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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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것 다 불문에 부치고 모든 것 주인공에 놓아라
이 모두가 한 찰나 생각하기에 달려 있는 겁니다

마음속에서 향기가 나오고 조건 없는 사랑을 할 때에
비로소 조건 없이 모든 게 들어옵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몰라서 그렇지마는 이것을 다 공부해서 지혜롭게 되면 그때는 하나하나 체험을 하면서 돌아갑니다. 권투를 잘하는 선수가 조그만 애들 막 주먹질하는 걸 보고 피식 웃고 섰듯이 말입니다. ‘아이구! 그거 뭘 저런 걸 가지고…. 에이! 그냥 말할 것도 없구나!’ 하고선 그때는 말수가 적어지죠. 공부를 하다 보면 말수가 적어지고 또 욕심이 적어지고 집착이 적어지고, 높고 낮고 이런 것에 집착이 적어지고 반항이 적어지고 남을 원망하는 게 적어지고 매사가 다 그렇게 달라집니다. 사람이 스스로 그냥 자꾸 개선이 되죠. 이렇게 해서 금이 되는 겁니다. 자기를 자기가 금으로 만드는 겁니다.
이런 것인데 누구를, 형상을 믿습니까, 이름을 믿습니까, 허공을 믿습니까? 또는 이 스님들의 고깃덩어리를 믿습니까? 아니죠? 그건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저 세 가지가 다, 행과 말과 뜻이 똑같은 사람이라면, 진리에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따르라 이겁니다. 따르라! 믿는 것은 바로 자기 한마음 주인공만 믿어라 이거죠.
악업 선업, 업식이 자기한테 잔뜩 들어 있고, 과거는 지나갔으니까, 벌써 현실에 자기가 끼고 있으니까 없는 거죠. 현실에 끼고 있으면서 미래로 자꾸 연결되게 만들지 말고 그냥 단번에 이 자리에서 해결해 버려라 이겁니다. 업식으로 나오는 모든 거를 그저 거기다가 가차없이 ‘네놈이 하는 거니까, 네놈한테서 해결을 할 수밖엔 없지 않느냐!’ 하고 맡겨 놔요.

질문자1(여): 스님, 말씀 감사합니다. 마음공부를 할 수 있도록 이 도량을 마련한 모든 분들께 감사하면서 제가 생각했던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국민 개개인이 돈을 조금씩 모아서 한 사람을 큰 부자로 만들어 주고 두 사람, 세 사람 만들어 주고 그랬으면….’ 이렇게 생각했는데 오늘 스님의 법문을 접하고 보니 ‘아! 이것이로구나.’ 하고 느낀 바가 큽니다. 스님, 우리 국민 개개인을 마음 부자로 만들어 주시려고 이 도량을 마련해 주신 이 감사함을 뭐라고 말씀드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면서 서원을 세우기를 ‘나로 인해서 딴 사람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끔 하고, 단 하나의 악한 일도 하지 않겠다.’ 하고 발원하면서 걸어왔는데 부족하다 보니 어떻게 딴 사람에게 거슬리는 짓을 할 때가 많은가 봐요. 참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스님께 질문합니다.
큰스님: 한 가정에서 식구가 모여 살면서 생기는 제일 어려운 문제를 한번 얘기해 보죠. 자손들이 공부를 안 하거나 말썽을 일으키는 수가 있고, 부부지간에도 어려운 문제가 많죠? 그냥 증오하면서도 말은 못하고, 말을 하려니 싸움이 일어나고 이러니까 그냥 참다 참다 가슴이 멍이 들게 되는 수도 많고요. 그런데 자식들이 속을 썩인다고 해서 그것을 거죽으로 “요놈의 새끼야, 왜 공부를 안 하느냐?” 남편이 그런다 해서 “당신은 왜 이렇게 내 복장을 썩이느냐?” 하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다면 항상 대립이 되기 때문에 쌍방이 업을 더 많이 짓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느냐. 아들이라는 것, 남편이라는 것이 전부 가설이 돼 있습니다. 이게 인연줄의 가설입니다. 생명이 둘이 아니듯이 내 주인공과 저 주인공이 둘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내 주인공에다 모든 것을 맡기면서 ‘자식이나 남편이나 모두가 주인공 자체는 둘이 아니니까, 그저 주인공 당신만이 그렇게 안 하게끔 할 수 있고, 당신만이 공부 잘하게 이끌어 줄 수 있지 않은가!’라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여기서 불을 켜는 것과 같아서 저쪽에도 불이 전부 들어오는 거예요.
