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천 구
영산대 석좌교수·前 총장
노무현 前 대통령이 퇴임 일주년이 지나기가 무섭게 전형적인 ‘대통령의 말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가 퇴임 후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부하직원, 부인, 아들, 친구, 조카사위 등을 동원해서 거액의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뉴스를 덮고 있다. 노무현 씨는 2003년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깨끗한 정부를 외치며 이권이나 청탁 그리고 뇌물을 받게 되면 누구를 막론하고 패가망신을 당하게 하겠노라고 큰소리를 쳤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이 자기의 말로를 예언한 것임을 알겠다.
노무현 씨라고 결과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런 일을 했겠는가? 국민들도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사람인 줄 알았으면 대통령으로 뽑아주었겠는가? “정치는 가능성의 기술”이라는 비스마르크의 명언과 같이 정치는 좋은 의도보다도 좋은 결과에 의해 평가받는다. 그런데 노무현 씨 자신도 그렇고 그를 뽑아준 국민들도 겉모습만 보고 결과를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음’으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업을 짓는 것은 몸과 말과 생각(身口意 三業)에 의해서인데 그 중에서 중심이 생각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드는 것(一切唯心造)이라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생각이 세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란 내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 즉 타자(他者)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을 아니하면 다른 사람의 생각대로 세상이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나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현대와 같이 상호의존적인 시대에는 생각을 안 하는 것이 더 큰 업을 짓게 된다.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600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한 주범 중의 하나인 ‘아이히만’이 예루살렘의 법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법을 잘 지키고 도덕적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평범한 시민이었다고 한다. 그는 결국 인간성과 인간의 다원성을 파괴한 범죄가 인정되어 사형을 받았지만 재판과정을 면밀하게 관찰한 위대한 정치철학자 ‘하나 아렌트’는 그의 문제점을 ‘생각 없음(thoughtless)’에서 찾았다. 그는 자기 손으로 어떤 인명도 살상하지 않았으며 법집행의 최상위에 있던 지도자(Hitler)의 명령에 따라 유태인을 모으고 열차나 배에 태워 살인 가스실이 있는 아우스피츠 수용소에 보냈을 뿐이다. 문제는 그가 자기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노무현 씨는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국가와 민족의 진로와 국민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하여 직무에 걸 맞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이 지켜야 할 최고의 덕은 결과를 생각하는 신중함과 책임의식이다. 그가 받았다는 돈의 액수는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다른 대규모 금전 사고에 비하면 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부터 따져보아야 할 것은 그의 ‘생각 없음’이 가져온 정치적 결과와 그에 대한 우리 모두의 반성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의 독선과 ‘생각 없는 행동’을 교정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삼권 분립의 의회민주주의제도 아래서 의회와 법원이 충분히 그의 일탈된 행동을 견제할 수 있었으나 그런 모든 기제들이 작동하지 않았다. 국회에서 탄핵을 해도 데모 군중과 법원은 오히려 그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민주정치가 얼마나 손쉽게 전체주의 독재로 변모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것이다.
국민이 좀 더 생각했었더라면 그런 대통령을 뽑지 않았을 것이고 노무현 前 대통령이 좀더 신중하게 생각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대통령의 말로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