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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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영원한 것은 없음을 알라
[원문]
산당정야좌무언(山堂靜夜坐無言)
적적요요본자연(寂寂寥寥本自然)
하사서풍동림야(何事西風動林野)
일성한안려장천(一聲寒雁長天)
허공가량풍가계(虛空可量風可繫)
무능설진불공덕(無能說盡佛功德)
-동학사 길상암

[번역]
고요한 밤 산당에 묵묵히 앉았으니
적요로움 가득 본연의 세계인데
무슨 일로 서풍이 불어 숲을 흔들며
장천에 기러기 끼득끼득 이 무슨 소식인가
허공도 가히 잴 수 있고 바람도 잡아 맬 수 있으나
한량없는 부처님 공덕은 다 말할 수 없네.

[선해(禪解)]
봄날 산창(山窓)을 열면, 코끝을 적셔주는 깊디깊은 꽃향기에 그만 눈을 질끈 감는다. 봄소식이 나의 잠든 감관의 문을 깨운 것이다.
산사에는 소리가 많다. 풍경소리, 범종소리, 목어소리, 법고소리, 목탁 소리, 경(經)읽는 소리, 염불소리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물 흐르는 소리, 새 소리, 짐승 우는 소리도 있다. 이 소리들은 저들끼리 살을 맞대어 산사 특유의 적요(寂寥)소리를 이끌어 낸다. 마침내 소리가 소리끼리 뭉쳐 적막한 고요를 풀어놓는 것이다. 여기에 고요소리 하나를 더한다면 바람에 꽃 피는 소리와 꽃 지는 소리이다.
쏴아, 쏴아-
나뭇가지를 흔들고, 구름을 흔들고, 장천을 흔들고 불어오는 바람소리는 모든 소리의 근원이다. 그 바람이 모든 산사의 풍경들을 흔들어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내고 풍경을 빚어낸다. 그래서 산사는 더욱 고요하고 적막하다.
이쯤이면 나는 어느 새 깊은 묵상(默想)에 빠져 든다. 자연이 그러하듯 인간의 삶 또한 그와 같이 절묘하다. 이 지상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가 오듯 인간의 삶에도 사계(四季)는 어김없이 돌아온다. 그것이 인생이며 삶임을 느꼈을 때 나는 칠십 인생을 훨쩍 뛰어 넘었다. 그런데 성불의 길은 아직도 아련하게 멀다.
일찍이 통도사 극락암 삼소굴에 주석하셨던 경봉 큰 스님은 인생을 두고 ‘허공에 한 점 점을 찍는 것’이라고 했다. 허공에 찍은 점은 흔적이 없다. 우리 인생도 그러하다. 인간은 이 무상(無常)의 세월을 흘러 보내면서도 끊임없는 집착을 놓지 못하고 있다. 마치 그것이 전부인양 말이다.
오늘의 주련 여행은 동학사 길상암이다. 동학사는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곳으로 한국불교의 비구니 사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최초 창건은 신라시대 때 상원 조사가 암자를 짓고 수도하다가 입적한 후, 신라 33대 성덕왕 724년, 상원 조사 제자 회의 화상이 쌍탑을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문수보살이 강림한 도량이라 하여 절 이름을 청량사라 하였는데 태조 19년 병신 (936년)에 신라가 망하자 신라의 유신이었던 유차달이 이 절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신라의 충신 박제상의 초혼제를 지내기 위해 동계사(東鷄祠)를 짓고 절을 확장한 뒤, 절 이름을 지금의 동학사로 지었다고 한다. 절의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동학사라고 했으며, 고려의 충신이자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조종인 정몽주를 이 절에 제향했으므로 동학사라는 설도 있다.
1814년, 금봉 월인 스님이 길상암을 짓고 절을 중건하여 절 이름을 개칭하되 ‘진인출어동방(眞人出於東方)’이라 하여‘동(東)’자를 따고 ‘사판국청학귀소형(寺版局靑鶴歸巢形)’이라 하여 ‘학(鶴)’자를 따서 동학사라 명명했다는 설도 있다. 그 뒤 만화 스님의 제자인 경허 스님이 동학사에서 강의를 열다가 큰 깨달음을 얻어 한국의 선풍을 드날렸지만 한국전쟁으로 절의 건물이 전부 불타 없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많은 스님들의 노력으로 오늘날의 동학사로 중건되었다.
산내암자로는 현재는 관음암·길상암·문수암·미타암·귀명암·상원암 등이 있는데 옛날에는 동전(東殿)으로 이름하였으나 현재는 길상암으로 불리는 산내암자이다. 1975년 법전 스님이 현재 법당을 신축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고요한 밤 산당에 묵묵히 앉았으니/ 적요로움 가득 본연의 세계인데’
계룡산 길상암의 주련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 아름답고 매끈한 선시(禪詩)같다. 이 속에는 깊은 불연(佛緣)의 세계가 가득 깃들어 있다. 참으로 절묘하다.
스님들의 하루는 그저 산당에 앉아 경을 읽으나 염불 소리를 꿰는 게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불가에 입문한 스님들의 본연(本然)의 자세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시비도 있을 수 없다.

‘무슨 일로 서풍은 불어 숲을 흔들고 장천에 기러기 끼득 끼득 이 무슨 소식인가?’
그런데 적막한 산당에 때 아닌 서풍이 숲을 흔들어 놀란 기러기가 끼득 끼득 울고 간다. 이 속에는 부처님의 위대한 설법인 연기(緣起)법이 숨겨져 있다. 바람이 불어 숲을 흔들어 그 속에 숨어 있던 기러기가 놀라 하늘로 날아오르는 이치. 바로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함으로 저것이 생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아니겠는가.

‘허공도 가히 잴 수 있고 바람도 잡아 맬 수 있으나/ 한량없는 부처님 공덕은 다 말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설법은 자연의 이치 속에서도 한량없이 빛나고 그 공덕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이 깊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부처님의 한량없는 소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원래, 모든 존재는 시간적으로는 무상하지만 상주불변하는 존재 또한 없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인생으로 비유하자면 인간의 육신은 늙고 병들어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처님의 위대한 전언은 오늘날까지도 영원하여 모든 중생들에게 삶의 이치와 가치를 깨닫게 해주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이 세상은 참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다. 착하게 살고자 하나 때로는 악해져야 하는 일도 수없이 많다. 이럴수록 부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 ‘진흙 속에서도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사는 자세가 필요하다. 길상암 주련이 우리에게 던져 주는 교훈은 바로 여기에 있다. ■ 조계종 원로의원
200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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