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 엎드러졌으면
그 자리에서 땅을 딛고
일어나야 하는 것이
바로 인생의 진리입니다
운전수가 차를 끌고 다니지 차가 운전수 끌고 다니는 거 못 봤죠? 운전수는 위로는 기름을 넣고 아래로는 차를 끌고 다니죠. 그렇듯이 그 운전수는 양면을 다 가지고 있어요. 마음의 주인이라는 거죠. 마음의 주인이 있으니까 이끌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것을 거기다가 맡기고 거기서만이 잘 이끌고 갈 수 있다고 믿으라는 겁니다. ‘안되게끔 하는 것도 거기다. 그러니까 되게 하는 것도 거기다.’라는 거죠. 안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되게 할 수 있는 능력도 있죠. 또는 잘되게끔, 싱그럽고 내 마음이 참 잠잠해지고 아주 좋게 될 때는 감사하게 거기 맡기고요.
자기 마음의 주인밖에 없어요. 어디 믿을 데가 없어요. 허공을 믿습니까, 이름을 믿습니까, 형상을 믿습니까? 또는 스님이나 신부, 목사님의 고깃덩어리를 믿습니까? 고깃덩어리를 믿는 게 아니라 근본을 믿는 겁니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연결돼서 돌아가는 그 근본, 한마음 주인공! 자기를 끌고 다니는 자기 주인공! 자기 주인공만이 자기를 이끌어 준다는 얘기죠. 자기 마음의 주인만이 이익하게 할 수 있다는 거죠. 바깥으로 ‘하나님 아버지시여! 부처님이시여!’ 이렇게 찾는 것은 기복이고 미신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이전에, 바깥으로 찾는 것은 공덕이 하나도 없다고 그랬습니다. 이득이 하나도 없어요. 그건 이름일 뿐이니까요. 나로부터 이 세상이 벌어졌으니까 나부터 알아야죠. 내 집부터 전화를 놔야 남의 집에서 전화도 오고 전화도 할 수가 있죠. 내 집에 전화가 없는데 어떻게 전화 올 때를 기다리겠습니까. 그리고 전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나로부터입니다. 내가 길을 가다가 엎드러졌으면 그 자리에서 땅을 딛고 일어나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 인생의 진리입니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업식이 컴퓨터에 입력이 돼서, 자기가 나쁜 짓을 했든 좋은 일을 했든 과거에 살던 그 차원대로 입력이 돼서 현실에 나오는 겁니다. 현실에 그렇게 충동질하는 겁니다. 충동질한다고 그대로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내 마음으로 일어나는 것을 다스려서 ‘주인공! 그렇게 해서는 안 되잖아. 길을 잘 인도해서 빛나게 살게 해. 너만이 그렇게 할 수 있어.’ 하고서 거기다 맡겨 놓는 겁니다.
공동묘지에 가 보세요. 남녀노소를 막론해 놓고, 남자 여자, 늙고 젊고 그것을 막론해 놓고 영령입니다. 그대로 영령이 돼서 수만 명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영혼이라는 것은, 마음이라는 것은 체가 없어서 지구 바깥을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지어서 창살 없는 감옥에서 애쓰는 것이니 더욱 이 마음의 도리를 알아야죠. 마음은 체가 없는 반면에 차원이 높게 어디든지 창살을 벗어나서, 이건 ‘이 방통 안을 벗어나서’ 이 소립니다. 어디든지 마음은 갈 수가 있습니다. 시공을 초월해서 말입니다. 가고 올 수가 있는 거,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거,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거, 그래서 오신통이라고 합니다. 오신통은 여러분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부터라도 그 업식을 다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과거에 입력된, 즉 시쳇말로 비유를 하겠습니다. 카세트에 여러분이 살던 노래를 하나 가득 넣었다고 봅시다. 그러면 그 카세트에다가 지금 현재의 노래를 다시 넣었을 때는 앞서의 노래는 다 없어졌죠. 없어지죠? 그러니까 과거의 그 악업 선업은 다 무너질 수가 있다는 얘깁니다.
