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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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성품 본 사람이 곧 선지식
[원문]
若自明了 不學亦得 不同迷人 不能分別白 妄言宣佛勅 謗佛妄法 如斯等類 說法如雨 盡是魔說 卽非佛說 師是魔王 弟子是魔民 迷人任他指揮 不覺墮生死海 但是不見性人 妄稱是佛 此等衆生 是大罪人 他一切衆生 令入魔界 若不見性 說得十二部經敎 盡是魔說 魔家眷屬 不是佛家弟子.
스스로 분명히 깨달았다면 배우거나 얻을 것이 없으므로 미혹한 이와는 다르겠지만 흑백도 가릴 줄 모르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편다고 망언을 한다면 부처님을 비방하는 허망한 짓이다. 그러니 이런 무리는 아무리 많은 설법을 하더라도 모두 마구니의 소리이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니라. 스승이 악마의 왕이고 제자가 악마의 백성들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들이 시키는대로 하느라 생사의 바다에 빠지는 줄을 알지 못하는구나. 자기의 본성도 보지 못한 이가 망녕되이 스스로를 부처라 말하지만, 이런 중생들은 일체 중생을 속여 악마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큰 죄인이니라. 성품을 보지 못하면 12부경의 가르침을 설하여도 모두 악마의 소리이고 악마의 권속이지 부처님의 제자는 아니니라.

[해설]
우리가 불교를 믿는 것은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본래 부처인데 부처를 등지고 오랜 생을 살아 온 것으로 인해서 본래는 부처이지만 부처의 삶을 살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가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본래 부처가 되기 위해서 불교를 믿는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 불교를 믿는다면 잘못된 믿음입니다. <반야심경>에 ‘무지역무득(無智亦無得)’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혜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 했습니다. 왜냐하면 성품은, 다시 말해서 우주는 그대로 하나의 마음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를 깨닫게 되면 물질이 아니니, 그 어떤 문자나 언어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겁니다. 모든 괴로움은 집착이라는 것에서 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면 우주의 실상을 보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생사가 없는 도리를 모르는 분들은 흑백도 가릴줄 모르는 분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편다고 하면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니 허망한 짓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불교를 제대로 알고, ‘용(用)’인지 ‘체(體)’ 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분이 법을 설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일이 되기 때문에 함부로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런 무리는 아무리 많은 설법을 하더라도 모두 마구니의 소리이지 부처님 말씀이 아니니라.’
여기서 ‘마구니 소리’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상무념(無想無念)으로 용을 삼고 무주(無住: 머무는 바 없는)의 행으로써 법을 설한다 하더라도 군더더기이거늘, 어찌 생사를 초월한 도리를 모르는 이가 설한 것을 법이라 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흑백을 모르는 사람이 함부로 경을 설하면 안 된다고 달마 스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겁니다.
콩이 콩나물 공장과 인연이 되면 콩나물이 되고, 두부 공장과 인연이 되면 두부가 되고, 떡 방앗간과 인연이 되면 떡고물이 되고, 부지런한 농부를 만나면 수십 배의 콩으로 탄생되고, 시멘트 바닥에 뿌려지면 말라 없어지듯이 생사를 떠난 자리를 체로 삼고 설하지 못하면 자신도 윤회를 면치 못할 것이며 가르침을 받는 자 또한 생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눈 먼 맹인이 보지 못하는 맹인을 이끄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선지식을 만나 바른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우주를 그대로 하나로 보고 거기에 마음을 두고 화두 또는 염불을 하고 진언을 해야 외도(外道)가 아니고 정도라는 얘깁니다. 성품을 보고 하는 수행이 아니면 모두 마구니입니다.
따라서 성품을 보지 못한 자가 ‘12부경(부처님께서 일생을 통해 법문하신 경)’을 설하게 되면 어두운 중생들을 속여서 악마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큰 죄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부처님의 제자라 하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본래 뜻을 이해하며 생사가 없는 자리를 증득해야만 부처님의 법을 이어 받은 제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고 깨달았다고 한다면 이것은 악마이며 이 또한 악마의 소리일 것입니다. 선지식을 만나 바른 가르침을 받아야 생사를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흑백도 가릴 줄 모르면서 무엇에 의지하여 생사를 면하겠느냐.’
이 말씀은 정확하게 어디에 마음자리를 두고 정진하는 것인지를 몰랐을 때 하는 얘깁니다. 우리는 마음을 어디에 두고 정진을 해야 하겠습니까? 본래의 마음자리를 떠난 생각은 모두 번뇌이고, 생각하기 이전의 자리가 진짜 부처님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그 자리가 부처님임을 믿고 거기에 마음을 두고 화두를 들거나 또는 염불을 하는 것이 바로 성품에 마음을 두고 수행하는 것입니다. 어떤 수행을 하든 생각 이전의 자리에 의지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우리는 본래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 마음을 두고 정진할 때 깨달을 수 있습니다. ■ 청주 혜은사 주지
200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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