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는 마음이 부처님의 밝은 가르침 못보게 해
‘무상’의 도리 깨우쳐 대자유 추구하는 것이 수행
[원문]
정극광통달(淨極光通達)
적조함허공(寂照含虛空)
각래관세간(却來觀世間)
유여몽중사(猶如夢中事)
수견제근동(雖見諸根動)
요이일기추(要以一機抽)
-마곡사 대광보전
[번역]
맑고 다한 빛 그 통달함이여
고요하게 저 허공을 모두 비추네.
세상을 살펴 바라보니
모두가 꿈속의 일이로다.
비록, 모든 것의 근원이 움직일지라도
요컨대 이를 단번에 뽑아 버려라.
[선해(禪解)]
얼마 전, 대법원은 식물인간이 된 70대 할머니의 생명을 16개월 동안 유지하게 한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실로 파격적인 판결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살아 있는 생명을 해쳐야 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은 중생의 생명이다. 아무리 작은 미물일지라도 함부로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엄연히 아직 숨을 거두지 않은 할머니의 존엄사를 인정한 사례가 된 것이다.
예로부터 부모의 죽음은 ‘천붕지괴(天崩地壞)’의 아픔이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정도의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부모의 죽음이다. 아직 숨을 쉬고 있는 어머니의 마지막 생명줄인 인공호흡기를 자식 스스로 떼어내야 하는 고통이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은 하늘에 있다. 스스로 가야할 때를 아는 사람은 오직 자신만이 알 뿐이다. 이것은 대법원도, 자식도 의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면 1시간 내에 숨을 거둘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무려 24시간을 버티고 있고 호흡도 점점 안정화 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할머니가 정상적으로 생명을 보존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인공호흡기로 의지한 육신이 자신의 힘으로 호흡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선, 할머니의 존엄사 허용이 너무 성급하지 않았느냐는 견해도 나왔다고 한다.
생명을 죽이면 그 과보가 얼마나 큰 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불교계는 해마다 방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부처님은 “모든 유루(有漏)의 선법(善法) 가운데 방생의 공덕보다 더 큰 것은 없다. 무릇 기타의 선법은 자기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공덕이 없으나, 방생은 그 마음이 깨끗하든 깨끗하지 않든 그 일은 모두 직접 중생에게 혜택이 미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불가사의한 선의 과보가 있으며, 비록 한 마리의 생명을 방생해도 그 공덕을 다 헤아릴 수 없다. 왜냐하면 방생된 중생은 참을 수 없는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 때 방생하면서 부처님의 명호와 다라니를 염하여 가피를 주면, 마침내 그들 중생도 불퇴전의 과위를 얻게 된다” 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작은 생명도 귀하게 여기는 불교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존엄사’는 부처님의 사상에 절대적으로 위배가 되는 것이다. 실로 부처님이 2500여 년 전 남기신 설법이 오늘날에도 하나도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부처님은 돌아가실 때 숙세의 업 때문에 춘다의 독버섯을 먹고 열반에 들었다. 영축산에서 8년 동안 머물러 <법화경>을 설하신 다음, 카필라성의 쿠시나가라에 도착했을 때 대장장이 춘다가 부처님 일행을 보고 독버섯이 든 공양을 올렸던 것이다. 그 때 부처님은 독버섯이 든 걸 아시고는 제자들에게 못 먹게 하고 당신 혼자 드셨던 것이다. 제자들은 그 음식을 소화시킬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련 여행은 충남 마곡사다. 마곡사는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 동쪽 산허리에 있는 아름다운 천년 고찰이다. 산속에 깊이 들어선 마곡사가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춘마곡(春麻谷) 추갑사(秋甲寺)’때문이다. 봄이면 산수유와 왕벚꽃 등이 피어나 선경(仙境)을 이룬다는 유래에서 ‘춘마곡’ 이름이 붙어졌으며 가을 단풍이 너무나 아름다워‘추갑사’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1400여 전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에 의해 창건, 고려 명종 때 보조 국사가 중수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후 범일, 도선 국사에 의해 재중수, 조선 시대 세조가 이 절에 들려 영산전을 사액(賜額)한 일이 있다고 한다.
창건 당시에는 보기 드물게 서른 개의 건물과 요사채가 있을 정도로 대사찰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잦은 전쟁과 화재로 인해 현재는 보물로서대웅보전, 대광보전, 영산전만이 남아 있다. 오층 석탑은 중국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 세워져 많은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 이 또한 보물이다. 이밖에 지방문화재로서 범종(梵鐘), 괘불(掛佛), 목패(木牌)가 있으며, 세조가 타던 연(輦), 청동 향로 등이 있다. 국보급 보물로서는 <감지금니묘법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제6권 및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 1권이 보관돼 있다.
마곡사의 가람 배치는 특이하다. 계곡이 경내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는데 그 위에 걸쳐진 극락교가 속세와 진계의 두 영역을 나누고 있다. 이곳은 특히 풍광(風光)이 매우 아름다워 항상 사진작가가 많이 붐빈다. 중심 건물인 대광보전은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을 모셨으나 불에 타 버렸던 것을 조선시대 순조 때 다시 고쳐 지은 건물로서 해탈문과 천왕문이 일직선으로 놓여 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고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의 끝이 날카로우며 위에 연꽃봉오리를 조각했다.
문살은 꽃 모양을 섞은 조각으로 장식했고 가운데 칸 기둥 위로 용 머리를 조각해 놓았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몄다. 불단은 서쪽으로 마련했는데 불단 위에는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닫집을 정교하게 조각했다. 안팎으로 구성과 장식이 풍부하고 건축법이 매우 독특한 건물로 이름이 나있어 조선 후기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광보전 속에 담긴 주련의 내용은 부처님이 중생을 위해 설파한 가르침을 온전히 담고 있다. ‘정극광통달 적조함허공’은 부처님의 위대한 설법은 맑은 빛보다 더 청정하고 모든 세간을 통달하여 항상 중생들 곁에서 빠짐없이 비추이고 있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각래관세간 유여몽중사’, 돌이켜 자세히 살펴보니 지나온 모든 일들이 한갓 꿈속의 일에 지나지 않으며 이 또한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수견제근동 요이일기추’ 즉, 모든 번뇌의 근원을 단번에 뽑아 버려야만 진실로 마음의 해탈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야 말로 진짜 수행이다.
부처님은 일찍이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설파한 적이 있다. 인간이 어리석은 것은 바로 재물욕(財物欲) 성욕(性欲:色欲) 음식욕(飮食欲) 명예욕(名譽欲) 수면욕(睡眠欲) 등 오욕락(五慾樂) 때문인데 이것이 곧 죄의 근원이 된다고 하셨다. 이중에서도 오늘날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재물욕인데 이 앞에서는 그 어떤 성자도 편안할 수가 없는 것 같다. ■ 조계종 원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