여러분 마음의 주인한테 모든 거를 맡겨 놓으세요. 끌고 다니는 이 몸뚱이는 집일 수도 있고 종일 수도 있어요. 마음의 주인이라는 것은 나를 영원히 끌고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영원히 끌고 가는 그 자체, 그것이 과거도 끌고 가고 지금 현재도 끌고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잘 못 냈기 때문에 악과 선이 두루마리로 돼서 입력이 됐던 것입니다. 여기서 이렇게 우리들의 만남이 있는 것도 거기에서 순종이 현실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카세트에 담긴 것처럼 돼 있으니까 거기다 지금 새 마음으로, 즉 말하자면 ‘마음의 주인! 너밖엔 나를 이끌어 갈 수 없어. 영원한 친구!’ 하고 모든 것을 맡겨 놓으란 말입니다. 영원한 친구라고 해도 돼요. 주인공이 영원한 친구니까요. ‘영원한 친구! 너밖에 나를 이끌어 갈 수 없어. 너밖에 나를 돌봐줄 수 없어. 내가 새 마음을 가지고 좀 더 빛나게 자유스럽게 살 수 있게 하는 거는 너밖에 없어.’ 하고 거기다가 모든 거를 다, 이 세상에 난 거하고 뭐, 똥 누는 거니 자고 깨는 거니 모든 거를 거기다 맡기고 다 거기서 한다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으세요. 자기가 자길 못 믿으면 어떡합니까? 자기가 자기를 끌고 다니는 자기 주인을 믿어야지, 바깥으로 부처님이니 하나님이니 온통 이름을 불러도 소용없어요. 자기 마음의 주인은 영원히 이끌어 주는 주인입니다. 진짜로 자기 내면세계에서 찾으세요. 내면세계를 믿으세요! 그리고 내면세계에서만이 여러분의 앞날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카세트에 녹음하는 것과 같아서 그렇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렇게 훌떡 벗어날 수 있다 이겁니다. 마음으로 지어서 ‘나는 그렇게 못한다.’ 이렇게 하시지마는 예전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몸뚱이로 문을 통해서 다니는 자는 소인이요 중생이요, 문을 통하지 않고 벽이나 봇장이나 아무 데로나, 마음대로 다니는 자는 바로 부처라고 그랬어요.
내가 지금 말을 뒤죽박죽 하는데, 여러분을 보는 순간 너무 안타까워서 말할 의욕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오직 조건 없는 사랑,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그 마음밖엔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허허허…. 우리가 ‘자비 자비’ 하고 ‘사랑 사랑’ 하지만 사랑이 뭐 말라빠져 죽은 게 사랑입니까? 꼭 조건이 있는 사랑을 모두 하거든요. 조건 없는 사랑을 한번 해 보세요. 대가 없는 사랑 말입니다. 모두가 서로 돕고 이렇게 하는 것도 조건 없이 해 보세요.
어떠한 부딪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바로 내 탓이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탓이다.’ 그러고 ‘한마음 주인공! 당신만이 얽히고설킨 이것을 다 풀어 줄 수 있어.’ 하고, 울더라도 거기를 붙들고 울어야만 합니다. 이 말 저 말을 끌어다가 하면 오히려 더 산란할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오로지 자기 주인공만 붙들고 사세요.
여기 스님이 그 세 구절을 여러분한테 다 써 주셨을 겁니다. 거기에도 있지만, 주인공! 자기 영원한 친구! 여러분이 그 도리만 찾는다면 여러분의 앞날이 참 밝아질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거짓말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 영원한 자기 친구를 찾아서 몸뚱이의 자유권이 아니라 마음의 자유권을 얻을 때 몸뚱이는 스스로 자유권을 얻게 되고 여러분의 안팎이 다 잘될 것입니다. 마음도 바꿔질 수 있고 가정도 그렇고요. 여러분이 질문하실 거 있으면 질문해 주면 좋겠어요. 이런 도리를 배우는 데는 질문하는 것도 아주 좋습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불교라는 단어는 어느 한 군데에 국한돼 있는 게 아니라 포괄적인 진리를 불교라고 했던 것입니다. 생명 근본이 불이요, 바로 우리가 서로 통하고 말하는 것이 교입니다. 그러니까 불교라고 하죠. 불교의 진리는 우리들의 마음에 의해서, 마음에 따라서 주어지는데 보이지 않는 데 정신계의 50%, 물질계의 50%가 서로 상응하고 작용을 해야만이 불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건 무슨 소리냐 하면 여러분의 주인공 그 자체가, 바로 무심과 유심이 서로 작용을 해야 불이 들어옵니다. 전자와 전자가 서로 만남이 있어야 불이 들어오듯이 말입니다. 이건 상대성의 원리입니다. 인연의 법칙이고요.
여러분한테는 긴 말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우선 나의 한마음 주인공만을 믿고, 오로지 거기서만이 나를 이끌어 준다는 믿음, 물러서지 않는 마음! 잘못된 일들을 하게 될 때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되잖아. 주인공, 당신이 잘 이끌어 줘!’ 하고 바꿔서 거기 놓으면 그대로 천연스럽게 돌아갑니다. 정말입니다.
