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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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제10장 證果 ⑭ <끝>
지관수행은 진실한 마음으로 염불하는 것

번뇌장 등 삼장번뇌 끊으면 열반삼덕 장애
지관염불로 생멸이 없는 구경의 법 증득을

行者當知初中後果皆不可思議 故新譯金光明經云 前際如來不可思議 中際如來種種莊嚴 後際如來常無破壞 皆約修止觀二心以辨其果故 般舟三昧經中偈云

諸佛從心得解脫 心者淸淨名無垢
五道鮮潔不受色 有學此者成大道

수행자는 마땅히 초과(初果) 중과(中果) 후과(後果)가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초과는 초발심주(初發心住)인데, 이는 일품무명(一品無明)을 타파하고 백계(百界)에 분신하여 팔상성도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므로 불가사의하다.
중과는 이주(二住)에서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십지(十地) 등각(等覺)까지 총 사십일위(四十一位)를 말한다. 이는 백 천 만억 세계에서 분신을 하여 성불을 한다. 그러므로 불가사의하다. 그 이유는 사십일품무명을 타파하였기 때문이다.
후과는 묘각(妙覺)을 말한다. 이는 구경극치의 과보인데, 여기에 이르면 무명을 끝까지 타파하고 번뇌가 완전히 제거되어 최후에 열반산의 정상에 올라 무명번뇌를 영원히 이별한다. 즉 자각각타 원만각인 삼각(三覺)이 원만하고 만덕을 구비하여 최후로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원만하게 하여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다. 그러므로 불가사의하다.
초 중 후 삼과는 모두가 생멸이 없는 구경의 법이다. 이는 분별심으로 헤아리는 것이 불가능하고 언어로 의론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마음을 일으켰다 하면 빗나가고 한 생각 요동하면 어긋난다. 그러므로 불가사의하다고 말하였다.
<금광명경(金光明經)>에서는 “전제여래는 불가사의하며 후제여래는 항상 파괴됨이 없기 때문에 불가사의하다”라고 하였다. 여래는 부처이다.
초 중 후로 삼제를 나누어 전제여래가 불가사의하다는 것은 현재의 범부를 지적한 것이다. 일체중생은 무명망상에 미혹해 있다 할지라도 본성은 각자 진여묘각명성(眞如妙覺明性)제불공덕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어 원만하지 않음이 없다. 이것이 어찌 불가사의하지 않겠는가.
중제여래는 현재 수행하는 사람인데, 부처의 이치를 연구하여 정진 수행함으로써 갖가지 공덕으로 장엄한다. 모든 악업을 짓지 않고 뭇 선공덕은 실천하여 일반적으로 이익이 있는 것은 수행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이것은 복덕장엄에 해당된다.
가령 경전법문을 듣고 오묘한 의미를 연구한다면 이것은 지혜로 장엄한 것이 된다. 이와 같이 복덕과 지혜로서 우리의 불성을 장엄하는 것이 바로 중제여래이다.
후제여래는 부처님 과위인데, 무상사(無上士)라고도 한다. 예를 들면 석가여래와 아미타불과 약사여래 등이 여기에 포함되는데, 다시는 그분들을 능가할 자가 없다.
이 복덕장엄에 도달하면 수능엄삼매가 견고하여 파괴되지 않으며 지혜의 덕이 장엄하여 실상의 오묘한 지혜가 평등한 대자비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항상 파괴되는 일이 없다고 말하였다.
반주삼매(般舟三昧)는 상행삼매(常行三昧)를 말한다. 구십 일을 한정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앉지도 눕지도 않기 때문에 역시 불립삼매(佛立三昧)라고도 한다. 만일 이 삼매가 성취되면 부처가 목전에 나타나게 된다.
<반주삼매경>의 게송에서는 이와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부처님은 자기 마음에서 해탈을 얻었으며 모든 부처님은 과거 현재 미래 시방삼세 일체제불이다. 이 모든 것이 일념심성을 따라서 해탈을 얻었다. 만일 마음을 떠난 밖에서 따로 얻을 것이 있고 증득할 것이 있다고 구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옛말에 “제불의 오묘한 도는 모두가 중생심가운데서 구한다”라고 했다. 중생심은 허망한 마음이 요동치면서 잠시도 쉬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생의 마음이라고 한다.
마음이 청정한 것을 무구(無垢)라고 한다. 중생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고 본래 지혜 광명이다. 비록 번뇌에 쌓여 있다 해도 마음은 번뇌에 오염되지 않고 원래 청정하다. 그러므로 무구라고 하였다.
오도(五道)는 선명하고 청결하여 색진에 오염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오도는 천상 인간 지옥 축생을 말하며 아수라는 오도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중생이 오도로 생사유전을 거듭한다 해도 자기의 본심은 항상 청정하고 선명하여 색진에 오염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오도는 선명하고 청결하고 색진에 오염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때문에 이 마음에서 지관을 학습하는 자는 위없는 대승불도를 성취할 수 있다.
이것은 “마음이 부처이고 마음으로 부처가 되고 마음이 만법의 근원이며 마음으로 만법을 일으킨다”라고 한 경우에 해당된다.
제불 정변지해(正遍知海)는 모두가 마음을 따라서 일어난다. 따라서 이 마음에서 지관을 수행한다면 제불지혜와 공덕을 원만하게 성취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것을 배우는 자는 대도를 성취한다”라고 하였다.

誓願所行者 須除三障五蓋 如或不除 雖勤用功 終無所益
‘서원은 수행자’라고 한 문장은 지자대사께서 최후에 이르러 부촉한 부분이다. 서원이라는 두 글자에서 대사의 자비심이 극도로 간절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서’는 그 마음에서 하려고 한다는 의미이고 ‘원’은 그 목적을 성취한다는 의미이다.
오직 원하는 것은 수행자가 삼장(三障)과 오개(五蓋)를 제거하기를 바랄 뿐이다.
삼장은 번뇌장(煩惱障) 업장(業障) 보장(報障)을 말한다. 중생들은 갖가지 번뇌로 갖가지 업을 조작하기 때문에 생사의 과보를 불러들인다. 삼장을 제거하려는 이유는 그것이 열반삼덕을 장애하기 때문이다.
번뇌장은 반야덕을 장애하고, 업장은 해탈덕을 장애하고, 보장은 법신덕을 장애한다. 만일 삼장을 제거한다면 삼장에 나아가서 열반삼덕을 환하게 드러낼 수 있다. 오개는 앞에서 설명했던 탐욕심과 진심과 치심 등인데, 이러한 오개가 있으면 우리의 청정한 마음을 덮어버린다. 만일 이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부지런히 수행한다 해도 끝내 이익이 없다. 이를 비유하면 마치 밝은 태양이 연기나 구름이나 안개에 가려서 빛을 발하지 못한 것과 같다. 따라서 반드시 다섯 종류의 장애를 제거해야만 수행의 효과가 있다.
수습지관의 전체는 열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매 장마다 지관염불로서 구경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 없다. 이 한 줄의 문장은 비록 대사가 최후로 부촉한 것이기는 하나 유통분에 해당되기도 한다.
바라는 것은 불법을 배우며 이 책을 열람하고 연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지런히 지관을 수행하는 것이다. 지관이란 무엇이겠는가. 진실한 마음으로 염불하는 것일 뿐이다.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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