그렇게 하고 거죽으로는 부드럽게 말하고 부드러운 행동을 하면서 그저 잘 이끌어 가면 따뜻한 데로 고이게 돼 있거든요. 애도 어른도 다 그렇습니다. 배고프면 배부르게 먹을 데로 고여들고, 또 추울 때는 따뜻한 데로, 부드러운 데로 고여들게 돼 있거든요. ‘그래도 내 가정이라는 이 울타리가 참, 아주 제일 좋구나.’ 하고선 가정으로 얼른 들어오게 돼 있어요. 이게 그냥 말하는 게 아닙니다. 뒷면의 인연의 줄이, 법망의 줄이 이어져서 불을 켜 주니까, 그 마음과 마음이 연결돼서 불이 들어오니까 전부 마음이 바뀌는 거죠.
이런 분이 있었죠. 직장 일이 끝나도 집에 들어가고 싶질 않고 괜히 마음이 헛헛하고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서 술집 가서 술 한 잔 흥건하게 먹고 집에 들어가는데도 다 귀찮고 다 메다 패대기치고 싶고 그렇대요. 이것을 억지로는 못하죠. 어떡합니까? 그래서 나는 그분의 부인에게 그랬어요. “당신 남편이 미운 게 아니라 당신 남편의 업이 미워. 그런데 당신의 업도 그 남편의 업도 둘이 똑같지? 어느 하나도 기울고 트는 게 없어. 보는 놈이나 하는 놈이나 똑같다 이거야.” 하하하…. 그러니까 깡통은 깡통끼리 모였다 이 소리죠. “그러니까 그 업을 모두 없애려면 남편 탓 하지 말고 내 탓으로 돌리고, 자식이 그렇더라도 내 탓으로 돌리고 모든 것을 거기다 놓고 녹여라. 그러면 거기까지도 녹여진다.” 그랬어요.
그런데 하루는 남편이 들어오더니 “내가 왜 이랬는지 몰라. 내가 괜히 술 먹어서 돈 없애고 세간 부수고…. 내가 미쳤나봐. 여보, 나 참 미쳤나봐.” 그러고는 수박 한 덩이를 건네주면서 “이거 술 먹을 걸로 수박 사 왔지.” 하하하! “아니, 소쿠리 하나만 부서져도 내 손해인데, 내가 또 사다 놓아야 될 텐데, 손해 나는 일을 괜히 했어.” 그러고는 아주 우스워서 죽겠다고 그러더라는 거죠. 그날부터 가정이 화목해지고 좋아져서 잘 살게 됐더랍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뭐라고 그러셨는 줄 아십니까? ‘상구보리 하화중생 하라. 위로는 네 자성불을 섬기고 아래로는 네 몸속에 있는 중생들을 제도해라. 그러면 몸속에 있는 중생들이 제도가 돼서 천백억화신으로 화해서 나투느니라. 털구멍을 통하고 눈구멍을 통해 나투면서 모든 사람에게 약사도 되고 칠성도 되고 산신도 되고 지장도 되고 용신, 지신까지도 돼 주느니라. 누가 응해 달라고 하든지 응신이 돼서 전부 천백억으로 나투느니라.’ 이러셨단 말입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여러분도 그렇게 돼 있다는 겁니다. 머리 깎은 스님들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도 그렇게 공부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유마힐 거사 아시죠? 왜 그렇게 된 줄 아십니까? 여러분을 가르치기 위해서 유마힐 거사도 그렇게 나오신 것입니다. 그게 다 부처님들입니다. 머리 깎고 입산한 사람이나 입산을 안 한 사람이나 마음 닦는 것은 같다는 그 뜻을 여러분 앞에 보여주고 또 여러분도 공부해라 하는 뜻에서 나신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내 마음을 내가 다스려서 내 몸속에 들어 있는 중생들을 제도해야죠. 모두가 그렇게 해서 시급히 업식들을 녹이고 다스리면서 실천을 해 나가는 이러한 공부가 됐으면 합니다. 또 누구 없습니까?
