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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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서 아름다운 축제가 되도록
이 병 두
칼럼니스트

올해 서울에서 열린 연등축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동대문 운동장 철거로 연등 행렬 출발 장소가 동국대 운동장과 장충체육관으로 나뉘어졌을 뿐만 아니라 봄날답지 않게 쌀쌀하고 비가 내릴 기미까지 보인 날씨 탓에 동참 인원이 예년보다 적었다.
특히 장충체육관의 경우에는 극소수에게 입장이 제한될 수밖에 없어서 연등축제 행사장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고, 동국대 운동장의 경우에는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해칠 우려까지 제기되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연등 축제 행렬 출발에 앞서 현재와 같은 대형 행사를 계속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앞으로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제등행렬은 해가 갈수록 다양한 주제를 담은 장엄등이 등장하여 행렬 동참자뿐만 아니라 관중들의 호응도 높아지고 있다. 다른 불교 국가에서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는 제등행렬이 있지만, 우리처럼 규모가 크거나 화려하고 다양한 장엄등이 등장하지는 않기 때문에 불교도들만의 축제이지 국민 축제 성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도 과거 전통시대에는 ‘정월보름’ ? ‘단오’ ? ‘7월 백중’ 등등 매월 국민 전체가 즐겁게 참여하는 축제가 있었지만, 근대화 이후 이 모든 것을 잊거나 잃어버리고 이제 유일하게 남은 ‘부처님 오신 날’ 연등축제는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제가 되었다.
특히 제등행렬과는 별도로 조계사 앞에서 펼쳐지는 ‘불교문화마당’은 몇 해 전부터 외국인들의 관람과 참여가 눈에 뜨이게 늘어나고 있어서 불교문화를 알리고 나라의 관광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어서 ‘부처님께서 대한민국에 전해주신 큰 선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이처럼 긍정적인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몇 해 전부터 몇몇 종단과 대형사찰들에서 대규모로 참여하고 화려한 대형 장엄등을 준비하면서 축제를 빛나게 한 긍정적인 효과는 있지만 작은 절의 신도들은 위축을 느끼게 되고 결국 축제에 불참하는 소형 사찰들이 늘어났고 불교계에서도 ‘큰 곳’을 선호하는 풍조를 낳았다.
세상 모든 곳에서 “큰 것이 아름답고 좋은 것이야!”라며 대형화하고 있지만, 불교 집안에서만은 이런 세상의 흐름과 달리 불교경제학자 슈마허의 말처럼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중요한 원칙을 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해마다 “올해 우리나라 국민과 세계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부처님께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한 뒤 이를 상징하는 대형 장엄등 몇 개 정도만 만들면 안 될까.
신도를 대규모로 동참시키고 큰 상징물을 만들어오는 대형 사찰이 주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타 종교의 공격적 선교와 정부의 종교 편향 등으로 위축된 불교도들의 가슴을 활짝 펴게 해주고 “우리도 이런 정도의 힘이 있다”며 보여줄 필요는 인정되지만, 과연 현재처럼 대형화 추세를 계속해나간다면 “큰 것이 아름답고 좋은 것”이라는 세상의 흐름이 문명의 붕괴와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기로 몰고 간 주범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놓치게 된다.
지난해부터 온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경제 위기를 맞아 ‘소욕지족’의 가르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는 시점이다. 명년부터 열리는 연등축제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기본 원칙에 맞추어 기획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제까지의 틀을 바꾸어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내는 일이 매우 어려울 것임은 잘 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래서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사실 또한 분명하니 결코 허투루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2009-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