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법장 받아지녀야 큰 지혜 얻어
하나의 달이 강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처럼
삼매 안주하면 일체 세계가 일념에 나타나
安住首楞嚴定 則是普現色身三昧 普入十方佛土 敎化衆生 嚴淨一切佛刹 供養十方諸佛 受持一切諸佛法藏 具足一切諸行波羅密 悟入大菩薩位 則與普賢 文殊爲其等侶
수능엄정에 안주하는 것이 보현색신삼매이다. 시방세계 모든 불국토에 보편하게 들어가 중생을 교화하고 일체불국토를 장엄 청정하게 하며 시방제불에게 공양을 올려 일체제불의 법장을 받아 지니고 일체바라밀을 빠짐없이 만족하게 실천하여 대보살의 지위에 깨달아 들어간다면 보현 문수와 하나로 평등하게 짝을 이루게 된다.
앞에서 지관으로 염불수행을 하는 것이 바로 여래행을 행하는 것이고 여래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 염불삼매를 성취하는데 이르러서는 최초일념 무명을 타파하여 그 이치를 증득했다. 그런 뒤에 수능엄정에 안주하게 된다.
범어로 수능엄은 건상분별(健相分別)이라고 번역한다. 이는 보살이 능엄삼매에 안주하면 일체삼매의 활동하는 모습의 많고 적고 깊고 얇은 이 모든 차별을 다 분별하고 명료하게 안다는 뜻이다.
또 수능엄정을 견고불괴(堅固不壞)라고 한다. 이 선정에 안주하면 일체 삿된 마군의 뇌란이 삼매를 파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크게 자유자재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보현색신삼매(普賢色身三昧)로부터 이어지는 문장은 근본정(根本定)을 따라서 위대한 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보현은 마치 천상에 하나의 달이 모든 강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를 두고 “모든 강에 물이 있으면 모든 강에 달 그림자가 있고, 만 리에 구름이 없으면 만 리가 한 색의 하늘이다”라고 하였다.
보살이 이 삼매에 안주하면 일체 세계가 한 마음속에서 크고 작은 것을 구별하지 않고 나타나게 된다. 신통묘용이 종횡무진으로 자유자재하여 전후의 시간차가 없이 동시에 모든 법계에 감응하여 색상이 완연하기 때문에 보현이라고 말한다.
이는 마치 관음보살의 삼십이응신이 중생의 몸을 따라서 나타나 설법을 하는 경우와도 같다. 다시 말해서 동서남북 사유상하 시방세계의 일체제불 국토가운데 보편하게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고 일체 불국토를 장엄하고 청정하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청정한 국토를 장엄하게 하는 것이다.
일체 모든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리고 큰 복덕을 얻어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법장을 받아 지녀 커다란 지혜를 얻는다. 이것이 복과 지혜의 두 가지 장엄으로 열반피안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 모든 바라밀을 실천한다고 하였다. 그런 뒤에 대보살의 지위에 깨달아 들어가게 된다.
대보살의 지위란 개시오입(開示悟入)하는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십지(十地)인 사십위를 말한다. 이 경지에 도달하면 보현 문수 등 모든 보살과 함께 평등하게 짝을 이루게 된다. 보현 문수 두 대보살은 항상 석가모니부처님을 보좌하면서 사바세계에서 교화하므로 이 세계 중생과 가장 인연이 많다.
문수와 보현은 보살의 경지로서 몸을 나타냈지만 그 근본은 석가여래와 두 모습이 없고 차별도 없다.
보현은 인도말로 ‘필수발타’ 또는 ‘삼만다발타라’라고 한다. 번뇌를 조복받은 도의 정상에 거처하면서 자체성질이 두루 보편한 것을 ‘보(普)’라고 말하고 모든 번뇌를 끊은 뒤에 극치의 성인이 바로 이웃에 있기 때문에 ‘현(賢)’이라고 말한다.
인도말로는 문수사리를 묘덕(妙德)이라고 번역하며 묘길상(妙吉祥)이라고도 한다. 명료하게 불성을 깨달아 오묘한 덕과 평등하여 법신 반야 해탈을 빠짐없이 갖추어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묘덕이라고 부른다.
문수 보현 두 대보살은 경전가운데서 모든 보살의 으뜸으로 나오는데, 이는 법을 표시한 것이다.
첫 번째 보현보살은 여래장을 믿는 것을 표시한 것이고 문수보살은 믿는 마음을 표시한 것이다. 두 번째 보현보살은 육도만행을 일으키는 것을 표시한 것이고 문수보살은 육도만행을 일으키는 지혜를 표시한 것이다. 세 번째 보현보살은 번뇌를 벗어나 법계를 증득함을 표시한 것이고 문수보살은 대지혜를 증득함을 표시하여 상호간에 서로 서로가 하나로 융합되고 포섭된다.
보현보살의 믿는 마음만 있고 문수보살의 지혜가 없다면 믿는 마음은 무명번뇌이며, 문수보살의 지혜만 있고 보현보살의 실천이 없다면 지혜는 사견이 된다. 따라서 신심과 지혜가 진실하고 올바라야만 망상을 타파하고 진실한 마음을 성취할 수 있다.
가령 문수와 보현이 두 모습이 아닌 진실한 지혜가 진실한 거울과 한결같다는 이치를 명료하게 통달하게 된다면 그 자리에서 비로자나불이 출현하게 될 것이다.
수행과 깨달음이라는 인과관계가 둘이면서도 둘이 아니라면 문수의 근본지혜와 보현의 행원이 하나의 지위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수행자가 염불지관을 닦아 염불삼매를 성취한다면 문수 보현 관음 미륵 등 제대보살과 짝이 되어 손을 잡고 함께 행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수행인의 지위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常住法性身中 則爲諸佛稱歎授記
앞에서 이미 모든 보살과 하나로 짝이 되었다면 근본무명을 타파하고 중도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근본무명을 타파하고 나면 중도와 서로 호응하여 이로부터 항상 법성신 가운데 안주하게 된다.
법성신이란 진여법성으로 청정한 자체이다. 범부중생들은 사대가 임시로 합한 오음을 자기의 몸으로 여기고, 소승은 의생신(意生身)을 자기의 몸으로 여기며, 보살은 무명을 타파한 만큼 중도를 증득하여 법성을 자기의 몸으로 여긴다.
이는 일체법을 자기의 본성으로 여기기 때문에 법신이라고도 한다. 법성신은 시방세계에 보편하고 충만하여 무량무변하다.
색상은 단정하고 상호로 장엄하여 한량없는 광명과 음성으로 시방세계를 보편하게 제도하는데, 이것을 보살의 법성신이라고 한다.
법성신 자체를 따라서 현실적인 작용을 일으키고 거기에 방편의 힘까지 더하여 부처님이 팔상성도를 닦아 태어나지 않는 데서 태어남을 나타냈고 열반하지 않은데서 열반의 모습을 나타내어 범부와 동일하게 생사의 모습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지금 수행인이 항상 진여법성신 가운데 안주한다면 시방세계 일체제불이 찬탄하고 수기를 내린다. 수(授)는 부처님이 말씀해 주는 것을 말하고 기(記)는 깨달음의 과보가 내 마음과 함께 기약함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여래께서 모든 보살 성문 제자에게 부처가 되리라고 수기를 하는 것이다.
그 예를 들면 법화경에서 “아일다야 그대는 미래 세상에 부처가 되리니 호를 미륵이라고 하리라”라고 한 것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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