그러니 아웅다웅하고 싸우고 “요놈 자식, 왜 공부는 안 하고 요렇게 나가서 돌아다니기만 하면서 집에 안 들어오느냐?” 하고 그냥 밖으로만 야단하면 점점 더 나빠집니다. 그러지 말고 안에다 놓고 “얘! 너 밥이나 먹고 다니니? 잠은 어떻게 자니? 집에 들어와서 자야 편안하지 않겠니?” 이렇게 아주 부드럽고 인의롭게 말해 주세요. 봄에 꽃 피듯이 말입니다. 겨울에는 보잘것없었던 고목이 봄이 되어 잎이 나오고 꽃이 피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마음속에서 향기가 나오고 조건 없는 사랑을 할 때에 비로소 조건 없이 모든 게 들어옵니다.

질문자2(여): 저는 안양까지도 몇 번 올라갔습니다마는 질문하실 분들이 너무 많아서 못했는데 이렇게 마산에 오신 길에 질문을 드립니다. 저는 공부를 딴 분보다 많이 못했습니다. 마음자리에다 맡기는 공부를 저 혼자서 하긴 했는데 너무나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어서 감당 못할 정도로 너무 힘듭니다.
큰스님: 사람은 한 찰나 생각하기에 달린 겁니다. ‘그놈은 누구고 그놈은 누구냐?’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는 놈은 누구고 자다가 일어나는 놈은 누구냐?’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꿈을 꾼 놈은 누구고 생시에 이렇게 다니는 놈은 누구냐?’ 이 모두를 자기가 하는 겁니다. 그 생각이 옹졸했을 뿐이지 생각이 넓다면 이 우주를 그냥 단번에 삼키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내가 삼천대천세계를 단박에 삼키고도 남음이 있다.’ 이러면 이게 뭔 소린가,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할 겁니다. 그러나 그게 참 멋진….
그래서 우리가 그 도리를 알아야 하는 거죠. ‘그냥 삼킬 수 있다’ 이런 말이 참, 위로는 평등공법이 되고 아래로는 칠활궁공법이 되고, 셋째번에는 팔수레공법이 되고, 이렇게 해서 모든 것이 들고 나면서 다양하게 자재할 때 비로소 ‘자재할 것도 없다. 자재한 것도 없다. 나는 그런 걸 하려고 생각한 예도 없다. 나는 말한 것도 없고 생각한 것도 없고 한 것도 없고….’ 그게 나오죠. 그러니 모두가 나 아님이 없는데 어떤 거를 할 때 내가 했다고 할 수 있겠느냐 해서 그런 거죠.
그러니까 보살님! 감당할 수 없는 그 보살님의 마음이나 감당하기 어렵게 용도에 따라서 닥치는 그거나 둘 다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허! 감당하기 어렵다 하는 생각이 나는 것도 네놈한테서 나오는 거니까….’ 하고 거기다가 그냥 맡겨 놓으시고 ‘감당하기 어려운 놈은 누구고 감당하기 쉬운 놈은 누구냐?’ 하곤 그냥 거기다 무조건! 무조건입니다. 무조건 맡겨 놓을 수 있고 무조건 감사할 수 있고 그렇다면 됩니다. 그러면 이제 거기에서, 샘터에서 샘물이 꼬약꼬약 나올 때에 샘물 맛을 알겠죠.

