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서)
큰스님: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결국 처음에는 윗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에 아래까지 잘못 끼워진 거죠. 그 반면에 뉘우치고 단추를 빼서 다시 끼웠기 때문에 이제는 방향이 올바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그대로, 어떠한 문제도 개의치 마시고 하늘이 무너진다 하더라도 눈도 깜짝거리지 말고 지금 하신 말씀대로 그대로 진행해서 나가신다면, 살면서 남한테 꾸러 다니지도 않을 겁니다, 아마. 그것이 바로 여여한 것이지 뭡니까. 이 모두가 여여하게 살 거를 그렇게 복잡다단하게 괴롭게 살아요. 그러니까 ‘모든 걸 놓고 살아라. 너는 죽어야 너를 본다.’고 했죠. 하하하…. 그런데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살아서 죽는 걸 알아야지 죽어서 죽는 게 아니에요. 죽어서 죽는 건 열반이 아니고 살아서 죽어야 진정한 열반이에요.
그럼 벌써 과거 미래 현재를, 삼세가 벌써 공(空)해서 돌아가는 거죠. 그러니까 공법으로 다 그냥 생활을 하는 거죠. 그러니 얼마나 여여해요, 얼마나 편안하고. 그리고 얕은 사랑보다도 깊은 자비가 샘솟듯 한단 말입니다. 가정에도 그렇고 모든 걸 다 그렇게 하는 거죠. 그래서 스스로 말 한마디를 하나, 또 행을 하나, 그냥 생각을 하나 이게 법이 돼서 그냥 보시가 돼야지 물질로 조금 보시했다는 생색을 내기 위해서 하다 보니까, 벌써 반은 내가 욕심이 있으니까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 값어치가 나한테 올 리가 없죠. 외려 욕심으로 그걸 했기 때문에 거기에 딸려 들어오는 악의적인 문제들이 거푸거푸 생기는 거죠.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다고요.
그러니 여러분이 모두 편안하게 사시라고 해서 그냥 몸뚱이를 편안하게 두라는 게 아니라 마음을 편안하게 두고 뛰는 거는 뛰셔야 건강도 하고 또 그게 뛰되 뛰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뛰는 사이 없이 뛰는 거죠. 우리가 마음으로 뛰는 거는 발자취가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몸으로 뛰는 건 발자국이 남습니다. 오늘 꽤 길게 말씀을 하셨지만 오히려 공부하는 사람들의 지침이 되게끔 참 말씀 잘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1(남): 한 말씀만 더 올리겠습니다. 스님 법문 테이프를 가지고 비닐하우스에서 식물을 기르는 사람이 있답니다. 그 식물을 기르면서 스님 법문 테이프를 틀어 놨더니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식물의 성장이 훨씬 빨랐고 수확이 좋았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당연한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스님의 말씀 중에 있는 음파에는 에너지 파동이 실려 있어서 그것이 그대로, 식물은 식(識)이 옅으니까 그대로 전달돼서 그렇게 되는 것이니까 그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렇게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람들은 그 식이 아무래도 복잡하니까 비록 그렇게 들어오더라도 효과가 좀 늦게 나타나지 않겠느냐 하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스님이 말씀하시는 그 음파는 분명히 정신 에너지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나타난 것은 물질 에너지적인 힘으로도 나타났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인간이 식물보다는 고등 동물로서의 가치가 있으려면 누진(漏盡)으로써 그러한 음파를, 그 에너지원을 스님이 사용하시는 그 에너지 바다에 그대로 같이 공명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음파를 발생시켜야 되겠는데 스님처럼 그렇게 되기는 지금으로서는 감히 바라지 못하겠고요, 스님과 저희들 중세계의 중간쯤에 있는 중상(中上)세계의 생명체들은 이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을 하고 있는지 가르쳐 주시면, 제가 발명가거든요. 좀 적용을 해 보고 싶습니다.
큰스님: 내가 애당초에 말하고 싶었던 것도 거기에 개재가 됩니다. 지금 여러분이 마음을 공부하면서 어떠한 마음을 내고 또 생각하고 행하고 이러는 것이 그대로 에너지가 발생됩니다, 음파로써 발생됩니다. 그래서 우주의 근본도 우리의 마음의 근본에 직결이 돼 있고 만물만생하고도 가설이 돼 있다 이랬죠?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고 공부하고 나가는 이 법도, 이게 평등공법에 의한 음파니까 음파가 전부 나갑니다. 그래서 아까 그 학교 애들 얘기 한 것도 그러한 생각에서 한 번이라도 ‘이러한 것이 없어야겠다.’ 하는 생각을 한다면 달라지죠. 왜냐하면 애들은 정신계의 이 모든 걸 모르고 물질계로만 치닫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그런 일들이 생기는데 정신계의 음파, 정신계의 법, 공법, 그것을 음파로다가 펼쳐서 모든 사람들한테 정신계의 이미지를 넣어 준다면 세상이 달라질 거 아니겠나, 이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인간만 듣는 게 아니라 하다못해 미생물에까지도 음파가 통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내가 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만 하는 게 아니라 연구하기 위해서도 해 봐야 되는 거다 이 소립니다. 자기가 어떠한 과정에서 쓸 수 있는가, 어떠한 삶을 살았고 어떤 분야에서 이날까지 살아왔던가. 그럼 산 것대로 거기서 어떠한 지혜가 생기고 그랬을 때 ‘아, 이런 걸 가지고 이런 거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번 해 보시기도 하고요. 이 공법의 음파는 어디든지 적용됩니다.
질문자1(남):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했다고 한 모든 것은 모두 놓아 버리고 오로지 못다한 사랑만 생각하면서 저의 참사람을 향해서 끝없이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큰스님: 예. 그리고 생활을 할 때에 내가 나를 버린다고 해서 생활을 버리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을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외려 더 끔찍하게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생기는 거죠.
질문자2(남): 스님, 감사합니다. 항상 마음을 밝혀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애쓰시는 스님 모습을 뵈면서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스님께 회향법에 대해서 질문드릴까 합니다.
저희가 항상 어떤 행위를 했을 때나 어떤 일이 닥쳤을 때 분명히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는데 저는 부처님께 회향하고 또 큰스님께 회향하고 모든 스님께 회향한다고 이렇게 항상 마음을 냈었거든요. 그런데 뭔가 분명히 아쉬웠던 것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왜 그럴까, 그랬더니 진짜 본연의 자기 자신한테는 회향하지 않고,
큰스님: 하하하….
질문자2(남): 일단 부처님과 스님한테 생각과 말로만 회향했던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제 자신이 있기 때문에 모든 일들은 발생했던 것이고 모든 일들은 성사됐던 것인데 진짜 자신한테는 회향할 줄 모르고 더불어서 이렇게 부처님과 스님께 생각과 말로만 했다는 생각이 들기에 어느 땐가 ‘너 자신이 행한 모든 일들은 너로 인해서 벌어졌던 것이고 너로 인해서 발생됐던 것이니까 네 자신에게 진정으로 회향하면 모든 것이 다 하나로 돌아갈 텐데….’ 이런 생각이 들기에 감히 스님께 질문드립니다.
큰스님: 아유, 잘 생각했어요. 정말이지…, 보세요. 자기가 똥 누고 자기가 밑을 씻고 ‘아이구, 시원하다.’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스님이 거기 왜 끼어들어 갑니까, 네? 그러니까 배우는 사람들이 모두 ‘부처님 부처님’ 하다 보니까 자기는 그냥 망쳐지고 말았죠. 부처님이 대신 똥 눠 줘요? 회향이란 것도 다른 게 아니에요. 조그맣든 크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