즉 말하자면, 팩시밀리라는 건 신족통이라고 비유하겠습니다.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온다. 또 천이통, 이것은 무전통신기라고 비유해도 됩니다. 천안통, 즉 말하자면 천체망원경이라고 비유해도 되죠. 숙명통, 이것은 바로 컴퓨터라고 비유해도 됩니다. 그리고 타심통, 남의 마음을 아는 거, 그것은 탐지기라고 해도 됩니다. 이 다섯 가지를 다 한마음 주인공에서 관여하는 겁니다. 즉 말하자면 누진통, 이것은 레이더망이라고 비유해도 됩니다. 레이더망에서는 들어오고 나가는 책정을 다 하고 결정을 지어서 연락을 합니다.
그렇듯이 한마음 주인공에다가 모든 것을 맡겨 놓고 하면 맡겨 놓은 자체의 음파가 누진으로 올라갑니다. 누진으로 인해서 사대로 다 통신이 됩니다. 통신이 돼서 모든 작용을 해 줍니다. 그러면 모든 모습, 즉 말하자면 의식들이 전부 화해서 털구멍을 통해서 나갔다 들어왔다 마음대로 하면서 바깥으로도 출중하게 일들을 하고 안에서도 작용을 하고 이럽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진짜로 그 체험을 해 보셔야 됩니다. ‘한마음 주인공만이 나를 이끌어 줄 수 있고, 나를 새 마음으로써 용기 있는 남자, 즉 남자다운 남자로 만들 수 있다.’ 창조력을 길러서 창조해 내고, 우리나라에도 그렇고 우리 가정에도 그렇고, 사회에서도 그렇고 진짜 빛나는 일꾼들이 되게끔 할 수 있는 그런 문제입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사람은 이 세상에 나올 때에 캠핑 온 거나 같습니다. 걸망 하나 짊어지고 나왔다가 한 철 나고 또 걸망 하나 짊어지고 나옵니다. ‘걸망을 또 짊어진다.’ 하는 것은 자기가 어떠한 마음으로 살았느냐에 따라서 짊어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자기가 산 것대로 이 모두가 반영돼서 나온 것이죠. 그렇게 한 철 났다가 가는 그 한 철 동안에 영원한 내 마음의 차원을 길러 놓는다면 길러 놓은 대로 주어질 거고 길러 놓지 못했다면 길러 놓지 못한 대로 주어질 것입니다. 요다음 생에 또 나와서 주어진 차원대로 살 겁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요다음 생이 되고 역구가 되죠.
그러니까 여러분, 어떻게 됐든지 우리가 주인공을 믿고 그렇게 모든 것을 거기다 맡기고 ‘거기서만이 할 수 있다.’ 하면서 맡겨 놓고 관찰하고, 지켜보고 실험하고 체험하는 것이 참선입니다. 참선! 하여튼 인연이 있으면 요다음에 또 만나겠지만 여러분 모두 그 체험을 해 본 뒤에 만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체험을 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나가게 됩니다. 체험을 하게 되면 나가더라도 가정도 다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를 보는 눈도 달라질 것이고 듣는 귀도 달라질 것이고, 모두 사회에 나가서 사회인으로서 한 생각에 모든 창조를, 작은 거든지 큰 거든지 다 이룩할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어느 학생에게 이런 도리를 가르쳐 줬어요. 그랬는데 무슨 까닭에 쫓겼는지 쫓기다가 다급하니까 후미진 데 있는 우물에 들어갔더래요. 옛날에는 돌로다가 쌓았죠. 우물로 들어가서 몸을 감추고서 다 지나간 뒤에 나오려니까 당최 나올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한마음 친구야! 나를 살려야 하지 않느냐!’ 하고 그냥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했더랍니다. 그러니까 지나가던 사람이 목이 말라서 두레박을 얻어 가지고 부지런히 왔더랍니다. 그러니까 그 우물도 후미진 곳에 있었는데 부지런히 와서 물을 뜨려고 보니까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두레박 줄을 잡고 나오게끔 해서 살았답니다. 그러니까 주인공 자기 친구가 ‘야, 내가 나가서 빨리 사람을 데리고 올 테니까 그렇게 알고 꼭 붙들고 있어.’ 이러고선 그 몸뚱인 거기다 두고 자기 마음의 주인, 영원한 친구가 나가서 사람을 불러 오더래요. 그래서 살았대요.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