이다. 심지어 불교TV에서는 금강경을 경제에 접목시켜 우승택의 ‘32개의 경제지표로 공부하는 금강경’을 강의하고 있다. 또한 김홍경의 ‘마음의학’도 바로 불교적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다. 이것은 불교 포교적 관점에서 볼 때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불교는 승가(僧家)의 전유물이 아니며 또한 고인 물처럼 불교도 한 곳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반증한다. 흐르는 물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이와 같이 불교도 끊임없이 발전하여야만 한다. 이런 와중에 보다 중요한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근본 사상이 변화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근본 사상은 자비사상이다. 그리고 끝없는 자기 수행을 통한 성불이다. 이를 간과해서는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를 우리 스님들과 불자들은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오늘의 주련 여행은 운문사다. 운문사 사적에 의하면, 진흥왕 때 한 신승(神僧)이 북대암 옆 금수동에 작은 암자를 짓고 3년 동안 수도하여 도를 깨닫고 지인의 도움을 받아 7년 동안 동쪽에 가슬 갑사, 서쪽에 대비 갑사(현, 대비사), 남쪽에 천문 갑사(현, 운문사), 북쪽에 소보 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 갑사를 창건하였으나 현재 남아 있는 곳은 운문사와 대비사 뿐이다.
그 후 600년 원광 국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그는 대작 갑사와 가슬 갑사에 머물면서 점찰법회를 열고, 화랑도인 추항과 귀산에게 세속 오계를 내려줌으로써 화랑정신의 발원지가 되었다.
오갑사가 창건된 시기는 신라가 불교를 중흥하고 삼국통일을 위해 국력을 집중, 군비를 정비할 때였다. 이때 오갑사가 운문산 일대에 창건되고 화랑수련장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곧 신라가 서남일대 낙동강 유역으로 국력을 신장해가는 과정으로서 운문사 일대가 신라의 병참기지로 전략상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그 후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 후삼국의 통일을 위해 왕건을 도왔던 보양(寶壤)이 오갑사(五岬寺)를 중창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이 보양의 공에 대한 보답으로 운문선사(雲門禪寺)라고 사액하였다. 조선 임진왜란 때 당우 일부가 소실되었다가 숙종 때 다시 보수가 되었다. 현재는 30여 동의 전각이 있는 큰 사찰로서 규모를 갖추었다. 운문사는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 강원을 개설했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되어 승려교육과 경전연구기관으로 수많은 수도승을 배출하고 있다. 현재 많은 비구니 스님들이 이곳에서 경학을 수학하고, 계율을 수지봉행하고 있으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 청규를 철저히 실천하고 있다. 운문승가대학은 국내 승가대학 가운데 최대의 규모와 학인수를 자랑하고 있다.
그럼 관음전 주련 내용을 살펴보자.
‘병상록양삼제하/ 암전취죽시방춘: 꽃병에 꽂힌 버들 항상 여름인데, 바위 위의 대나무는 시방에 봄 일세.’
꽃병위에 꽂힌 꽃은 시들 뿐 변하지 않지만 사계는 항상 변화한다. 이러한 순환이 없다면 인간은 살수 없다. 이 대자연의 법칙 속에서도 인간의 존재는 무기력하다. 하지만 부처님의 근본 사상은 늘 있는 그대로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온 중생이 그 위대한 가르침을 실천할 때 불국토는 성취된다. 이 구절이 낯익은 독자도 있을 것이다. 낙산사 홍련암의 주련을 얘기할 때 음미해 본 구절이다. (736호 13면 참조)
‘일엽홍련재해중/ 벽파심처현신통: 한 잎 연꽃은 바다 가운데 떠 있고 푸른 파도 깊은 곳에 신통으로 나타나시네.’
관세음보살님은 한 잎 연꽃 바다 한가운데 떠 있고 언제나 정법, 상법을 두루 사바세계에 펼치면서 일체 중생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대성자모관세음보살님이다. 여기에 어머니 ‘모(母)’자가 들어가는 이유는 바로 이 세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넓은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관세음보살님은 모든 중생들의 어머니인 것이다. 중생은 그 한량없는 대자대비에 귀의하고 또 스스로 그 대자대비를 베푸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오늘 날 문명은 오직 머리와 지식만을 믿고 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사람됨이 파괴되고 있다. 어쩌면, 미래에 우리는 아주 절박한 위기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어머니와 같은 자비심을 가지신 관세음보살님이 곁에 있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힘이다.
■ 조계종 원로의원
200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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