질문자3(여): 오늘 이 자리에서 스님을 뵙게 돼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게 돼서 대단히 죄송하지마는 저는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몸이 천근만근이나 되는 것 같고 하도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서 물어보니까 심장판막증이라는 병에 걸렸다고 수술을 받으라고 하는데 정말로 수술을 받아야 나을지, 저는 수술받기가 굉장히 싫거든요. 그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스님께 감히 질문을 드립니다.
큰스님: 그건요, 댁의 마음에 달려 있어요.
질문자3(여): 마음에요?
큰스님: 예. 수술을 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또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요. 그런데 진짜 자기 자성신을 믿어야 되죠. 딴 신을 찾는 게 아니라 내 신을 믿는 거예요. ‘나를 수억겁 동안 이렇게 진화시키면서 사방팔방으로 끌고 돌아다녔구나.’ 하고 내 주인이 나를 이끌어 온 거를 진짜로 믿을 때, 진짜로 마음의 주인을 믿을 때 성과가 있겠죠. 진짜로 믿는다면 안 해도 좋고요, 진짜로 믿지 못한다면 바깥으로 끄달릴 거고요. 그거는 당신의 생각에 달린 거죠. 그건 당신의 마음에 따라서 이렇게도 될 수 있고 저렇게도 될 수 있는 일입니다.
질문자3(여): 그래도 마음의 중심이 안 잡히고 이래 볼까 저래 볼까….
큰스님: 그러니까 공부를 하라 이 소리 아닙니까? 그건 마음대로 하세요. 댁에서 의사가 되려면 의사가 되고요, 약사가 되려면 약사가 되고요, 또는 마구니가 되려면 마구니가 되고요, 사람 끌어가는 사자가 되려면 사자가 되고요. 마음대로 하세요. 허허허…. 그러니까 좋게 생각하세요.
좋은 질문만 하라는 것이 아니고 그것만이 참선이 아닙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불편한 점이 있다면 그냥 질문해도 됩니다. 남이 뭐, 나를 금에다가 얹어 놓겠습니까. (삼 배 하는 질문자에게) 한 번만 하세요. 그 한 번마저도 나한테다 하는 게 아니니까요. 나야 뭐 한 번을 하든 안 하든 상관도 없어요. 저 부처님도 그러실 거예요. ‘열 번을 해 봐라, 나한테다 하는 건가.’ 하고. 하하하…. (대중 웃음) 부처님은 속지 않거든요. ‘백 번, 삼천 번을 해 봐라, 나한테 하는 건가.’ 그러시죠, 허허허….

질문자4(여): 스님, 가까이에서 뵙게 돼서 너무 감사합니다. 애써 주신 회장님과 여러 신도님 덕택에 이렇게 가까이 뵈올 수 있게 됐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큰스님: 어유! 그런 걸 아시니까 공부가 되겠습니다. 하하하!
질문자4(여): 감사합니다. 저는 너무 공부가 안되고 몰라서 답답하고 궁금한 마음에 이렇게 나왔는데요, 평소에 저는 신문에서나 뭐 나쁜 기사를 보면 ‘주인공! 저런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 주면 좋지 않겠느냐.’ 하고 항상 이렇게 생각을 하거든요. 이것이 옳은 공부 방법인지요.
큰스님: 사람이 아주 친밀해야 됩니다. 그냥 아무것에나 괜히 마음내고 이러질 마시고요.
