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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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제10장 證果 ⑪
부처님 출현은 강물에 달 어린 것과 같아

부처님은 태어나고 열반하는 거래 단절
와도 온 것이 없고 가도 가는 모습 없어

則是莊嚴兜率陀天 示現降神母胎 出家 詣道場 降魔怨 成正覺 轉法輪 入涅槃 於十方國土 究竟一切佛事 具足眞應二身 則是初發心菩薩也
‘즉시장엄도솔타천’부터는 보살이 수행하는 가운데 팔상을 장엄한 것과 깨달은 뒤에는 팔상을 나타내 부처의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 밝히고 있다.
범어의 도솔타는 지족(知足)이라고 번역한다. 도솔타는 육욕천 가운데 네 번째 하늘을 말하며, 여기에는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이 있다. 내원은 보처보살이 거처하는 곳이고, 외원은 하늘나라 사람이 머무는 곳이다.
보살이 도를 이루어 부처가 되고자 할 경우 모두가 내원궁에 머물다가 시기가 무르익으면 하강하여 인간세계에 태어난다. 이 도솔천 내원궁은 미륵보살을 위하고 보처(補處)보살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보살이 성불하려 한다면 반드시 수행하는 가운데 도솔천 내원궁을 장엄하게 꾸며야 한다.
‘어머니 태속에 강신하는 모습을 나타내 보였다’ 하는 것은 바로 강생상(降生相)인데, 그 가운데 어머니 태속으로 들어가고 태속에 머물다가 태속에서 나온 이 세 가지 모습을 포괄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대승과 소승의 관점에서 차별이 있다.
대승은 세존이 어머니 태속에 있으면서 매일 쉴 사이 없이 모든 보살과 모든 오묘한 법을 설법했다는 관점으로, 이것은 전단누각에 머물면서 대법륜을 굴리는 것을 말한다. 반면 소승은 보살이 육아백상을 타고 어머니태속으로 들어갔다는 관점이다.
‘출가(出家)’는 석가세존이 열아홉 살 때 한 밤중에 성을 넘어 출가한 모습을 말한다.
‘항마상(降魔相)’은 소승의 편에서는 마군이 실제 있다고 여기고 항복받았다는 학설은 있지만 대승에서는 없다. 왜냐하면 소승에서는 마군이 실제 있다고 집착하나 대승에서는 마군이 없는 것을 명료하게 알아(고 있어) 그 당체가 여여하게 부처와 마군이 평등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성정각(成正覺)’은 세존께서 납월 팔일에 보리수하에서 야반에 명성을 보시고 활연대오하여 등정각을 성취한 것을 말하며 ‘전법륜(轉法輪)’은 도를 성취한 이후 보리수하에서 일어나 녹야원에 나아가 다섯 비구를 위해 사제법문부터 오시팔교(五時八敎)까지 설한 것을 말한다.
‘열반에 들었다’하는 것은 팔상성도가운데 최후의 모습을 말한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될 것은 모든 부처님이 태어나는 모습도 있고 열반하는 모습도 있기 때문에 찾아오심도 있고 떠나가심도 있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와도 온 바가 없고 가도 떠난 바가 없다는 점이다.
중생은 인연이 무르익으면 태어나지 않는데서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 강생, 주태, 출태 내지는 법륜을 굴리다가 중생의 근기가 다하면 열반의 모습을 시현한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 열반하지 않은 가운데서 열반의 모습을 나타냈을 뿐이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부처님이 중생계에 출현하시고 열반을 보이신 모습은 중생을 위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부처님이 오셨다 해도 중생 때문에 오셨고 열반으로 가셨다 해도 중생 때문에 가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천상의 달이 모든 강물에 보편하게 어리듯 와도 온 것이 없고 가도 간 것이 없이 시방 세계 찰진국토 가운데서 일체불사를 최후까지 성취하면서 진신(眞身)과 응신(應身) 등 두 가지 몸을 구족하게 갖춘 것과 같다.
진신은 진실한 지혜가 법신과 하나로 합치하는 것을 말한다. <기신론(起信論)>에서는 “자체에 대지혜 광명이 있어 법계를 보편하게 비춘다”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응신은 만물에 두루 호응하고 중생을 흡족하게 교화하면서 그들 마음의 한량만큼 갖가지 몸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이를 비유하면 천상에 있는 하나의 달이 수많은 물에 동시에 나타나지만 그 달이 실제로 오는 모습도 떠나는 모습도 없는 것과 같다.
<금광명경(金光明經)>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부처님이 사물에 감응해서 형체를 나타내는 것이 마치 물속에 어린 달과 같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대승과 소승에서는 관점의 차별이 있다.
대승에서는 팔만사천상호와 찰진상호를 나타내어 허공에 두루 보편하다고 하였는데, 이는 세존의 특별한 응신이다. 그러나 소승과 인간 천상 등에 감응할 땐 노비구 장육(丈六)의 몸을 나타냈는데, 이것이 소승의 관점인 하열한 응신이다.
진신은 천상의 달과 같고 응신은 물속에 어린 달과 같다. 따라서 진신은 자체와 같고 응신은 작용에 해당된다.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작용은 중생의 인연을 따른다. 이미 자체를 따라서 작용을 일으켰다면 자체는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인연을 따른 것이므로 전체의 진신이 감응을 일으킨 것이 된다.
가령 작용을 거두어 자체로 귀결시킨다면 작용은 항상 인연을 따르면서도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체의 응신이 진신과 하나의 상즉관계여서 진신과 응신이 만족하게 구비하게 되는데, 이것이 원교의 초발심주((初發心住) 보살의 경지이다.

華嚴經中 初發心時便成正覺 了達諸法眞實之性 所有慧身不由他悟 亦云 初發心菩薩 得如來一身作無量身 亦云 初發心菩薩卽是佛
여기에서는 경전에서 인용·증명하고 풀이했다. 초발심주보살이 백계(百界)의 몸을 나타내어 팔상의 모습으로 부처가 된다는 의미다.
<화엄경(華嚴經)>에서는 “처음 발심할 때 바로 정각을 성취한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원교(圓敎)에서는 십주가운데 처음 발심주에 해당되지만 별교(別敎)에서는 십지가운데 초지에 해당된다.
십주이전에 이미 견혹(見惑) 사혹(思惑) 진사혹(塵沙惑)을 끝까지 다 끊고 여기에 이르러 최초로 일품무명을 타파한 만큼 중도를 증득한다면 법성진리와 서로 호응하게 된다. 따라서 부처님 모습을 수행분야만큼 증득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부처가 된 것은 팔상성도로서의 부처님이지 최후에 번뇌를 여읜 오묘하고 극치에 도달한 법신불은 아니다. 그러므로 “처음 발심할 때가 바로 정각을 성취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 수행지에서는 제법의 진실한 실체를 명료하게 통달할 수 있다. 진실한 실체는 무성(無性)의 성품인데, 이것이 바로 여래장 원각묘성인 것이다. 이것이 수행인지에 통하고 깨달음의 과위에 사무치는 것이며 일체 삼매공덕지혜와 법신이 자기의 마음가운데서 천연적으로 있는 것이며 조작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된다.
여래가 최초로 도를 이루셨을 때에 세 번이나 기이하다고 탄식하였는데, 그 이유는 온 대지 중생이 모두가 지혜 덕상을 갖추었건만 망상 집착 때문에 스스로가 증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성은 사람마다 본래 갖추어져 있어 각자마다 없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다.
또 “처음 발심한 보살이 여래의 한 몸에서 한량없는 몸을 얻는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한 몸은 바로 법신이며 한량없는 몸은 응신을 말한다.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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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