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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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근본을 진짜로 믿는 사람은 우왕좌왕 안 합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그리고 이 세상을 한번 보세요.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이 지구가 다 망가진다고 하더라도, 누구 한 사람 비 안 오게 하고 지구를 들어서 우리 집을 망가지지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있으면 있다고 손 들어 보세요. 그것은 인력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모든 물체가 다 수명이 있습니다. 길고 짧을 뿐이지 수명이 있습니다. 수명이 있는 것을 젊어서 죽게 하는 게 좋으냐, 그냥 사는 날까지 편안하게 살다가 옷을 벗게 하고서 다시 찬란하게 태어나게 하느냐? 이런 것도 생각해 볼 점이 있죠. 그런데 태양이 축소되거나 팽창되거나 아무 상관 없이 그냥 헐렐레하고 그렇게 되면 모두가 뒤죽박죽이 돼서 일체 만물만생 초목까지 전부, 물이고 뭐고 다 파괴가 돼서 산산조각 흩어져버리죠. 암흑이 되고 말입니다.
일체가 다 그렇죠. 지금 몸뚱이 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라 하는 것도 지구와 똑같기 때문입니다. 내 몸뚱이나 지구나, 지구는 수명이 길고 사람의 몸체는 수명이 짧고 그럴 뿐이지 똑같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우리 마음은 영원한 거라, 그것은 수억겁 광년이 지난다 하더라도 수명을 집어넣는다면 까딱없을 겁니다, 아마. 이 마음의 도리가 그렇게 어마어마하고 광대하기 때문에 그대로 보배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걸 마니주(摩尼珠) 구슬이라고 하죠.
어떻게 말은 이렇게 허술하게 내던졌지만 여러분이 침착하게 이해를 하시고 잘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살아나가는 데 이 마음의 도리를 이해하고 한마음으로써 일체 만법을 다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아신다면 정말이지 세세생생을 유유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하실 분 있으면 질문하세요.

질문자1(남):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큰스님: 예.
질문자1(남): 제가 지금까지 공부한 것에 대해서 경과 보고 겸 검사를 좀 받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과거 미래 현재에 대해서 잠깐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제가 우리 선원에 나온 지 벌써 한 오 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어떠한 일에 대해 매일같이 관해 본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아주 한 번에 맡기고 관하고 놓고는 잊어버렸습니다. 아주 일 년치 이년치를 한꺼번에 관한 셈이죠. 그래도 역시 그대롭니다. 그러나 실망하지도 않고 절망하지도 않고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순리를 따를 뿐입니다. 그러나 어찌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만 바라고 입만 벌리고 있겠습니까? 남의 수박밭에 가서 수박을 서리하려고 지금 왔습니다.
제가 이 주인공 공부를 한 것에 대해 참으로 천하지대본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의 청춘도 벌써 물들었으니까 이 공부를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나왔습니다. 지구가 내일 멈추는 한이 있더라도 사실은 이 공부를 놓칠 수는 없었기에 무한한 힘과 무한한 지혜와 무한한 비전을 갖고 계신 스님과 더불어 이 대머리를 면하고자 나왔습니다. 고로, 다음에 이 자리에 제가 나왔을 때는 어찌 이 모습이겠습니까? 불문가지입니다. 한마음 내주십시오.
큰스님: 과거 미래 현재를 같이 붙들지 마십시오. 우리가 지금 하루 24시간을 살아도 고정된 게 하나도 없는데 왜 과거까지 붙들고 미래까지 붙들고 현재까지 붙들고 관을 합니까? 지금 현재에 닥치는 대로 마다하지 말고 관하고, 가는 거 잡지 말고 관하라는 거죠. 아까도 뒷 발자취 얘기 했듯이 과거는 이미 가버린 겁니다. 그리고 걸어가지 않았으니까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요. 현재는 그냥 걷고 있는 대로 찰나찰나 화(化)해서 나투면서 돌아가니 고정된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옛날에 어느 떡 파는 노파가 덕산 스님에게 과거심(過去心) 미래심(未來心) 현재심(現在心), 어떠한 마음에서 떡을 먹으려느냐고 물었다죠? 그런데 과거심도 아니요, 미래심도 아닙니다. 현재심에 점심을 먹은 거죠. 그러니까 점심이라는 그 뜻은 그냥 점심밥 먹듯 먹는 점심이 아니라 (법상을 두세 번 가볍게 쳐 보이시면서) 점! 점심입니다. 점을 찍었다는 얘기죠. 그래서 그냥 그 마음에서 떡을 먹겠다 이런 것은, 떡이라는 건 언제나 둥근 의식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점심에 떡을 먹겠다.’ 이런 거는 우주 전체를, 삼세계(三世界)의 삼천대천세계를 다 그냥 집어먹겠다 하는 소리나 똑같습니다. 그걸로 그렇게 표현을 한 거죠. 어떠한 마음에서 떡을 먹겠느냐 했는데 그거를 맞추지 못해서 또 물으러 갔죠. 금강경을 잔뜩 짊어지고요. 길게 말하기가 싫어서 지금 이럽니다. 그러니까 그 글자라는 거는 이론적으로 말만 했지 법이 적용이 되질 않습니다.
나는 어떤 때는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실은 제가 어릴 때는 식구들이 전부 뿔뿔이 헤어져서 남의 집으로 전전긍긍했기 때문에 학교 공부를 못 했습니다. 여러분처럼 부모가 자식을 공부시키면서 호화롭진 못하나마 밥이라도 먹고 공부라도 시킬 정도로 이렇게 자랐다면 모르겠지만 형편이 어려워서 남의 집 일하러 돌다보니 일자무식이었습니다. 그래도 내 주인인 자체, 이 껍데기 아닌 내가 있었기 때문에 이만치 살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 뜻을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삼세(三世)를 같이 쥐고 그렇게 쩔쩔매지 마시고요, 그냥 일심(一心)으로서, 일심도 공(空)해서 찰나찰나 닥치는 대로 놔버리시고 가세요. 그래야 가볍습니다.

질문자2(남): 지난번 법회 때에 스님께서 토론 형식으로 “달마가 수염이 있는 게 달마냐, 없는 게 달마냐?” 하고 물으신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분별심에 대해서 여쭤보고자 나왔습니다. 제가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수염이 있어도 달마고 없어도 달마고, 또 수염이 있다 해도 달마가 아니고 없다 해도 달마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저는 이 속세에 살고 있기 때문에 생업에 종사하면서 항상 분별심을 일으킵니다.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으면 모든 생명체가 생존을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자연과학을 공부하는데, 늘상 따지고 이게 맞는가 저게 그른가 하고 분별심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부처님 마음공부를 하려면 분별심을 일으켜서는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전 또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까 두 개가 모순이 됩니다. 공부를 위해서는 분별심을 일으켜서는 안 되겠는데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으면 또 이 속세에서 살기 힘드니
200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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