질문자4(여): ‘심주를 잡아라’ 하신 말씀이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아직 심주가 안 잡혔는지 통…. 그리고 시동생이 지금 여기 나와 있는데 현재 눈이 안 보입니다. 제가 어떻게 마음을 내서 그런 건지, 머리로만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다가 궁금해서 말씀드리는데요, 수술을 하기 전에는 ‘내가 공부가 잘됐더라면 저 시동생을 수술까지 안 하게 할 수 있을 것이고 큰스님에게 맡기면 될 텐데 내 힘이 약해서 못하겠다.’ 이런 생각으로 저 혼자만 애를 태웠거든요. 그래서 수술을 세 번이나 했습니다, 지금 현재까지. 그래도 가망이 없어서 뭐 소련까지 가느니 어쩌니 하고 지금 집안에서 의논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가기 전에 어떻게 안양에 가서라도 큰스님 한 번 뵈었으면 했는데 스님께서 마음을 내셔서 여기까지 오시니 가까이서 뵐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큰스님: 마음을 낼 때도 침착하게 결정을 지어서, 모든 걸 한군데에다가 놓으실 줄 알아야 되고, 한군데서 나온다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길을 가다가 개가 묶여서 끌려가거나 소가 도살장으로 가거나 닭이 전부 백숙 하는 데로 가는 것을 본다 하더라도 한생각에 무명을 벗겨 줄 수 있거든요. 수만 개를 갖다가 집어넣어도 두드러지지 않는 거니까요. 그렇게 해서 수효대로가 아니라 만 개를 한데 합쳐서 한 사람으로서 그 무명을 벗겨주려도 벗겨줄 수 있는 거고, 개개인으로 이렇게 할 수도 있는 거고 그렇지마는, 이렇게 인구가 많은 상태니까 그 씨를 너무 많이 벌일 필요가 없으므로 그저 나한테다 넣어서 굴려서 생산이 되게끔 한다면 아주 적은 수효로 나가죠.
지금 시동생 문제도 그렇습니다. 모든 건 자신이 하는 것이 외려 더 중요하죠. 그리고 주위에서도 함께 똑같이 하는 겁니다. 또한 이 몸이 자연적으로 되어 있는데 칼을 대서 변경하거나 한 뒤에 자연법칙으로 자생력에 의해서 나으려 하면 참 힘든 문제가 많다는 그런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도 저런 것도 다 불문에 부치고 모든 거를 다 주인공에 놓아 보세요. 병원에 가도 법, 안 가도 법이니까 ‘그저 가는 것도 법, 안 가는 것도 법. 네놈이 알아서 이끌어가지고 가는 거니까 당신만이 고쳐줄 수 있어. 당신만이 이끌어줄 수 있어.’ 하고 믿을 수 있고 물러서지 않는다면….
그거는 자기 마음에, 모두의 마음에 달려 있지 태양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하하…. 예를 들어서 태양은 높고 낮음이 없이 여러분을 비춰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응달을 지워 놓고선 태양이 안 들어온다고 해서는 아니 되지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벽을 탁탁 털어 버리고 태양 빛을 쬐느냐, 그렇지 않으면 ‘아이구! 벽이 없으면 안 되지.’ 하고 벽 속에서 컴컴하게 있느냐 하는 겁니다. 벽을 만들어 놓고 태양 빛을 쬐려고 한다면 그거는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죠.
질문자4(여): 스님께서는 저희가 일일이 말씀 안 드려도 다 아시겠지요? 전 아직 공부가 어떻게 된 건지 감을 잡지 못해가지고 너무 안타까워서….
큰스님: 공부가 어떻게 됐는지 감을 잡을 수 없는 것조차 거기다가 맡겨 놓으세요.
질문자4(여): 제 문제 하나도 해결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
큰스님: ‘해결 못한다’ 하는 생각도 그냥 무조건 거기다 맡겨 놓으세요.
질문자4(여): 감사합니다. 끝으로 큰스님 이렇게 뵈어도 친견이지만 저의 시동생이 직접 좀 친견하기를 희망합니다.
