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발달할수록 인간의 고뇌 깊어 참선 ‘열풍’
자신의 내면 관조하며 삶의 에너지 충전해야
[원문]
신광불매만고휘유(神光不昧萬古徽猷)
입차문래막존지해(入此門來莫存知解)
-범어사 불이문
[번역]
신기로운 광명 매하지 아니하여 만고에
아름답네
이 문을 들어오거든 망상을 피우지 말라.
[선해(禪解)]
여름휴가가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때에 불자들은 사찰의 템플스테이에 참석, 참선을 통해 자기의 몸과 마음을 깨끗이 닦아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도 매우 유익한 일이 아닐까 싶다. 요즘, 우리나라나 서구(西歐)에서 급격하게 관심을 두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참선이나 요가 같은 명상수행이라고 한다.
참선(參禪)은 일찍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이루시고 난 뒤, 제자들에게 직접 제시한 확실한 깨달음의 정로(正路)이다. 내적으로 참다운 자기의 실체인 본래심(本來心)으로 돌아가 마음자리를 닦아 청정하게 유지하고, 활용하는 수행법이라 할 수 있다.
참선은 인도의 전통적 수행인 요가에서 시발하여 중국에 이르렀는데 이는 혜능 선사를 거처 제자들에게 이심전심으로 깨우침을 얻게 되는 조사선(祖師禪)으로 이어지고, 훗날 스승으로부터 주어진 공안을 상량 참구하는 간화선으로 발전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불교의 정신세계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임제종 계통의 간화선 수행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으나, 기실 대다수의 초심자들에게 참선이란 접근하기에 그리 용이하지는 않는 수행법이라 할 수 있다. 어떻든 요즘 사찰 템플스테이에 참선 수행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어 많은 불자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참선에는 많은 관법이 있다. 그 중에서도 인간의 탐진치 삼독심을 없애는데 필요한 소승불교의 기초적 선수행인 오정심관 (五停心觀)은 참선수행에 관심을 갖는 많은 불자나 일반인에게 좋은 선의 안내자가 될 수 있다.
첫째, 부정관(不淨觀)은 백골관(白骨觀)이라고도 하며 이는 사대로 이루어진 육신이 무상하여 다 썩고 문드러져 더럽고 추한 모습을 관하여 육체에 대한 탐욕심을 제거하는 관법(觀法)이다.
둘째, 자비관(慈悲觀)은 중생의 고통스런 삶을 관찰하여 타인에게 무한한 자비심을 내어 분노심을 제거하는 관법이다.
셋째, 인연관(因緣觀)은 삼라만상 모두가 인연생멸(因緣生滅)하기 때문에 욕심내고 성냄이 다 부질없음을 알아내고 그러한 치심(癡心)을 제거하는 관법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수식관(數息觀)을 들 수 있는데 번뇌, 망상의 일어남을 막고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자신의 숨을 고르게 하고, 들숨과 날숨을 세면서 호흡에 집중하는 관법이다. 이는 초심 수행자가 가장 많이 하는 참선법이다.
다섯째, 계분별관(界分別觀)은 인간과 세계를 구성하는 사대 지수화풍(地水火風)과 육근인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등 일체가 모두 무상함을 깨닫는 관법이다. 그리하여 나도 공(空)하고 나의 것이라는 것도 아소공(我所空)하고, 온 우주도 모두 공하다는 법공(法空)을 깨닫는 것이다.
범어사(梵魚寺)는 한국불교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이다. 원래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십찰(華嚴十刹)가운데 하나인데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그 후 큰스님들이 나오면서 중창, 선풍을 진작시켜 1913년 선찰로 바뀌었다. 하지만 비로전에는 화엄종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비로자나불은 법신불(法身佛)로서 비로자나 부처님은 청정법신이다. 범어사는 그 가람배치에 있어 교종과 선종을 아우르는 통불교적인 요소를 그대로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은 법신에서 법향이 난다고 한다. 범어사에는 그런 고귀한 선승들이 많다. 화엄십찰이 선찰대본산으로 바뀌게 된 것은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였던 경허 스님 때문이다. 스님은 1900년 범어사에 선원을 개설 수선결사를 주도, 새로운 선수행(禪修行) 풍토를 조성하였는데 그 뒤를 이어 용성, 성월, 동산 스님이 범어사 각 암자에 선원을 창설하여 많은 선승들을 배출 양성하였다. 그리하여 범어사는 한국불교의 선찰대본산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당시 선불교 운동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일제하에 있었던 외척불교에 대한 저항운동 때문이었다. 일본은 조선을 강점한 후 민족적 정기를 끊기 위해 승려들을 결혼시켜 막식막행(莫食莫行)을 일삼도록 방조했는데 이에 사상적, 신앙적으로 피폐된 조선불교계의 현실을 바로 잡고 전통조선불교를 수호하기 위해 선불교 운동이 범어사 중심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특히 범어사 선승들은 선학원과 선우공제회 창립 때 주도적 역할을 맡으면서 선불교 중흥을 꾀하면서 일본의 한국불교 말살정책에 대응해왔다. 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 포교당을 설치하여 불교진흥운동과 근대교육 및 계몽운동에 앞장서는 등 수행과 교육, 포교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3·1 운동 때는 이곳에서 수행하던 승려들이 ‘범어사 학림의거’라는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으며, 전국에서 쓸 태극기를 범어사 암자에서 만들었다. 또한 수시로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몰래 보내는 등 다양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해방이후 범어사에서 배출한 선지식들은 일본불교의 잔재를 청산하고 한국불교의 전통과 정통을 세우기 위해 정화운동을 이끌어온 주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범어사가 크게 중창하게 된 것은 조선 광해군 때와 숙종 때다. 범어사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조계문인데 이는 일주문을 대신한다. 조선시대 중기 다포식 가구의 전형적인 양식을 지니고 있는데 보물 제1461 호이다.
불이문은 천왕문과 함께 창건한 건물이다. 앞면 3칸, 옆면 1칸의 작은 규모로 겹처마의 맞배지붕이다. 낮은 기단 위에 원통형의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공포는 내외 2출목의 주심포 양식으로 전체적으로 조선시대 후기의 모습을 계승하고 있는 건물이다. 기둥에 적힌 주련은 근·현대의 대표적인 선승인 동산 스님이 써서 걸었다.
‘신광불매만고휘유’의 신광(神光)이란 부처님의 위대한 팔만사천 법문을 가리킨다. 이것은 만고의 아름다운 진리이다. 그러므로 ‘입차문래막존지해’ 이 문을 들어서는 순간에는 세상의 망상인 모든 알음알이를 버리라는 뜻이다. 역으로 말해, 곧 부처님이 계신 이곳을 들어서고 나갈 때는 세상의 모든 시름과 망상을 놓고 가라는 경구(警句)이다.
오늘 날 세상은 지식의 홍수로 인해 인간의 두뇌가 어지럽다. 이러한 지식들은 한갓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젠 머리와 마음속에 든 삿된 거짓과 망상들을 지우는 것도 이 세상을 평온하게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부처님이 바라 볼 때 중생은 한갓 바다에 노니는 물고기와 같고 산에 뛰노는 노루와 같다. 그래서 부처님은 가엾은 중생들을 위해 널리 보제(普濟)를 행하였던 것이다. 부처님의 팔만사천 법문은 중생을 고통에서 건져주는 약방문과 같고 차안에서 피안으로 강을 건너게 하는 뗏목과 같다. 부처님은 중생을 너무나 사랑하는 의사이자 뱃사공, 아버지 같은 스승이 아닐 수 없다.
■ 조계종 원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