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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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삶과 죽음은 둘 아닌 하나
[원문]
서래일촉전삼세(西來一燭前三世)
남국천년천오종(南國千年闡五宗)
유상차증청정채(遊償嵯增淸淨債)
백운회수여수동(白雲回首與誰同)
-화엄사 각황전

[번역]
서쪽에서 온 등불 하나 삼세에 전하니
남국 천년에 오종이 넓게 퍼지도다.
뉘라서 이 청정한 공로 더해서 갚을 손가
누구와 더불어 흰 구름에 머리 돌리리.

[선해(禪解)]
지난 토요일 아침, 한국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정치와 종교를 뛰어 넘어 모든 국민들의 가슴에 슬픔과 충격을 던져 주었다. 얼마 전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맹세했던 도덕성을 무너뜨린데 대해 유감을 소회(所懷)한 적이 있다. 이는 그를 나무라는 것이 아닌 일종의 자기반성에 대한 참회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민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은 자기반성을 너무 깊게 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말았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절실하게 깨닫고 말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그가 이런 부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으로서, 살아서 지은 죄를 참회하고 더 많은 가치 있는 일을 할 것을 다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그러나 그는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닌 하나’ 임을 깨닫고 껍질뿐인 몸을 홀연히 벗고 말았다.
인간의 삶속에는 ‘진실과 가식’의 세계가 늘 존재하고 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가식인가를 구별하는 것은 보편적인 사람의 ‘눈과 마음’이다. 이것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 전 대통령이 아무리 자신의 진실을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보편적인 사람의 눈에는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죽음으로 인해 진실과 가식조차 구별할 기회를 잃고 말았다. 이미 그는 그의 잘못을 죽음을 통해 모든 이에게 스스로 용서를 빌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위대한 부처님의 말씀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던지고 홀로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남아 있는 사람들의 슬픔은 어떻게 하랴.
그렇다.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닌 하나’이다. 사람이 만약 이러한 부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는다면 이 세상에는 욕심이 사라지고 사랑과 자비가 늘 넘쳐 날 것이 틀림없다.
오늘은 사설(私說)이 길었던 것 같다. 그럼 화엄사로 사찰 주련여행을 떠나 보자.
지리산 화엄사는 건축적으로 매우 특이한 사찰로서 주불전은 두 건물이다. 유명한 각황전 (국보 67호)과 대웅전(보물 299호)이 하나의 마당을 감싸며 서로 직각 방향으로 서 있는 곳이다.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각황전은 원래 장육전이라고 불려, 거대한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는 3층의 대전각 이었다.
실내에는 돌로 벽을 두르고 그 위에 화엄경을 새겨서 돌벽 주변을 돌면서 화엄경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말하자면 화엄 신앙의 건물인 셈이다.
대개의 절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람을 배치하지만 이 절은 각황전이 중심을 이루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주불(主佛)로 공양한다. 그럼 각황전 주련의 내용 속으로 들어가 보자
‘서래일촉전삼세 남국천년천오종: 서쪽에서 온 등불하나가 삼세에 전하니 남국 천년에 오종이 넓게 퍼지도다.’
달마가 불교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전파한 일은 하나의 등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작은 일은 전세(前世), 현세(現世)를 거쳐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널리 동남아까지 불교를 전파하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또한 이 불교는 미래에도 전 세계에 전파될 것이 분명하다. 말하자면 그 작은 등불하나가 불교 대승의 다섯 종파인 천태종, 화엄종, 법상종, 삼론종, 율종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유상차증청정채 백운회수여수동: 뉘라서 이 청정한 공로 더해서 갚을 손가 누구와 더불어 흰 구름에 머리 돌리리.’
달마가 불교를 동쪽으로 전한 업적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청정(淸淨)하다. 이 위대한 업적을 이어갈 사람은 바로 중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바로 우리가 아니겠는가. 이는 그저 흰 구름이 흘러가고 있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이치가 아니겠는가? 참으로 지당하고 지당하신 부처님의 말씀이다.
화엄사의 각황전에는 특별한 전설 하나가 내려오고 있다. 그것은 숙종대왕의 공주가 각황전의 시주로 환생했다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계파 선사가 장육전 중건불사 대발원의 기도를 올린 지 백일로 회향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 그 장육전의 화주가 될 사람이 바로 공양주 스님으로 간택되었다. 공양주 스님은 공양을 짓는 수행만 했을 뿐 화주에는 전혀 인연이 없어 걱정이 태산 같았다. 밤새껏 걱정하며 대웅전에 정좌(正坐)하여 부처님께 기도를 올렸다.
그 때 비몽사몽간에 문수보살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그대는 걱정 하지 말라. 내일 아침에 바로 화주를 위해 떠나라. 그리고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시주를 권하라” 하시며 사라졌다고 한다. 공양주 스님은 용기를 얻어 대웅전 부처님께 절을 하며 ‘맡은 바 화주 소임을 잘 완수하도록 가호를 내리소서’ 하고 일주문을 나서서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가니 그의 앞에 남루한 옷을 걸친 거지 노파가 절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화주승은 노파를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거지노파에게 어떻게 장육전을 지어달라고 하랴 싶어서였다.
화주승은 하루 종일 노파에게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시주하기를 간청했으나 노파는 아무런 대안이 없었다.
그러나 노파는 화주승의 정성에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가난함을 한탄하다가 이윽고 화엄사를 향하여 합장하고 대 서원을 발했다.
노파는 “이 몸이 죽어 왕궁에 태어나서 큰 불사를 이룩하오리니 문수보살이시여! 가호를 내리소서.” 이렇게 원력을 아뢰며 수십 번 절한 뒤 소(沼)에 몸을 던졌다. 그 후 오륙년이 흘렀다.
화창한 봄날 화주승은 창덕궁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유모와 함께 궁 밖을 나와 놀던 어린 공주와 마주치게 됐다.
어린 공주는 화주승을 보자 반가워하며 달려와서 우리 스님이라면서 누더기 자락에 매달렸다. 그런데 이 공주는 태어나서부터 한쪽 손을 쥔 채로 펴지 않았다. 화주승이 꼭 쥐고 있던 그 손을 만지니 신기하게도 공주의 손이 펴지는데 손바닥에 장육전이라는 석자가 적혀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숙종대왕은 화주승을 내전으로 불러 자초지종을 모두 듣고 감격하여 “오! 장하도다. 노파의 깨끗한 원력으로 오늘의 공주로 환생했구나. 그 원력을 이루어 줘야 말고” 하며 장육전 건립의 대 서원을 발하였다.
이렇게 하여 나라에서는 공주를 위해 장육전을 중창할 비용을 하사하였고 장육전이 완성되자 사액(賜額)을 내려 각황전(覺皇殿)이라고 했다.
불도를 깨달은 왕이란 뜻과 임금님을 일깨워 중건하였다는 뜻으로 각황전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 조계종 원로의원
200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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