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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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거를 다 놓고 진실하게 실천할 수 있어야
과거는 묻지 마라. 미래도 생각지 마라. 오늘도 공했다 공했으니 찰나찰나 가버리는 것에 착을 두지 마라

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 어려움이 크게 나한테 벌어졌다, 병고가 생겼다, 뭐 어두움이 다가왔다 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살아오던 관습과 집착과 욕심에 의해서 착을 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는 묻지 마라. 미래도 생각지 마라. 오늘도 공했다. 공했으니까 찰나찰나 가버리는 것에 착을 두지 말라.’ 그랬는데 그거를 착을 가지고선 온통 작년에는 어땠느니 올해는 어땠느니, 물론 얘기야 하시겠지마는 함이 없이 얘기하고 속에다가 착을 두고 욕심 두고 그럭하고 하지 말고, 그대로 평범하게 ''아, 작년에는 이렇게 이렇게 했으니까, 올해는 이렇게 이렇게 해나가야지 되지 않겠어?'' 하고 말을 여여하게 그대로 해라 이겁니다. 꼭 하나 문제가 되는 게 그 생각입니다. 업도 붙을 자리가 없고 고도 붙을 자리가 없고, 병도 붙을 자리가 없고 아무것도 붙을 자리가 없는데, 그냥 이 심봉을 붙들고 의지하라고 그랬더니 그 생각으로 붙잡고는, 심봉은 주인공이라는 이름만 부르고 정작 붙드는 거는 그 고를 붙드는 거예요. “심봉을 의지하고선 바퀴는 돌아가라. 여여하게 돌아가라.” 그랬더니 심봉은 이름만 부르고 고를 붙들고 그 주인공의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그걸 놓고 불러야 되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의지하고 부르는 그것도 말일 뿐이죠. 생각으로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일거수일투족 거기다 의지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감사함도 거기 있고 즐거움도 거기 있고, 같이 붙들고 울 수도 있고 뭐 매사 거를 다 할 수 있는 것이 그 보배입니다. 보배!
그런데 거기에다가만 그렇게 심중을 굳히고 의지할 수 있는 데는 여기밖에 없다 하고 의지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의지하는 마음보다도 욕심 찬 마음, 그 탐심, 치심이 더 성하니 될 법이나 합니까. 또 바깥으로 하여튼 간섭하는 거는 뭐 이루 말할 수도 없죠. 저기 뭐 똥 굴러가는 거를 봐도 저 똥이 어디로 굴러가느냐고 또 야단이에요. 허허 참 내! 아이, 어디로 굴러가든지 무슨 상관이에요? 아, 새들도, 저 3층에 새들이 와가지고 뭐 먹을 거를 뿌려주면요, 사람이 안 다니는 데부터 먹어요. 그리고 사람이 다니는 데는 좀 주춤하고 물러서 있다가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면 와서 다 먹어요. 그렇게 영묘한데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까?
의지하라는 데는 안 하고, 그냥 남의 일 참견 다 하고 남의 탓은 다 하고. 탓할 사이가 어딨습니까? 지금 빌딩에 불이 나서 자기 살 구멍을 찾아나가는데 그 순간에 아, 남의 탓을 할 사이가 어딨습니까, 글쎄? 남의 탓 하지 남 참견하지, 그러고는 그 심봉에 의지했으면 ''거기에다가 다 넣고, 아들과 부모 모든 게 다 가설이 돼 있으니 거기다 놓고 그저 의지해라.'' 이렇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벌써 입으로 망해버려요! 입으로 다 깨트려!
