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若欲覓佛 須是見性卽是佛 若不見性 念佛誦經持齋持戒 亦無益處 念佛得因果 誦經得聰明 持戒得生天 布施得福報 覓佛終不得也.
부처를 찾고 싶으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하느니라. 그것이 바로 부처이니라. 성품을 보지 못한다면 염불을 하거나 경을 읽거나 재(齋)를 지키거나 계율을 지키더라도 아무런 이익이 없느니라. 염불을 하면 왕생의 인과를 얻고, 경을 읽으면 총명해지고, 계율을 지키면 천상에 태어나고, 보시를 하면 복스런 과보를 받겠지만 부처는 끝내 찾을 수 없느니라.
[해설]
생도 없고 죽음도 없는 부처의 자리를 찾는 방법에 대해 달마 스님은 ‘부처를 찾고 싶으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한다’고 설했습니다. 진언을 외울 때나 화두를 들거나 염불을 할 때 문자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부처자리에 마음을 두고 의심을 하게 되면 틈이 생기지 않아서 잡념이 없고 집중이 잘 돼 맑은 기운이 업을 맑혀 줍니다. 탁한 기운이 맑은 기운으로 바뀌는 것이지요. 오래 정진하면 할수록 우리의 불성 자리가 조금씩 드러나게 돼 있습니다. 염불을 하든, 화두를 들든, 열심히 일심으로 정진하면 우리의 성품을 보게 됩니다.
성품을 보는 순간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생사가 없는 그 자리를 체험하는 순간 ‘견성(見性) 했다’고 보통 이야기합니다. 견성한 다음에 경을 보면 배우지 않았어도 모두 알게 됩니다. 배우지 않았지만 체험을 하고 나니까 막힘 없이 다 이해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성품을 보지 못한다면 염불을 하거나, 경을 읽거나, 재(齋)를 지키거나, 계율을 지키더라도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함경> <방등경>을 통해 교훈적인 말씀을 20년 동안 설명하신 다음 이해가 되신 분들에게 바로 반야부에서 생사가 본래 없는 체(體)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의 성품을 봤다면 염불을 할 필요도 없고 경을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수행을 하지만 한다는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말합니다. 어떤 행동을 해도 걸림이 없습니다. 우리 중생들이 볼 때는 파계이고 막행막식(莫行莫食)이지만 정신세계에서 보았을 때는 걸림이 없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겉만 보고 이건 옳고 이건 잘못 됐다고 하잖아요. 그러나 마음자리에서 보면 잘한 것도 없고 잘못된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달마 스님은 실상(實相)을 바로보지 못한 가운데 경을 읽거나 계율을 지키더라도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일념으로 염불을 하면 왕생(往生) 인과를 받고 극락에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극락에 가더라도 생사가 끊어진 것은 아닙니다. 극락에 가더라도 본래 성품을 깨닫기 위해서 끊임없이 수행해야 합니다. 극락은 마음자리를 깨닫기 위한 수행 공간이기에 그렇습니다. 극락세계는 상품, 중품, 하품으로 되어 있습니다. 중품(中品)에선 수행이 가능하지만 하품(下品)에선 수행 전 몸과 마음을 바로 세우는 곳입니다. 견성을 하신 분들은 상품(上品)으로 그대로 올라가고, 견성을 못했지만 열심히 수행했던 분들은 중품으로 올라갑니다. 불교도 모르고 열심히 수행도 하지 않고 절에 왔다 갔다 하시던 분들은 스님들의 힘을 빌어 극락에 간다 하더라도 하품으로 갑니다.
정진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일체 중생을 위해서 사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눈을 떠야 가족이나 다른 누구에게라도 이익을 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정진하면 집안의 나쁜 기운도 정화 되고 집안도 저절로 편안해집니다.
달마 대사는 염불을 할 때 관상염불이나 칭명염불을 하면 극락을 갈 수 있지만 실상염불이 되지 않을 땐 깨닫기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경을 읽으면 총명해진다 하셨습니다. 깨달을 수 있는 길을 말씀하신 경의 뜻을 새겨 자기 마음을 비추며 읽다보면 총명해집니다. 또 계율을 지키면 천상에 태어난다고 하셨는데, 천상에 태어난다고 해도 천상은 영원한 곳이 아니라 업이 다하면 다시 윤회 하는 곳이니까, 부처를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보시를 하면 복을 받는다는 말은 실상자리에서 보시를 행하는 경우 우주를 상대로 하는 행위이니 부처님으로서 갖추게 되는 무량한 덕이 됨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얻고자 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보시는 행한 만큼 큰 복을 받지만 업이 다할 땐 다시 과보를 받게 되니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본래 부처’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 부지런히 수행해야 합니다. 지장보살을 찾든 관음보살을 찾든 상관이 없습니다. 본래 모양이 없고 어떤 이름도 붙일 수 없는 그 자리가 부처이기 때문에 마음을 집중시키기 위한 방편이라는 말이죠.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이 절대 다르지 않습니다. 이름만 다르게 붙인 것입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도 형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소리로써 나를 알려고 하는 자는 영원히 진리를 보지 못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우리들 본래 마음자리입니다. 그 자리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 염불이나 진언, 화두로 마음을 집중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염불이나 진언을 염하든, 화두를 들든 맑은 기운이기 때문에 상관이 없습니다. 어떠한 방편으로든 정진을 하면 할수록 정신이 맑아지고 나쁜 기운도 정화가 되니까 좋은 일도 많이 생기고, 결국 본래 부처자리를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 청주 혜은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