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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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중도 ·관용으로 행복하라
관음보살 자비의 ‘무한성’ 인간의 감각 초월해
불성의 에너지 늘 푸른 버들과 대나무에 비유

[원문]
백의관음무설설(白衣觀音無說說)
남순동자불문문(南巡童子不聞聞)
병상녹양삼제하(甁上綠楊三除夏)
암전취죽시방춘(巖前翠竹十方春)
-낙산사 홍련암

[번역]
흰 옷 입은 관음은 말없이 말하고
남순 동자는 들음 없이 듣도다.
꽃병위의 버들 항상 여름인데
바위 위의 대나무는 시방의 봄일세.

[선해(禪解)]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 속에는 좋은 인연도 있고 나쁜 인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매번 좋은 인연만을 만날 수 없고 매번 나쁜 인연만 만날 수도 없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이 속에는 언제나 ‘미움과 사랑’이 공존한다.
그래서 <법구경>에는 ‘사랑하는 마음을 갖지 말고 미워하는 마음도 갖지 말자.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 자주 만나 괴롭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부처님은 ‘사랑과 미움’이라는 두 개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강조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중도(中道)’다. 인간이 ‘중도의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집착’이다. 집착은 인간으로 하여금 탐욕과 증오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원인이 되고 마침내 자기를 자제할 수 없는 늪으로 빠뜨리는 원인이 된다.
요즘 나는 신문이나 뉴스를 듣는 것이 괴롭다. 날마다 죄의 온상이 판을 치고 정치인은 온전하게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더욱이 북한의 핵(核) 때문에 불안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이런 속에서도 권력욕에만 눈이 멀어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산중에 있는 산승(山僧)의 눈과 마음으로 가늠해도 그들의 무지와 타락이 한눈에 다 보이는 것 같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이명박 대통령은 이러한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종교계의 원로들을 불러 오찬을 가졌다고 한다. 그 때 우리 조계종의 수장이신 지관 스님은 정중히 거절을 했다고 한다. 불교계의 원로로서 참으로 올바른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 대통령의 영결식 때 노제에 쓰인 2,000여개의 만장이 PVC에 매달렸다. 영결식의 만장에 쓰일 대나무가 시위대의 죽창으로 쓰일지도 모른다는 이유였다. 이것은 마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속담과 다를 바가 없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불가에서 ‘만장’은 고인에게 드리는 마지막 편지와 같아 다비식 후 모두 태우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태우면 독한 기름 냄새가 나는 PVC 봉을 사용하게 한 것은 바로 부처님이 강조하신 ‘사랑과 용서’의 정신에 위배 되는 것이며 부처님이 강조하신 ‘중도의 마음’을 잃은 탓이다. 만약, 정치를 하는 사람이 이러한 부처님의 ‘중도의 정신’을 안다면 이런 발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그 만장은 우리 불교계의 수장이신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직접 휘호를 써 매단 것이었다.
한갓 알량한 정치적 판단으로 이마저도 거부한 현 정권은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며칠 전 전국 교수회의에서 현 정권에 대한 강력한 시국선언이 나왔겠는가? 이젠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낙산사 홍련암은 강화도 보문사, 남해 보리암과 더불어 3대 관음기도도량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 파랑새의 전설이 있다. 의상 대사는 먼 천리 길 경주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동해의 바닷가인 이곳에 왔다가 파랑새가 굴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7일 동안 밤낮으로 기도를 하였다가 드디어 바다에 붉은 연꽃이 피고 그 위에 선 관음보살을 만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 암자를 지었는데 이것이 바로 홍련암이다. 통도사의 경봉 스님도 이곳에서 수행을 하다가 꿈속에서 백의관음보살을 만났다고 한다. 그때 스님은 ‘조사선(祖師禪)’을 체험한 기념으로 의상대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고 ‘텅 빈 누각에 달이 밝아 나그네 발길 더디니/ 이 흥취에 어찌 읊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조도(祖道)의 풍광(風光)을 이제야 알겠다/ 흰 갈매기 물을 치자 붉은 해가 솟네.’ 라는 한편의 선시(禪詩)를 남겼다. 그 때 스님은 그 힘 있고 유연한 필체로 홍련암에 편액을 걸었다.
홍련암 법당 마루에는 특이한 형태의 구멍이 뚫려 있다. 크기 8cm 정도의 정사각형 형태의 이 구멍으로 절벽과 파도치는 모습을 함께 볼 수가 있다. 이 구멍은 의상 대사가 672년 이 절을 창건한 이래 단 한 번도 막아 본적이 없다고 한다. 세간에서는 이 구멍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목조 건물에는 소금기가 있는 물이 치명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바다의 해풍을 막지 않고 오히려 구멍을 뚫어 놓은 까닭에 대해 많은 의문을 제시하기도 한다. <삼국유사>에서는 이 구멍에 대해 의상 대사가 친견했다는 관음보살을 후세 사람들도 보게 하기 위해 뚫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의상 대사에게 여의주를 바친 용이 홍련암의 불법을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구멍을 뚫었다는 주장도 있다.
요즈음에는 꽤 설득력 있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 동양종교학과 교수에 의해 제기되었는데 다름 아닌 스님들의 수행을 돕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구멍은 해조음의 파도소리를 들음으로서 깨달음을 얻는 하나의 장치라는 것이다. 파도소리. 불가에서는 해조음(海潮音)이라고 부른다. 불서인 <능엄경>에서는 ‘진정한 삼매는 들음으로써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다. 즉 관음보살의 수행법인 이근원통(耳根圓通)을 설명한 것이다. 능엄경에서는 수행하는 사람이 들어야 할 소리 중, 가장 귀중한 네 가지를 설명하고 하고 있는데 묘음, 관세음, 법음, 그리고 해조음이다. 구멍의 크기는 처음엔 30cm 가량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사람이 빠질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지금처럼 8cm로 줄였다고 한다.
‘백의관음무설설 남순동자불문문: 흰옷 입은 관음은 말없이 말하고 남순 동자는 들음 없이 듣도다.’
백의관음보살은 중생이 괴로울 때 그 이름을 외우면 곧 자비로써 사람들의 고뇌를 없애고 구원해 주는 자비의 보살이다. 또 구원을 구하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보문시현’ 이라고 하고, 나타나는 형태에 따라 천수, 십일면, 여의륜, 준제, 마두 등의 이름이 있는 보살이다. 남순 동자는 관세음보살의 왼쪽에 있는 보처존(補處尊)이다. 백의관음보살과 남순 동자는 입과 귀를 초월한 절대경지에서 ‘법 아닌 법’을 ‘들음 없이 듣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그 자비의 무한성은 인간의 감각을 초월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중도와 관용과 사랑’이 숨겨져 있다.
‘병상녹양삼제하 암전취죽시방춘: 꽃병위의 버들 항상 여름인데/ 바위 위의 대나무는 시방의 봄일세.’
꽃병 안에 있는 꽃은 죽어 흘러가는 세월을 온전히 받아 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바위 위에 살아 있는 대나무는 온몸으로 세월을 견디며 산다. 마치 꺾여 죽은 꽃은 세월을 지탱할 수 없지만 살아 있는 식물은 세월을 온전하게 버틴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늘 푸른 대나무의 생명력은 바로 중생 모두에게 내장된 불성인 것이다.
말하자면, 홍련암 주련 속에 숨겨져 있는 뜻은 ‘말하고 들음이 없는 무상(無相)의 세월 속에서도 백의관음보살은 중생에게 항상 자비를 베풀고 있다는 것’이다. ■ 조계종 원로의원
200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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