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집착에 물들어 사물의 본래 모습 못 봐
치우치지 않고 진리의 핵심 보는 안목 갖춰야
[원문]
마하대법왕(摩訶大法王)
무단역무장(無短亦無長)
본래비조백(本來非早白)
수처현청황(隨處現靑黃)
-마니산 정수사
[번역]
거룩하고 위대하신 부처님은
짧지도 길지도 않으시며
본래 희거나 검지도 않으며
모든 곳에 인연 따라 나타나시네.
[선해(禪解)]
어느 절이든 사찰의 유래는 깊다. 그것은 그 사찰만이 가진 특색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된 사찰들은 그 나름의 독특한 정취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사찰들이 품고 있는 전통성들이 현대와 어울려 차츰 그 품격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건물을 재건하거나 중창을 할 때 반드시 짚고 나가야 할 보존법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건물을 해체 보수 할 때는 기존의 건물에 대한 면밀한 검토 작업이 사전에 필요하다는 말이다.
몇 년 전 우리는 참으로 어이없게도 일제침략과 한국전쟁으로부터도 지켜왔던 국보 1호 남대문을 한 개인의 원한과 욕심으로 인해 잃고 말았다. 이유야 어떻든 심히 유감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미 지나간 상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다음 이다. 수백억을 들여 다시 남대문을 재건하는데 있어 필요한 것은 남대문이 가지고 있었던 그 위용과 품격을 어떻게 재건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찰 건축에 있어 최고의 권위자들이 모여 치밀한 계획아래 다시 세워지겠지만 염려가 앞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조상들만이 가진 독특한 사찰 건축기술을 현대인들의 건축술의 잣대만으로 설계 재건돼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보다 더 치밀한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사찰 속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국가적 재산인 국보와 보물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관리가 전적으로 그 사찰의 주지나 스님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참으로 우리 스님들의 공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만일 사찰에 스님들이 없다면 국가는 국보와 보물들의 보존을 위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문화재 관리에 대한 사찰의 지원이 턱없이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 물론, 공정하고 정당한 관리에 의해 집행되는 것은 상징적인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래된 사찰의 보수나 관리에 있어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이다. 더욱이 사찰 보수나 중창에 있어 기존 문화재의 모양과 채색 등을 보다 신중하게 검토하여 재건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소홀히 하다보면, 전통사찰이 마치 현대에 지은 사찰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심히 안타까운 심정마저 든다.
최근에도 전통사찰들의 주변이 개발되면서 사찰의 수행환경이 훼손되는 사례들이 이어지고 있다. 법적인 보호 장치가 미약한데다가 개발론자들의 현실적인 이익을 향한 열망이 너무나 강해 사찰로서는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전통사찰을 종교적 시각에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민족의 문화유산, 무형과 유형의 유산과 거기에 스님이 역사를 지키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다. 하지만 이것도 다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짚고 나아가야 할 일이라는 점을 반드시 하고 싶다.
오늘의 주련 여행은 정수사다. 이 절은 강화도 마니산 동쪽아래에 누운 작고 아담한 절이다. 대웅전 툇마루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면 멀리 인천의 영종도와 은빛으로 빛나는 갯벌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라 선덕여왕 때 회정 스님에 의해 창건된 이절의 대웅전은 조선 초기 주심포 양식으로 정면에는 특이하게 널찍한 마루가 있어 마치 시골집을 찾는 기분을 갖게 한다.
법당 건물의 기둥은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무게의 중심이 공포와 기둥을 통해 지면으로 전달되는 특이한 구조로 초석(礎石)은 가공하지 않은 자연석이다. 이러한 건축물은 봉정사 극락전이나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에서도 볼 수 있는데 조선시대 대표적인 건물로 보물 제161호이다.
대웅전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네 분의 협시불이 모셔져 있다. 천장의 중앙에는 움푹 파인 우물식이며 그 주위는 빗천장으로 학(鶴)과 용(龍)을 그려 넣어 법당내부는 온통 문양(紋樣)으로 가득 찬 부처님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창호는 꽃살 무늬로써 화려함과 정교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데 겹처마의 단청은 여느 절과는 색에서부터 문양까지 그 차이가 매우 커 아름답다.
정수사에는 유명한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상사화다. 상사화는 꽃이 필 때는 잎이 없고 잎이 달려 있을 때에는 꽃이 없어, 꽃과 잎이 서로 그리워한다는 꽃으로써 늦여름이면 정수사 마당 앞의 산자락에는 노랑 상사화 군락이 형성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정수사 하면 차(茶)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차(茶)의 성지라고 할 만큼 물맛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처음 절의 명칭은 정신수련을 해 도를 얻으라는 뜻인 정수사(精修寺)로 표기를 했다가, 무학 대사의 제자이며 끽다(喫茶)의 달인으로 불렸던 함허(涵虛) 스님이 경내에 솟는 맑은 샘물을 보고 정수사(淨水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함허 스님이 남긴 한 수의 선시(禪詩)는 이 절이 가진 차의 맛을 단 한 줄로 압축한다.
불가에서 차를 마시는 행위는 곧 참선 수행이 되는 ‘다선일여(茶禪一如)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불교와 차는 종교적, 문화적으로 혼연일체가 되어 자연스레 꽃을 피웠다. 차를 마시는 일은 부처와 내가 하나 되는 삶, 차와 선이 하나 되기도 하고 부처가 되기 위한 하나의 수행과정이다.
그래서 고려 때 지눌스님은 “불법은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곳에 있다”고 설법하였으며 함허 스님은 “한 조각의 마음, 한 주발의 차에 있나니”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대웅전의 주련 속에 담긴 ‘거룩하고 위대하신 부처님은/ 짧지도 길지도 않으시며/ 본래 희거나 검지도 않으며’는 주된 부처님의 가르침인 중도(中道)사상이다. 말하자면 현실을 바라보매 있어 모자라지 않고 넘치지도 않는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모든 곳에 인연 따라 나타나듯’이 부처님이 반드시 화현한다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면 깨달음이란 현실과 떨어져 있지 않으며 이것이 바로 보살의 바라밀을 실현하려는 사상이다.
쉽게 말해서 중도란 ‘이변비중(離邊非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이변(離邊) 즉 양변을 떠나나 비중(非中) 그렇다고 가운데도 아니다.’라는 의미인데, 쾌락과 고행, 이익과 손해 등의 일체의 양변을 떠나되 그 둘의 중간에도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도라는 말이 처음 나온 것은 부처님이 처음 법륜을 굴릴 때 나온 말씀인데 일단 승가에서는 쾌락과 고행의 어느 쪽에도 기울지 말고 수행하라는 의미로 보면 된다.
더욱이 요즘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보지 않고, 항상 말을 덧붙여 말하거나 진실 그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 이는 몸속에 욕망에 대한 집착과 거짓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인데 부처님의 중도 사상은 ‘자기를 속이지 말고 똑바로 보라’는 것이다. 정수사 대웅전의 주련 속에는 이와 같은 부처님의 중도 사상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 조계종 원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