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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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남김 없는 깨달음을 얻은이여…
수행 완성해 번뇌와 윤회 벗어난 아라한 경지
남 위해 헌신하는 보시의 공덕 있어야 도달

[원문]
사향사과조원성(四向四果早圓成)
삼명육통실구족(三明六通悉具足)
밀승아불정녕촉(密承我佛丁寧囑)
주세항위진복전(住世恒爲眞福田)
-수종사 응진전
[번역]
사향과 사과를 일찌기 원만히 이루시고
삼명과 육신통을 모두 갖추셨네
은밀하게 우리 부처님의 고구정녕하신 부촉을
받으시어
세상에 머무르시며 항상 참된 복전이 되시네.

[선해(禪解)]
얼마 전, 내가 거처 하고 있는 봉국사 공양 간에 노숙자 몇이 밥을 얻어 먹으로 온 적이 있었다. 공양주 보살은 때 마침 대중과 신도들이 공양 중이라 그들에게 식사를 다 마친 뒤에 오라고 했다. 노숙자들은 대낮인데도 술에 취한 듯 몸을 비틀거리면서 공양주의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댔다. 자신들을 일반 신도들과 차별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나는 이를 지켜보다가 공양주에게 음식을 주라고 말했다. 국과 밥을 손에 쥔 그들은 이내 조용해졌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한동안 가슴이 못내 아려왔다.
절에서 공양주를 하는 보살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날마다 끼니때가 되면 찾아오는 노숙자에게 한 그릇의 국과 밥을 퍼주는 일은 쉬운 일인 것 같지만 사실 아니다. 수많은 대중과 신도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더구나 공양 시간을 맞추어 음식을 지어야 하는 공양주의 소임은 절에서 가장 고달픈 직책이라 할 수 있다.
배고픈 이에게 밥을 지어 먹여 주는 공덕보다 더 큰 공덕은 없다. 사람이 깨달음의 도를 얻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공덕을 쌓아야 하는데 공덕이 없는 사람이 도를 깨치려면 마장(魔障)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마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먼저 공양주를 자처하는 스님들도 있다. 함께 지내는 도반들의 밥을 퍼주다가 보면 그 공덕으로 인해 도(道)도 빨리 이룰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큰 절이 아니고는 공양주를 자처하는 스님들을 보기가 힘들어 공양주를 주로 신도나 보살들이 대신한다.
그런데 사찰의 공양주가 때 아닌 노숙자들에게 시달리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더구나 도심에 가까운 사찰일수록 끼니때가 되면 노숙자들이 많이 찾아온다. 오늘날 경제가 어려워지고 실직자가 많이 늘어나 노숙자도 급증하고 있다. 이들에게 따뜻한 밥과 국 한 그릇을 주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이 빨리 사회 속으로 되돌아 가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정부의 정책이 아쉽다. 실질적으로 정책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책상에 앉아 행정을 하기 때문에 세상의 구석진 면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귀와 눈을 닫아 놓고 탁상공론만 펼치는 그들에게 노숙자들이 먹는 따뜻한 한 그릇의 밥과 국의 의미를 이야기 한다면 어불성설이 될까? 그들의 행정이 정말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 사찰에 있는 공양주의 힘든 마음도 들어 주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오늘의 사찰 주련 여행은 운길산 수종사의 응진전이다. 이곳 주련 속에 담긴 오백 아라한님의 이야기는 바로 남을 위해 희생하며 살고 있는 공양주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수종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운길산 꼭대기에 구름처럼 앉아 있는 사찰로서 신라 시대 때 세워진 절이다. 고려를 세운 왕건이 상서로운 기운을 쫓다가 이곳에 이르러 동종(銅鐘)을 얻어 마침내 고려를 건국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세종의 여섯 째 아들인 금성대군이 정의옹주의 부도를 세운 사찰이기도 하다.