큰스님: 그렇게 ‘거죽으로 본다. 거죽으로 뵙는다. 거죽으로 봐야만 되지.’ 이런 생각은 좀 어두운 생각이 아닐까요? 이것 보세요. 보이는 거는 전자와 전자지마는 불이 확 켜지는 거는 그 전자와 전자가 작용을 했기 때문에 들어오는 겁니다. 마음과 마음이 작용을 해야만 불이 들어오는 거지 마음과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들어옵니까? 그러니까 마음으로 열심히 그저 자기 자성불을 진짜로 믿고 해 보세요. 자성불이 공해서 그냥 주인공이라고 하는 거니까 주인공을 진짜로 믿고 ‘주인공! 당신만이 이끌어 줄 수 있어!’ 그렇게 하세요. 본인더러도 그렇게 하라 하시고요. 또 주위의 보호자들도 그렇게 하시고요. 그거뿐이 아니라 그저 용도에 따라서 닥치는 대로 넣으세요. 그럼 용광로에 들어가서 녹아서 내가 원하는 대로 새로 생산이 돼서 착착 나갑니다. 자동적으로요.

질문자5(여): 반갑습니다. 저는요, 합천 해인사 자운 스님 사리 친견하러 갔거든요. 그런데 그때 가니까 수녀님이 그 사리를 친견하러 오셨더라고요. 그런데 저희 시어머님은요, 여기 한마음선원에 다니면 한마음선원에만 가야 되는 거다. 딴 절에 갈 때는 그 절에 구경하러 간다 생각하고 가야 된다고 말씀을 하시는데요, 제 생각은 좀 다르거든요. 먼젓번에 어느 회관에서 한 스님께서, 절에 갈 때는 부처님을 믿고 가는 거지 스님의 썩을 육신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어느 절에 계시나 부처님은 다 같은데 왜 꼭 딴 절에 갈 때는 그 절에 구경하러 가는 것처럼 하고 가야 되는지를 모르겠어요. 이 세계 어디에 있든 부처님은 한 분이고 제 마음이 부처이듯이 서로가 다 부처님은 똑같은 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저의 시어머님께서 그러시니까 사실 시어머님이 조금 밉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스님한테 이 궁금증을 질문드립니다.
큰스님: 말씀 잘하셨어요. 참 말씀 잘하셨어요. 이 세상에 사람들이 수없이 많고 헤아릴 수 없이 생명들이 태어났어도 보살님 하나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무효입니다. 그렇죠? 없죠?
질문자5(여): 예.
큰스님: 그렇습니다. 상대도 없고 아무것도, 미움도 고움도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댁에서 먼저 태어났기 때문에 상대가 생기고 세상이 모두 벌어진 겁니다. 그런 거와 같이 ‘모든 부처님은 한 부처님이다.’ 하는 것은 평등한 생명! 평등한 생명을 말합니다. ‘부처님은 한 부처님이다. 한 생명이다.’ 하는 소리와 똑같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그 절에 사람이 없다면 부처가 없느니라.” 그것이 왜냐? 생명은 다 똑같지마는 씀씀이는 다 달라요. 차원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점이 모두 다르게 돌아가는 거죠. 그건 법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삼 불을 모셔 놔도 석가세존은 생명의 근본을 말하고, 또 문수보살은 생각을 내는 법신을 말합니다. 법신이 생각을 한다면 보현신은 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보현신! 즉 말하자면 화신이자 보현신이죠. 자기 다리가 어디에 부딪치면 자기 다리를 자기가 만지죠? “아이구, 아퍼!” 하고요. 이게 보현신의 손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잘하든 못하든 생각을 내는 그 자체가 바로 법신입니다. 그러니 한생각에, 한마음에 의해서 마음을 내고 몸이 움죽거리고 하는 것을 문수 보현으로 세운 겁니다. 그러니까 부처님 한마음이 동방에는 아촉불, 서방에는 아미타불, 이 세상은 관세음보살로 이렇게 이름을 지어 놓고, 또는 지천국에는 지장으로 이름을 지어 놓은 것입니다. 어찌 그 이름들만 지어 놨겠습니까?
