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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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체가 부처님 모습이다
물질에 얽매이면 생존의 가치 흔들리게 돼
‘사성제’ 가르침 바로 알고 수행할 때 ‘성불’

[원문]
극락당전만월용(極樂堂前滿月容)
옥호금색조허공(玉毫金色照虛空)
약인일념칭명호(若人一念稱名號)
경각원성무량공(頃刻圓成无量功)
-고운사 대웅전

[번역]
극락당 앞에 만월 같은 모습
옥호와 금색은 허공을 비추는구나.
만일 사람들이 일념으로 부처님 명호를 부른다면
경각에 한량없이 큰 공덕을 이루리라.

[선해(禪解)]
불자들에게서 ‘불교란 무엇인가’하고 질문을 가끔 받는다. 이럴 때는 승가에서 오십 성상(星霜)을 보낸 산승(山僧)도 당황할 때가 있다. 불자들이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속뜻은 자신이 믿고 있는 불교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은 탓일 것이다. 나는 이럴 때마다 불교를 어떻게 하면 한마디로 압축하여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하지만 불교란 ‘마음공부’를 하는 것이고 궁극적인 목표는 성불(成佛)에 있다고 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바로 ‘부처’가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부처’라는 말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또한 부처가 되면 무엇이 좋은 것일까? 이쯤에서 불자들은 깊은 의문에 빠지게 된다. 심지어 평범한 일반인들은 자신이 감히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는 바로 부처를 성인(聖人)의 경지로 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시각을 가지는 것도 분명 맞다. 하지만 어찌 보면 참으로 ‘성불’만큼 쉬운 것도 없으며 불교만큼 쉬운 공부도 없다. 왜냐하면 불교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마음공부’를 하여 안식을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성불이란 깨달음을 얻어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말하는 데 이를 두고 불교에서는 바로 고(苦)로 부터의 해탈이라고 한다. 즉, 삶의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안온한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살면서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더 많다. 그 괴로움은 누가 만드는 것일까? 바로 자기 자신이다. 더 많은 물질적 욕망을 얻기 위해, 혹은 더 많은 명예를 얻기 위해 스스로 괴로움을 만드는 탓이다. 이러한 괴로움에서 탈피하기 위해 ‘마음공부’를 하는 것이 바로 불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사람이 가진 근원적인 괴로움으로 부터 탈피하기 위해 출가를 하여 6년간의 고행 끝에 마침내 성불을 한 것이다. 만약, 불자들도 열심히 수행을 하면 인간이 가진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안식을 찾은 부처님처럼 성불할 수가 있을 것이다.
오늘 등운산 고은사의 주련이야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이신 의상 대사께서 창건하신 사찰로서 연꽃이 반쯤 핀 부용반개형상의 천하명당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이름은 고운사(高雲寺)였는데 신라말 불교와 유교ㆍ도교에 모두 통달하여 신선이 됐다는 최치원이 여지ㆍ여사 양대사와 함께 가운루(경북 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를 건축한 이후 그의 호인 고운(孤雲)을 빌어서 고운사(孤雲寺)로 바뀌게 됐다고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자 풍수지리사상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도선 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켜 세웠으며 그 당시 사찰의 규모가 다섯 동의 법당과 열 개의 요사채가 있어 오법당십방사(五法堂十房舍)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약사전의 부처님(보물 제246호)과 나한전 앞의 삼층석탑(경북 문화재자료 제28호)은 도선 국사께서 조성하신 것들이다. 특히 이곳은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 불리는 지장보살영험성지로서 많은 불자들에게 알려져 있다. 예로부터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다고 하는데, 지장보살님의 원만자비하신 풍모는 물론이거니와 명부십대왕의 상호와 복장도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위엄과 정교함을 자랑한다.
‘극락당전만월용/ 옥호금색조허공: 극락당 앞에 만월 같은 모습 옥호와 금색은 허공을 비추는 구나.’
극락당 위에 떠 있는 만월은 바로 다름 아닌 부처님이다. 45년간 설하신 위대한 법은 옥호와 금색으로 빛나, 항상 온 세상을 비추고 있다. 그럼 부처님이 설하신 그 위대한 법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2500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허공 속에서 저리도 빛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네 가지의 성스러운 가르침인 사성제(四聖諦)이다. ‘괴로움에 대한 가르침,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가르침,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가르침,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길에 대한 가르침인데 압축하면 고집멸도(苦集滅道)이다.
그래서 일찍이 부처님은 이 네 가지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두고 “본래 듣지도 못한 법인데 여래가 마땅히 알 것을 이미 알아, 눈이 나고 빛이 나고 지혜가 났느니라.”라고 했던 것이다. 만약, 여래가 이 네 가지의 거룩한 가르침을 알지 못했다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래는 이 네 가지 거룩한 가르침을 여실히 알아서 위없는 가르침을 설하는 동안, 이를 깨닫는 이가 있다면 여래는 법의 바퀴를 굴릴 것이지만, 깨닫는 이가 없다면 법의 바퀴를 굴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약인일념칭명호 경각원성무량공: 만일 사람들이 일념으로 부처님 명호를 부른다면 경각에 한량없이 큰 공덕을 이루리라.’
만약, 모든 사람이 이러한 사성제의 위대한 부처님의 법을 깨달아 수행과 공부를 거쳐 부처님의 명호를 열심히 부른다면 바로 한량없는 복을 얻게 된다는 말이다. 참으로 가슴을 적시는 내용이다.
이렇듯 하늘에 떠 있는 만월뿐만 아니라 해와 구름, 새, 바람, 꽃, 별, 그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감추어진 얼굴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 모든 자연의 이치 속에 부처님의 위대한 설법인 사성제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이럴수록 사람은 물질에 갇혀 살아서는 안 된다. 사람이 물질에 갇히게 되면 도덕과 윤리 존재가치마저 흔들리게 된다. 이를 위해 ‘마음공부’를 하는 것이 바로 불교이다. 이 마음공부에는 오늘날 이슈가 되는 노 前대통령께도 예외는 있을 수 없다. 그가 일찍 마음공부를 하였더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든 열심히 수행을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몫은 당연히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 ■ 조계종 원로의원
200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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