다산 정약용은 “수종사는 신라 때 지은 고찰인데 절에는 샘이 있어 돌 틈으로 물이 흘러나와 땅에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낸다. 그래서 수종사라고 불렀다”고 <수종사기>에서 밝히고 있다. 당시 다성(茶聖)으로 추앙받은 초의 선사는 양주에 낙향해 있었던 다산을 찾아가 수종사에서 함께 차를 마셨다고 한다. ‘보성들녘에서 자란 차로 수종에서 향을 내다’라는 말도 바로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또, 세조가 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강원도 오대산에 갔다가 남한강을 따라 환궁하는 도중, 용진강 이수두(지금의 양수리)에서 밤을 맞아 야경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 때 운길산 쪽에서 문득 종소리가 들려 그 연유를 신하에게 알아보라고 했다. 원래, 천년고찰이 있었던 자리로 암굴(暗窟)에는 18나한이 앉아 있고, 바위틈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들린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세조는 절을 다시 짓고 수종사라 이름 지었던 것이다. 이밖에 수종사에는 오층석탑이 있다. 이 탑은 고려시대에 성행하던 팔각다층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계승한 조선초기의 석탑으로 안정된 균형미를 자랑한다. 특히 이 탑은 한강을 통한 문화전파의 경로를 추정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팔각형의 평면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석의 각 모서리에는 원형의 우주가 있고 각 면에는 사다리꼴의 액이 조성되어 있으며 옥개석의 하단에는 매 층 각형 3단의 받침이 있다. 정상에는 삼각형의 문양이 시문된 복발과 보주가 있다.
그럼 응진전의 주련속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사향사과조원성 삼명육통실구족: 사향과 사과를 원만히 이루시고 삼명과 육신통을 모두 갖추셨네.’
이것은 부처님의 제자인 오백 아라한을 찬양하는 게송이다. 성문사과(聲聞四果)는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를 말하는데 수행자가 도달 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바로 아라한과이다. 수행을 완수하여 모든 번뇌를 끊고 다시 생사의 세계로 윤회하지 않는 자리로서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진리에 대한 의심 따위를 버리고 성자의 무리에 들어가는 성문(聲聞)의 첫 번째 지위가 바로 아라한인데 사향(四向), 사과(四果), 삼명(三明)을 남김 없이 구족한 분이다.
사향이란 소승불교에서 수도하여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네 가지 품계를 말하는데 수행의 기초단계인 견도향(見道向), 불교의 근본진리를 명료하게 지켜보는 눈을 얻는 단계인 정류향(頂流向), 육계의 모든 미혹함을 끊는 단계 일래향(一來向), 육계의 9품 수품 가운데 7품을 끊었지만 아직 1품이 남아 있는 단계를 말한다.
삼명이란 부처님과 아라한들만이 가질 수 있는 천이통(귀로 못 듣는 것을 들음), 타심통(타인의 마음을 자유자재하게 하는 신통), 신족통(경계를 변신하여 출몰을 자유자재하게 하는 신통), 숙명통(과거 세상의 생사를 자유자재하게 하는 신통), 천안통(육안으로 못 보는 것을 보는 신통), 누진통(자유자재하게 번뇌를 끊는 신통)중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을 말하는데 과거의 업상과 인연을 알아 내세의 상을 명확히 하며 현재의 상을 깨달아 일체의 번뇌를 끊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 모든 것을 원만히 구족한 이가 바로 아라한들이라는 말이다.
‘밀승아불정녕촉 주세항위진복전: 은밀하게 부처님의 고구정녕하신 부촉을 받아 세상에 머물러 항상 참된 복전이 되시네.’
이러한 오백 아라한들에게 부처님은 중생들에게 복전이 되도록 아무도 몰래 간절하게 입이 쓰도록 정녕촉(丁寧囑:신신당부)하셨던 것이다.
그 덕택으로 오늘날에도 오백 아라한님들은 우리 주변에서 중생들을 보살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가 바로 공양주이며, 절 마당을 쓸고 있는 저 사미승인 것이다.
■ 조계종 원로의원
200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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