여러분, 고걸 여러분 가정에 비유해서 본다면 그 이름이 말입니다, 자식 노릇을 할 때의 아들이라는 이름 아버지라는 이름, 남편이라는 이름 사위라는 이름, 얼마나 많습니까? 형이라는 이름, 아우라는 이름, 친구라는 이름, 그렇게 이름이 많듯이 부처님의 그 마음으로서 부처님의 이름도 그렇게 많단 말입니다. 아촉불이다 아미타불이다 뭐 또…. 그러니까 찰나에 바뀌어서 돌아가는 대로 이름은 다른 것입니다, 전부.
예전에 조선시대 때에 불교를 탄압했기 때문에, 그냥 스님들 붙들어다 볼기를 때리고 이랬기 때문에 저 산속으로 들어가서 공부를 하려니까, 공부를 할 수가 없으니까 그때 칠성이다 독성이다 용왕이다 하고 전부 붙여 놨던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아직까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불교 탄압을 하지 않는데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부처님은 한 부처님’이라고 얘기한 것은 진리를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진리 속에서 나부터 알아야만이 모두 돌아가면서 둘 아닌 도리와 둘 아니게 나투는 도리를 알기 때문에, 나부터 알아야 되겠기에 내 집의 전화통부터 놔라 이 소립니다. 내 집에 전화 놓을 때까지는 남의 집에 전화 놓은 것 쫓아다니면서 간섭하지 말아라! 그리고 남의 집에 전화 놓은 거에 가서 전화를 좀 하고자 하고 전화를 받고자 하고 이러는 짓을 하지 말아라. 내 집에 전화를 놔서 전화 받기도 하고 전화를 하기도 할 때에 비로소 딴 절에 가 보면 알 수 있느니라.
질문자5(여): 그래서 저도 이 한마음 공부를 제 나름대로는 한다고 하고 있고, 제 주인공을 그만큼 믿고 있거든요. 그래도 어떻게 시간이 없어서 절에 못 올 때 제가 딴 절에 가면 어머님 하시는 그 말씀이 뇌리에 스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꼭 스님한테 한번 여쭈어 보아야 되겠다고….
큰스님: 그것도 자유입니다. 병원에 가지 마라, 가라 이런 게 아니죠. 병원에 가는 것도 법, 안 가는 것도 법인데 그것이 안 되고 되는 것은 그 마음에 따라서 되고 안 되는 것이 나타나는 거니까 그거는 억지로 ‘가지 마라, 가라’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거지요.
질문자5(여): 그러니까 제 마음대로 이끌리는 대로 제 주인공이 하는 대로….
큰스님: 예! 예! 마음대로 하십시오.
질문자5(여): 감사합니다.
큰스님: 마음대로 하세요. 마음대로 하는 것도 누가, 아니 업식이 많아서 도둑질을 시키는 수도 있고 강도질을 시키는 수도 있고, 또 정말 좋은 일을 시키는 수도 있고 아주 악한 일을 시키는 수도 있고 이렇게 하는데, 그거를 자기가 다스려서 잘 해 나가는 데에 멋진 도리가 있는 거지 아, 그걸 다스릴 줄 모른다면 안 되죠. 그냥 구덩이에 빠져도 법, 구덩이에서 나와도 법이니까 ‘구덩이에 빠지는 것도 법이라면, 그러면 잘못돼도 좋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겠지마는 그건 자유에 맡깁니다.

사회자: 시간 관계상 질문은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다음 기회에 또 질문하시고요, 노래공양을 올리겠습니다. 곡목은 ‘선종관문 알아보세’입니다.
큰스님: 한 사람, 두 사람만 더 했으면 좋을 걸, 아주 아쉬워하는 것 같은데…. 그저 그렇게 해 나가신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위 법문은 1992년 4월 26일 국내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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