여기다간 (가슴을 짚어 보이시며) “주인공!” 하고 이름만 부르고 어떤 때는 이름도 안 부르고 그냥 “요놈의 새끼야, 응? 배울 시기에 배워야지 이럴 수가 있느냐?” 하고 펄펄 뛰고 온통 난리가 나니, 외려 그럭하면 따뜻하질 못해서 달아나가요. 자기가 하는 게 어깨에 무겁고 또 그게 뭐가 무거우냐고 야단을 치면 달아나가요, 그냥 다 내려놓고 말이에요. 그러니까 아, 마음 하나만 그렇게 의지하고 모든 것을 놓고 간다면, 모든 것을 놓고 간다면이 아니라 모든 것을 놓고 가니깐, 그냥 거기에 착을 두지 마라 이겁니다. 한생각이 뛰어나야 내 가정도 뛰어난 살림살이가 되죠.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오늘 이렇게 말한 것이 제일 귀중한 겁니다. 우리가 찰나찰나 프로펠러 돌아가듯이 인생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그 자리에 뭐가 붙을 자리가 있느냐! 병도 붙을 자리가 없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마음 하나 챙겨서 진짜로 믿고 놓지를 못하니 아니, 내가 없는 말을 한 건 아니거든요. 현실에 그냥 진리를 상황대로 얘기했을 뿐이에요. 얘기했는데 그 진리대로 살지 않고 왜곡되게 사니까 진리대로 사시라 이런 얘기죠. 그러면 얼굴도 허옇게 피고 사는 날까진 틀림없이 살 겁니다, 아마! 허허허.
그리고 영원할 것입니다. 왜냐? 자기 자신이 자발적으로 어떠한 차원으로서 모습을 가지고 나오든 자기 자유니깐요. 이 지구 안에 태어나지 않고 상세계에 태어나든 별성이 되든 뭐가 되든 하여튼 자기 자유니깐요. 자유가 있다 하더라도 알아야 자유스럽게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춧돌이 있고 또 기둥이 있고 또 그 뭐? 대들보! 대들보가 있어야 하고 서까래가 있어야 하고, 지붕을 올려놔야 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살을 붙여야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옛날에는 ‘내 가죽을 얻었느냐? 또는 살을 얻었느냐? 뼈를 얻었느냐? 정수를 얻었느냐?’ 이런 문제를 가지고 옛날의 선지식들이 말씀하셨죠. 그러나 우리가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 이런 거를 따질 게 아니라, 우리부터 실천을 할 수 있고,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거를 뛰어넘는다면 이거는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를 보면 다 알고 들으면 알고, 그냥 다 알게 돼 있어요.
여러분 가정에 복잡한 것을 때로는 ''이렇게 이렇게 하시라''고 해서 그 한 가지는 면했으나 또 앞으로 닥쳐올 건 어떡합니까? 그러니까 여러분께서 아는 게 없는 아는 거를 다 놓고 내가 진실하게 실천할 수 있어야만이 어떠한 게 와도 대처할 수가 있는 거죠. 또 어떠한 게 와도 둘 아닌 도리를 알게 되면 아마 귀신이 이 세상에서 다 몰려온대도 “허허” 하고 웃을 겁니다. 왜냐? 둘이 아닌 까닭에 말입니다. 자기 손가락 하나가 자기 손가락 하나를 해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항상 내 마음으로만 믿고, 정신 상태가 어떻게 된 사람은 정성들이는 거를 보기 이전에 무조건 그저 마음을 내가 그쪽으로 주든지, 그쪽의 마음을 내가 가져오든지 해서 고칩니다. 그것을 약을 먹여서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을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될 수가 없어요. 그건 안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영계성 . 업보성 · 유전성 · 세균성 · 인과성 이 몸의 의식들 속에 다 끼여서 다 있습니다. 그러니 한생각을 그렇게, 공했다는 거를 알고 그냥 휙휙 마음을 편안하게 두고 그냥 넘어간다면, 그냥 거기에 기둥만 하나 딱 붙들고 있으면 모진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날아가진 않아요.
그와 같이 그냥 거기에 모든 것을 다, 폐일언하고 모든 거를 다 접근시켜 놓으면 마음에서 고장난 거 마음으로 고쳐야 하고, 의식에서 고장난 건 마음을 통해서 고쳐야 하는 겁니다. 모든 게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고 천차만별이 다 마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내가 형성된 것도, 이 차원의 모습을 가지고 지금 내가 사는 그것이 나의 소임입니다. 그건 누구한테도 속일 수가 없습니다. 소임을 가지고 영화 탤런트처럼 내가 소임을 받아가지고 나온 겁니다. 그걸 누가 만들어서 가지고 나왔느냐? 자기네들이 다 만들어서 가지고 나온 겁니다. 그러니까 ‘아, 이런 것도 붙을 게 없고 저런 것도 붙을 게 없고, 업도 붙을 게 없고 고도 붙을 게 없고, 병도 붙을 게 없다.’ 하는 건전한 생각으로 주인공의 그 줄만 잡고서 모든 거를 거기다가 감사하게 생각하고, 거기다가 바꾸어서 내가 대치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기른다면 그것으로써 인생살이는 족하게 할 수 있는 겁니다.
