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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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문제 해결하는 화쟁의 지혜
정목 스님
양산 정토원 원장

지금 우리 국민 모두가 공통으로 고뇌하는 문제는 사회의 양극화입니다. 양극화된 두 극단은 각기 대립의 각을 세우고 끝없는 논쟁를 벌이고 있으니 국민화합의 가장 큰 장애입니다.
그럼에도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갈등에서부터 기업가와 노동자, 부자와 가난한 자, 야당과 여당, 정치 지도자와 국민, 종교 대 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빚어지는 문제인 까닭에 그 해결책을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부처님의 지혜와 원효 스님이 전개한 화쟁(和諍)의 논리에 비추어 우리가 안고 있는 양극화 문제의 해결책을 간략히 전하고자 합니다.
원효 스님은 부처님의 지혜를 네 가지로 함축하여 해설하였는데, 성소작지(成所作智) 묘관찰지(妙觀察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대원경지(大圓鏡智)가 그것입니다. 원효 스님은 이 모든 지혜의 궁극은 ‘일체 경계는 일심(一心)’인 지혜라 하였습니다. 일심은 대승불교의 세계관이며, 믿고 성취해야할 대승의 유일한 법입니다.
‘성소작지’는 부처님이 불가사의한 일을 성취한 지혜인데 낮은 지혜로는 헤아리기 어렵고, ‘대원경지’는 오직 부처님만이 단박에 깨닫는 지혜로 보살의 경지에 이르러도 다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묘관찰지’는 정신적 물질적 모든 법을 ‘비유비무(非有非無)’로 관찰하는 지혜이며, ‘평등성지’는 동체대비심으로 널리 제도하는 지혜인데, 이 두 지혜는 우리가 믿고 이해하고 성취할 수 있는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지혜를 중심으로 우리가 안고 있는 양극화 문제의 해결책을 말하고자 합니다.
이 양극화 논쟁을 해결하는 첫 번째 법은 두 극단의 주장에 대한 긍정(肯定)입니다. 한 쪽 만을 부정하거나 양쪽을 다 부정해도 문제는 해결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양쪽을 다 긍정한다는 것은 일단 논쟁을 그치고 양극화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양극화는 문화시대적 상황, 그리고 개인과 집단의식 등이 연기(緣起) 되어 일어난 현상입니다. 긍정이란 이 연기의 현상을 서로가 긍정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해결책의 두 번째 법은 양극의 실체에 대한 부정(否定)입니다. 양극의 주장이나 현상은 연기의 산물인 까닭에 그 본질은 실체가 없습니다. 행위의 주체는 있으나 이념이나 현상도 상황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부정이란 이와 같이 인연(因緣)으로 일어난 이념이나 현상은 긍정하되 그 실체를 부정(空)하는 것입니다. 만약 일체 법에 실체 없음을 받아드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독단으로 공동의 평화를 위한 노정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해결책의 세 번째 법은 서로가 실체 없음을 긍정하고 화합(和合)하는 것입니다. 화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법이 실체는 없지만 주체의 선행(善行)으로 복된 삶의 지평을 넓혀 갈 수 있다는 ‘비유비무’의 묘관찰지를 발휘해야 합니다. 여기에서의 선행은 오직 민중의 고뇌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이어야 합니다. 또한 진실하고 끝없는 선행은 ‘일체경계가 일심’임을 깨닫는 평등성지로써 가능함을 인식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효 스님이 양극의 논쟁을 긍정ㆍ부정ㆍ화합으로 해결하는 화쟁의 논리입니다. 비록 화쟁의 논리가 이러하지만, 지혜로운 지도자의 선도적 역할과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실천이 우선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정치, 사회, 경제, 기후에 이르기까지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어 마음 아픈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편안하면 부처님도 출현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불법에 귀의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하여 안심(安心)을 얻고 갖가지 어둠의 장애를 공동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다 함께 이 길에서 물러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200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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