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영 섭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시인
봄이 왔는데도 봄 같지가 않다. 하늘은 황사로 뿌옇고 날씨는 영도를 오르내린다. 정치계와 경제계의 기상도 흐리다. 이런 때에는 야구장의 호쾌한 타격소리가 그립다. 지난 화요일 오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결승전은 우리의 눈과 귀를 씻어주었다. 승부는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명언은 빈 말이 아니었다. 역사의 명승부들 역시 9회 말 투 아웃에 일어났다. 전광판의 게임스코어 판이 3:1을 가리켰다. 관중들은 숨을 죽였다.
투수의 볼이 포수 앞에 다가왔다. 순간! 타자는 방망이를 휘둘렀다. 호쾌한 타격소리가 그라운드를 적셨다. 흰 공은 물 샐 틈 없는 수비선수 사이를 뚫고 나아갔다. 2타점 안타였다. 경기장은 온통 열광했다. 전광판은 3:3이 되었다. 야구의 묘미가 온몸에 전해졌다. 미국 LA의 다저 스타디움에서였다. 그 주역은 김인식(62) 감독이 이끄는 한국야구팀이었다. 한국팀은 ‘사인 불통’으로 연장전 끝에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우리들의 행복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경기는 끝났지만 김 감독의 ‘위대한 도전’이 회자되고 있다. 그는 2004년 뇌경색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했다. 김경문(두산), 김성근(SK) 감독 등의 젊은 감독들이 ‘독배’(毒杯)라며 대표팀 감독을 고사한 직후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WBC 감독자리를 그에게 떠맡기려 했다. 주변 지기들은 건강을 이유로 말렸다. 하지만 그는 ‘국가가 있어야 야구가 있다’며 감독직을 맡았다.
처음에는 대표팀 구성도 어려웠다. 하지만 김 감독은 실망하지 않았다. 그는 ‘선수기용’과 ‘작전구사’로 대표팀의 빈틈을 보완했다. 그리고 ‘상대분석’을 통해 상태팀의 빈틈을 겨냥했다.
우선 김 감독은 ‘스몰 볼’과 ‘롱 볼’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그는 기존의 틀에 매이지 않았다. 선수와 상황에 맞는 ‘토털 베이스볼’과 ‘휴먼 볼’로 맞섰다. 버릴 때는 과감히 버렸고 쥘 때는 악착같이 쥐었다. 또 ‘여유의 미학’과 ‘감각적인 선수교체’로 감성야구를 이끌었다. 동시에 어떤 상황에서도 선수를 믿어주는 ‘신뢰야구’를 펼쳤다. 이로 인해 코치 7명과 선수 28명의 마음을 얻었다. 그 위에서 그는 선수들의 ‘강한 투혼’을 끌어내었다
선수들은 절뚝거리는 감독을 충심으로 따르고 그라운드에서 온몸을 던졌다. 비록 사인이 맞지 않아 일본에 졌지만 그의 리더십과 용인술은 ‘달인’의 것이었다. 애초에 그의 인생은 화려하지 않았다. 선수시절이나 감독시절에도 굴곡이 많았다. ‘엘리트 인생’으로 살았던 일본의 하라(51) 감독과는 달랐다. 한때 ‘잡초인생’으로 살았지만 김 감독은 강인했다.
우리의 삶 곳곳에도 이런 역전 드라마가 내재해 있다. 별 볼일 없던 인생도 ‘시절 인연을 만나면’ 꽃을 피울 수 있다. <잡아함경>에서 부처님은 ‘인연 없는 중생은 구제할 수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대승 경전에서 부처님은 ‘일체 중생이 모두 성불한다’고 했다. 이러한 충돌을 해소할 수 있는 지혜의 활로 역시 ‘인연’에 있다. 아직 ‘시절인연이 도래하지 않은 중생은 구제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 ‘시절 인연이 도래하면 성불할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고 생각도 그렇다. 때문에 역경 속에서도 ‘시절 인연의 도래’를 기다리는 인생 태도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불교공부의 핵심은 자기를 이기는 ‘극기’와 자기를 낮추는 ‘하심’에 있다. 김인식 감독은 ‘믿음의 리더십’으로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국민감독이 된 그는 ‘위기관리형 리더’로서 손색이 없는 명장이었다. 정치와 경제의 기상이 흐린 이 때 우리는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존경받는 영웅을 기다리고 있다. 명장은 곳곳에 있다. 다만 우리가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