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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세계의 왕릉 된 까닭
이 우 상
소설가, 동국대 문창과 겸임교수

2009년 6월27일 새벽, 스페인 세비야에서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제3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조선왕릉 40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확정했다는 뉴스였다. 유산등재는 그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인류공영의 가치를 지녔다는 인증이다. 대단한 영예다. 세계문화유산은 문화올림픽이다. 조선왕릉은 한꺼번에 금메달을 40개나 땄다. 국가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고 관광자원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부가가치가 따른다.
지난 몇 년간 조선왕릉들을 답사하고 그것을 책으로 엮어 출간한지 며칠 만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니 감회가 남다르다. 북한 소재 2기(1대 태조 원비 신의왕후의 제릉, 2대 정종과 정안왕후의 후릉)는 아예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분단의 아픔이다. 연산군묘, 광해군묘도 신청에서 제외됐다. 서러운 업보다.
왕릉 순례를 하면서 사색한 것은 죽음이다. 죽음 앞에선 누구나 숙연해진다. 특히 공인(公人)의 죽음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왕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공인 중의 공인이다. 그래서 그들은 죽어도 죽지 못한다. 육신은 소멸되었으나 행장은 불멸이다.
잊혀지기를 원해도 잊혀질 수 없는 시퍼런 역사로 살아 있다. 피를 동반한 야심과 패기로 권좌에 올랐든, 얼김에 떠밀려 왕이 되었든, 불멸의 이름으로 높다란 봉분 이불 아래 누워있다.
왕릉순례는 ‘죽음과 역사’라는 두 가지 화두와의 만남이다. 조선왕릉은 조선왕조 500년의 타임캡슐이다. 단종의 장릉(영월 소재)을 제외하고 경복궁을 중심으로 100리 안에 있다. 왕이 하루 만에 참배를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에 능역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후손들에게 남긴 최고의 선물이다. 역사는 살아있는 교훈이자 화해의 축제다. 500년 조선의 역사를 폐기된 역사책이 아닌 생생한 역사로 증언하고 있는 것이 왕릉이다. 말 없는 무덤은 ‘길 없는 길, 문 없는 문’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다. 한 왕조가 500년 간 지속되었고 재위한 왕과 왕비의 능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사례는 세계사에서 조선왕릉이 유일하다.
왕릉순례를 하면서 건진 결론은, ‘최상의 법문은 죽음이다’라는 것이다. 이승의 번잡한 논란을 잠재우는 것이 죽음이다. 분분한 논란의 중심에 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최상의 법문을 던지자 ‘공소권 없음’이 되었다. 죽음이 최상의 법문이면, 법문의 내용은 무엇인가. 자비다. 화해와 용서다. 죽음 앞엔 모두가 평등하다.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삶은 겸손하다. 비록 우리가 유명세를 타는 공인이 아니지만 가슴 가장 중요한 자리에 겸손을 품고 살아야할 것이다. 자기를 낮추는 마음이 공기처럼 세상에 그윽하면 불신과 갈등, 적의(敵意)의 창날은 녹아내릴 것이다.
문화유산 등재 후에는 할 일이 많다. 우리만의 유산이 아니라 세계인의 유산으로 격상되었다. 국제 사회의 보호와 감시를 받게 된다. 보호라는 명목으로 우리에게 멀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500년 역사의 타임캡슐인 조선왕릉을 눈과 귀,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영광이든 치욕이든 역사만큼 큰 스승은 없다.
타임캡슐을 보호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철조망을 치면 보호는 된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를 감금하는 행위다. 펼쳐서 보여주고 느끼게 해야 한다. 왕릉에 가면 천편일률적인 안내문이 있다. 생몰연대, 가족관계, 간단한 약력이 전부다. 도무지 눈길 끌 수 없는 안내판이다. 다양한 사연과 치적을 들려줘야 한다. 스토리가 있는 왕릉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 문화재청은 환희심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청포도가 익어가는 7월, 세종대왕의 영릉에도 한이 많은 장릉(단종), 사릉(단종비 정순왕후)에도 푸른 잔디가 공평하게 눈부시다.
2009-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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