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내려놓고 차 한 잔의 여유 찾으면 온화해져
지혜는 내면에서 솟아나는 것… 차분하게 집중해야
강 사 : 조용헌(원광대 동양학과 초빙교수)
일 시 : 2009년 7월 14일
주 제 : 사회적 인재와 불교적 인재
장 소 :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주 최 : 조계종 중앙신도회 불교인재원
“지위가 없는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그 지위의 소임을 다할 수 있는 지를 걱정하라.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알아줄 만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야 한다.”
공자 <논어> ‘이인(里仁)편’에 나오는 명구이다.
사람은 자신이 설 수 있는 근본이 없는 것이 가장 두려운 것이다. 사람이 진정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면 언젠가는 황금처럼 빛을 발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자신을 황금과 같은 존재로 만들 수 있는 가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미소를 짓는다.
지하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더욱 인적자원이 중요하다. 그중 영향력 있는 인재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몇 배의 가치를 창출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도 인재불사의 필요성이 절실한 요즘, 불교에서 원하는 인재는 어떤 모습인지 조용헌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행복하려면 고요해야
현대사회는 삶의 수단이 모두 스피드(speed)인 것 같습니다. 대포나 비행기, 자동차, 통신 모두 속도경쟁입니다. 서양문명이 우리를 제압한 원인도 스피드에 있습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 마음이 계속 불안해집니다. 자꾸 압박을 받으니까 우리 어렸을 때는 없던 심장병이 요즘은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저도 신문사 원고마감에 시달리느라 심장이 안 좋아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부터 ‘왜 이렇게 되는 건가’ ‘어떻게 하면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나’ 고민했습니다.
제가 얻은 답은 행복하려면 고요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이 고요하지 않으면 대통령이든 재벌이든 행복하지 않습니다. 제가 재벌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다들 고요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현 대통령도 그렇지 못한 것 같고 前 대통령은 자살까지 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현실입니다.
#화평하고 베풀 줄 알아야
불교적 인재는 고요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고요하려면 삶에 우선순위를 정해 천천히 가거나 많은 부분에 대해 과감한 포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배양해 내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마음이 순수해지고 중심이 잡히면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고요해서 행복해진 모델들이 나와야 합니다. 이런 인재가 이 사회에는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돈 좀 벌고 지위가 있는 분들을 보면 눈매가 매섭습니다. 그래서 부자이지만 천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무재칠시(無財七施) 중에서 ‘안시(眼施)’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온화한 눈길에 따라 모든 사람의 마음이 부드럽고 온화해진다는 뜻처럼 눈이 화평한 사람은 그 자체로 다른 이들에게 보시를 하는 것입니다. 얼굴이 화평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을 줍니다. 요즘은 그런 이를 찾아보기 드물어 안타깝습니다.
#차 마시며 자연을 느낄 수 있어야
불교적인 인재라면 그런 자연을 많이 접해 볼 수 있는 사람이 인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명이란 것은 결코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자연이 자연 그 자체가 사람한테 큰 위안을 주는 것이죠. 요즘 사회생활은 전부 긴장의 연속입니다. 현대인들이 환갑이 되어서 병 안 걸리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찰이 자연 속에 있는 것은 큰 장점입니다.
사람이 슬픔에 잠겼을 때 치유해 주는 것은 자연과 사람의 목소리입니다. 악기소리가 깊은 슬픔까지는 치유하지 못합니다. 사찰에는 자연과 인간의 육성이 있습니다.
차를 마시는 것도 굉장히 좋은 방법중의 하나입니다. 차를 마시면 고요함과 온화함을 유지 할 수 있습니다. 차를 제대로 마신다는 것은 뱃속에 무언가를 채운다는 것 이상의 의미입니다. 차를 마시면 사람 몸에 기운이 도는 작용을 돕습니다.
또 다도는 단순합니다. 물을 따르고, 끓이고, 물 끓는 소리를 듣고 찻잔을 만져보는 그 자체가 법회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음이 바쁜 사람들은 느낄 수 없습니다. 늘 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긴장 없이 단순한 동작을 계속 반복하면 복잡한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습니다.
#영적 깨달음까지 살필 풍수도 알아야
불교 인재라면 풍수도 공부해야 합니다. 바람과 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어야 자신의 컨디션이나 영적인 깨달음까지도 살필 수 있습니다. 자연에서 기운이 어떻게 올라오는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술사들이 묘자리 보는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건강과 영성을 위한 풍수 말입니다.
옛 조사스님들께서 암자 터를 잡은 것을 보면 대단하단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안목이 아주 예술입니다. 터가 지닌 미묘한 조합을 보면 평균 30년은 돌아다니신 것 같습니다. 불교에는 축적된 전통의 힘이 있습니다. 발효된 데서 깊이가 나오고 성찰이 나오는 것입니다. ‘한 소식 한 분’과는 밥 먹고 농담하는 것만도 큰 공부가 됩니다. 축적된 전통에서 나오는 그윽한 지혜가 있단 말입니다.
풍수와 영적 성장과도 연관이 있는 것이죠. 저는 아파트에서 도인 나오기 힘들다고 봅니다.
보일러 방에서 자는 건 문제입니다. 잠에 깊이 들어 몸의 기운이 돌아야 하는데 등 밑에서 보일러 물이 돌고 있으니 자연적인 기운의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플 때는 아랫목 구들장에 가야 하는데 지금은 그 전통이 없어졌습니다. 그나마 그 안온함이 남아 있는 곳이 전통 사찰들입니다
육식을 많이 하는 서양인들은 자연의 기감을 감지하는 능력이 퇴화됐다고 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색계를 추구하는 문명입니다. 그러다보니 눈에 보이는 것만 믿습니다. 다른 건 다 미신으로 여기고 말입니다. 또 의자생활을 하기 때문에 기운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계속 위로 올라가서 심장병이 생깁니다. 인간의 몸을 보면 정신을 알 수 있는데 비만인구가 많은 서양인을 보면 고상한 생각을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제 개인적인 관찰입니다.
#자신이 먼저 행복해야
자신이 행복한 사람은 불교적 인재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스스로 얻는 맛을 느껴야 합니다. 현대사회는 돈 되는 것만 가치를 두지 명상 등에는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깊은 밤에 부엉이가 쥐를 잡을 때처럼 집중해야 고요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지혜는 내면에 있는 것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 순간을 위해서 고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요즘에는 축구, 골프 등은 대단히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는데 가만히 앉아있는 것은 싸구려 취급 받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습니다. 명문가에 가보면 기운이 차분하고 안정감이 있습니다. 가지런히 놓인 현관의 신발만 보고도 영적인 수준까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정리=박선주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이력
1961 전남 순천 生.
원광대 불교대학원 불교민속학 박사.
원광대 동양대학원 동양학과 초빙교수.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칼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