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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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마음 그릇을 크게 하라
우주에서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부처님의 공덕
지혜 키워 무량한 진리에 부합하는 사람이 ‘부처’

[원문]
찰진심념가수지
(刹塵心念可數知)
대해중수가음진
(大海中水可飮盡)
허공가량풍가계
(虛空可量風可繫)
무능진설불공덕
(無能盡說佛功德)
-북한산 문수사 대웅전

[번역]
인간의 티끌 같은 마음을 다 헤아리고
저 넓은 바다의 물을 다 마신다고 해도
가히 허공도 잴 수 있고 바람도 잡아 맬 수 있으나
한량없는 부처님 공덕은 다 말할 수 없네.

[선해(禪解)]
한 마디로 말해 불교는 마음 하나 잘 짓는 종교이다. 말하자면, 마음관리를 잘 해야 하는 종교이다. 이 마음 하나를 항상 청정하게 잘 유지해야만 나날이 즐거워질 수가 있으며 또한 인생의 궁극적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마음 하나를 잘 짓지 못해 오늘날 좋지 못한 결과를 만드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럴 때면 안타까운 생각마저 든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마음을 잘 짓는 것일까? 인간이 중생과 다른 이유는 사회적 기능과 직관력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그러한 직관력을 갖추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있다면 바로 마음공부다. 왜냐하면 인간이 가진 마음이란 원래부터 청정한 것이지만 사회 속으로 들어 올 때부터 욕망이 생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사회가 어려워진 것도 마음속에 생긴 이 욕망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생기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주련 여행의 주제는 ‘마음’에 있다. 문수사는 명산인 북한산 자락에 있는 천년 고찰이다. 고려 예종(1109년) 때 뛰어난 서예가로 알려진 신품사현(神品四賢) 중의 한 명으로 이름을 드날린 묵암 탄연에 의해 창건됐다. 당시 그는 이곳에 있는 암굴(暗窟)속에서 수도를 하던 중 문수보살을 목격하고 문수암(文殊庵)이라는 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고성(固城) 문수사와 함께 한국의 문수보살 3대 성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불자들에게는 오백나한을 모시고 있는 나한도량으로도 유명하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나한전·산신각·요사채 등이 있는데 대웅전의 문수보살상은 고종의 비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조성한 것이고, 석가모니불은 영친왕 이은(李垠)의 비인 이방자(李方子) 여사가 조성했다. 이곳에 있는 문수봉은 전망이 매우 좋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특히 묵암 탄연이 수행 한곳으로 알려진 문수천연동굴은 천연의 암반 속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 깊이가 30m가 넘는다.

문수봉에서 한눈에 보이는 북한산은 그야말로 비경(秘經)이다. 봄이면, 철쭉과 진달래꽃이 붉게 타오르고, 가을이면 붉은 단풍잎이 온 산을 불태운다. 대남문 옆 깎아지른 절벽아래 아찔하게 서있는 문수사는 한 폭 풍경화처럼 아름답다. 하지만 산불이나 태풍 때문에 몇 번 소실의 위기를 맞기도 했으며 그 명성만큼이나 한국사의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4·19로 인해 실각한 이승만 전 대통령과, 5. 18군사 쿠데타의 주인공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화가 이곳에 숨어 있다. 이승만의 어머니는 여기 문수동굴에서 백일기도를 드려 아들을 얻었으며 전두환 대통령이 쓴 편액이 문수천연동굴의 입구에 걸려 있다. 이 두 대통령의 어두운 과거사가 아이러니컬하게 녹아있는 것이다. 어떻든 북한산 꼭대기 벼랑 끝에 마치 제비집처럼 걸쳐있는 문수사는 그 유래만큼 명성황후, 이승만,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비운의 역사가 숨겨져 있다.
조선의 국모였던 명성황후에 의해 중건된 대웅전 안의 문수보살상은 중생의 소원을 들어 주는 곳으로 유명하여 많은 불자들이 찾는다. 원래 문수보살은 지혜가 뛰어난 보살로서 석가가 돌아가신 후 인도에 태어나 ‘반야(般若)’의 도리를 선양하여 지금도 반야 지혜의 상징으로 불리고 있다. 또한<반야경(般若經)>을 결집, 편찬한 보살로도 알려져 있는데 <화엄경(華嚴經)>에서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협시보살(脇侍菩薩)로서 보현보살(普賢菩薩)과 더불어 삼존불(三尊佛)의 일원으로 실천적 구도자의 모습을 하고 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돕는다. 대웅전의 글씨는 몇 번의 소실 때문에 누가 썼는지 모른다.
명성황후가 문수사에 문수보살상을 조성한 이유도 나라를 빼앗긴 우둔한 신하들에게 지혜를 가르쳐주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대웅전 주련의 내용들도 부처님의 ‘지혜의 공덕’을 예지하고 있어 문수보살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찰진심념가수지 대해중수가음진 허공가량풍가계’의 주련 내용은 인간이 티끌 같은 마음을 헤아릴 수 있고, 또한 저 많은 바다 물을 다 마실 수 있으며, 허공도 잴 수 있고 바람도 잡아 맬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인간은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고, 바닷물을 마실 수 없으며 허공을 재지 못하며 부는 바람을 손으로 붙잡지도 못한다. 그런데 왜 부처님은 인간이 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일까? 이는 부처님의 위대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하나의 대구법이다.
인간이 그런 위대한 것을 설령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즉, ‘무능진설불공덕’ 부처님의 다함 없는 공덕에는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뛰어난 비유라고 할 수 있는데 부처님의 공덕은 그 어떤 어려운 것까지도 할 수 있음을 강조한 경구(經句)라고 하겠다.

인간의 마음은 그릇으로 따지면 쓰기에 따라 작은 종지가 될 수 있고, 때로는 저 바다와 같이 넓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지혜도 그 그릇이 커야 제대로 담을 수가 있다. 마음은 인간의 중심(中心)인데 어떤 마음의 그릇을 지니고 있는가에 따라 그 인격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들은 어리석음 때문에 자꾸만 부처를 멀리서만 찾으려고 한다. 부귀나 명예, 쾌락 그런 것만을 추구하다보면 진정한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 수 없으며 또한 자신의 존재조차 까맣게 잊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남을 위하는 이해심과 온전한 사랑을 기대할 수 없다.
일찍이 부처님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선악과 기적은 다만 마음이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날 경제가 힘들다고 생각되는 것도 어쩌면 우리 마음이 지어내는 우울함 때문이 아닌가 싶다.
■ 조계종 원로의원
200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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