진짜로 여러분은 다 모르십니다마는 모른다고 해서 내가 지금 여러분한테 이렇게 말하는 게 “진짜로 믿고 실천을 하라.” 하는 거는 내가 모르든 알든 상관이 없이 진짜로 믿고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냥 그대로입니다. 그냥 그대로예요. 그냥 그대로 한 소식 넘어간 겁니다. 그런데 ‘아이고, 내가 배우지도 못하고 잘 알지도 못하니 내가 어떻게 그분같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한단 말입니다. 그 생각이 탈인 거예요. 그러니 스무드하게 넘어갈 일도, 집안에서 넘어갈 일도 생각으로 붙들어서 오히려 그것을 망가뜨리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벌여놓는 겁니다.
그렇게 벌어지면 이게 이렇게 벌어졌으니 어떡하느냐고 또 뛰어옵니다. 내가 볼 때에 어떻겠습니까? 세상에도! 그냥 갈 일을 왜 이렇게 만들어서 분란을 일으켜가지곤 또 왔나. 이렇게 되면 어떻게 생각이 드느냐 하면 기가 막혀서 말입니다, ‘허허, 참 기가 막혀서!’ 이럽니다. 혼잣말이죠, ‘참, 기가 막혀서!’ 이럽니다. 그거를 어디다가 말을 합니까? 그러면 “그저 열심히 관하세요. 그러면 내 관하는 대로, 진실하게 관하면 나도 거기 도와주게 돼 있어. 그러니 진정코 진실하게 관하라.” 하고 이렇게 보내놓으면 얼마 안 있어서 “아이고, 스님! 해결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글쎄 이래요. 그래 때로는 화가 나서 뭐라고 그러냐 하면 “당신의 전깃줄이 있으니까 내 전깃줄이 있고, 내 전깃줄이 있으니까 당신의 전깃줄이 있는 거지, 맞붙었기 때문에 불이 들어왔을 뿐이지 뭐가 고마워?” 이러죠. “고맙게 생각하려면 당신 주인공한테 고맙게 생각해!” 이러고요. 아이, 이거 정말이지, 나는 그렇게 힘드는 줄 몰랐습니다. 미처 그렇게 힘드는 줄 몰랐습니다.
나는 예전에도 내 몸뚱이를, 몸뚱이가 가루가 된다 하더라도, 내 이 한 가지만은 그랬습니다. 결정적으로 끝간 데 없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그겁니다. 이 세상을 다 주고 유혹을 한다 하더라도 겁 안 난다 하는 거요. 그래서 내가 어떤 때는 그럽니다. “돈을 하늘 땅만큼 가져온대도 당신 마음이 그렇지 못하다면 소용없어. 공덕이 안돼. 당신네들이 돈 가져오는 거 벌어서 먹고 살 양으로 내가 중노릇 하는 줄 알아?” 이럽니다. 그렇게 한다면 죽어야죠. 아니, 죽기 이전에 벌써 저 땅속에 사는 하천세계로 떨어질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위해서라면 나는 하천세계로 떨어진들 하나도 겁나는 거 없습니다. 난 생각이 다 있으니까요. 하하하. (대중 박수)
질문하실 분 있다면서요? 그런데 말입니다, 질문하기 전에 지금 내가 한 발짝 고정된 게 없이 화해서 돌아가니까 병 붙을 것도 없고, 업 붙을 것도 없고 고 붙을 것도 없다 이랬으니까 그 가운데서 내 마음이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가정이 흥해질 수도 있고, 가정이 아주 한데 떨어져서 일으켜 세울 수도 없는 형태가 되기도 하는 겁니다. “아주 그 재산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집도 날아가게 생겼는데 이거를 어떡했으면 좋겠습니까?” 그럴 때에 내 극치적으로 이럽니다. 나도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방편으로 말을 안 해주고는 안 되죠. 왜냐하면 너무 고통스러워하니깐요. “아주 진실하게 관하면 귀인이 생기게 돼. 그러니까 그렇게 하라.”고 그럽니다. 그럭하고 그 귀인은 부처님께서 해주게끔 합니다. 하하하.
(다음 호에 계속)
200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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