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에 ‘혼란스럽고 어려운 때’라는 말을 듣지 않은 시대가 언제 있었을까마는, 그래도 요즘처럼 혼란스러워 말을 하기 어려웠던 적도 드물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경제 성장 속도가 가장 빨라서 불과 수십 년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10대 무역 강국으로 바뀐 나라’라고 하는데, 우리나라가 아직도 ‘독재’의 망령을 걱정하고 ‘양극단’으로 갈라지는 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으니 보통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정말 힘든 시절임에 분명하다.
옛날에는 절대 빈곤이 해결되어 배부르게 먹고 몸 따뜻하게 옷 입고 이불 덮고 잘 수만 있으면 될 것 같았고, 그 다음에는 공부하고 싶은 자식들 학교에 보내 마음껏 공부를 하게만 되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 같았다.
군사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 정부가 들어서기만 하면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되고 남북문제도 술술 풀려나갈 줄 알았는데, 군사 독재 정권에서 민간 출신 정부로 바뀐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한편에서는 “독재의 망령이 떠돌고 있다”고 느끼고 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아직도 좌파가 준동하고 있다”며 서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전에는 모든 일을 ‘군사 정권’ 탓으로 돌릴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도 없다. 그럼 누구 책임인가?
어쨌든 우리 국민들이 자유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뽑고, 국회의원과 지방자치 단체장을 뽑아 국정과 지방 행정을 맡겨왔다. 그러면 모든 혼란의 제1책임자는 우리 국민 자신들이 되는데, 이건 너무 억울하다. 어쨌든 국민들이 남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니,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내세우는 ‘공약(公約)’을 보고 표를 찍을 수밖에 없는데 그 공약이란 것이 늘 부도수표와 같은 ‘공약(空約)’이 되었으니 말이다.
정권이 바뀌고 일정 세월이 지난 뒤, 혹 당선자를 찍은 사람은 “역시 내가 선택을 잘 했어. 선거 때 내걸었던 공약을 잘 지키고 있네!”라면서 안심하고, 혹 자신이 다른 사람을 찍었던 사람 입에서도 “내가 그때 이 사람을 찍지 않았었지만 그래도 우리 유권자들이 선택을 잘 한 것 같아. 나는 그때 신뢰를 하기 어려워 다른 사람을 찍었는데 이 사람 뜻밖으로 잘 하네!”라며 흐뭇해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기 어려운 것일까?
슬프게도 우리 현대사에서는 당선자를 찍지 않은 사람은 “내가 그렇게 하길 잘 했다” 하고 혹 당선자를 찍었던 사람은 “내가 잘못 찍어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후회하는 일이 반복될 정도로 역대 정권이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인류 역사상 어느 곳, 어느 때를 불문하고 ‘진보와 보수’, ‘좌와 우’가 공존하지 않고서 평화가 유지되고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았던 적은 없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나 사회 주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탄압하고 죽음으로 몰아간 적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반면에 인종·종교와 사상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화합했던 곳, 그런 시대에는 상대적으로 더 평화롭고 사회가 안정되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책을 출간하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그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 학자도 있었다. 그렇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하지만 튼튼한 몸통이 없이는 두 날개가 아무 기능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새가 한 쪽 날개로 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넘쳐나고 반대 쪽 날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좌우의 양쪽 날개를 지탱해 주고 균형을 잡아주는 튼튼한 몸통의 존재도 보이지 않으니 더욱 답답하다.
이병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