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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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꽃 한 송이도 부처임을 알라
부처는 영산에 있고 영산은 자기 마음속에 있어
지옥과 극락 만들어내는 ‘팔풍’ 벗어나야 道 완성

[원문]
불재영산막원구(佛在靈山莫遠求)
영산지재여심두(靈山只在汝心頭)
삼라만상시법신(森羅萬象是法身)
진불이반월삼성(眞佛而半月三星)
-관음사 천불전

[번역]
부처님은 영산에 계시니 멀리서 찾지 말게
영산은 오직 그대 마음속에 있네.
삼라만상이 모두 부처님의 법신이며
진실한 부처님은 반달이요 세 별이라네.

[선해(禪解)]
봄은 산사(山寺)에 가장 먼저 온다. 어느 날 문득 아침 산문(山門)을 열면, 마당에 서 있는 나뭇가지에서 어느새 함박눈처럼 꽃망울이 터져 있다. 이렇듯 봄은 아무도 몰래 순식간에 온다. 절 향내와 섞여 상큼하게 빚어내는 봄 냄새는 산승(山僧)의 마음을 푸근하게 적시는 것 같다.
겨울은 겨울이여야 제 맛이 나는데 올 겨울은 몇 차례의 추위말고는 따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팍팍한 일상 때문인지 산문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이 모든 게 다 경제 한파(寒波) 때문이리라 싶다. 어쨌든 어렵고 힘든 시절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가난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주산 관음사는 신라시대 때 장보고가 지은 절로 유서 깊은 사찰이다. 흥덕대왕으로부터 ‘청해진 대사’라는 직함을 제수 받고 돌아온 장보고는 옛날 완도 도치봉이라는 주산에 올라 산 아래를 굽어보았다. 굽이굽이 뻗어 있는 산 아래 펼쳐진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의 모습이 아득히 보였다. 한눈에 완도가 다 보였다. 장보고는 그 순간 이 자리가 명당 중의 명당임을 알고 절을 세울 것을 명령하고 그 자리를 관음사라 하였다.
그 때만해도 장보고는 중국에 법화원이라는 큰 규모의 절을 짓고 있을 정도로 불심이 깊었다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 명당 중의 명당으로 불리는 관음사가 존재하게 된 이유이다.
일반적으로 우리 몸은 ‘육신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육신을 관(觀)하고 있는 것이 ‘마음’인데 이를 잘 다스려야만 안식을 구할 수가 있다. 관음사의 천불전 주련은 인간의 ‘마음’에 그 주제를 두고 있다.
우리는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늘, 절을 찾는다. 하지만 부처님은 절에만 있는 게 아니라 영산에 있다고 주련은 밝히고 있다. 그럼, 그 영산은 어디에 있는 걸까? 바로 그대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영산에 계시니 멀리서 찾지 말라’하고 그 ‘영산은 오직 그대 마음속에 있다’라고 당부하고 있다. 참으로 지당하고 지당하신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선가(禪家)의 선구(禪句)는 짧은 문장 속에 광활한 우주의 법리(法理)를 안으로 품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그릇으로 따지면 쓰기에 따라 작은 종지가 될 수 있고, 때로는 저 바다와 같이 넓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그 그릇이 커야 제대로 담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인간의 중심인데 어떤 마음의 그릇을 지니고 있는가에 따라 그 인격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道)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동요시키는 팔풍(八風)에서 벗어나라는 말이 있다. 팔풍이란 이(利) 쇠(衰) 훼(毁) 예(譽) 칭(稱) 기(譏) 고(苦) 락(樂)을 말한다. 이는 정세가 유리함이니 득의(得意)의 상태, 쇠는 실의(失意), 훼는 중상, 예는 명예, 칭은 칭찬, 기는 비난, 고는 괴로움, 락은 즐거움을 가리킨다. 곧 마음이 이 여덟 가지를 관(觀)하여 때로는 ‘부처’를 만들고 ‘악마’를 만든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부처가 되는 길은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달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꾸만 부처를 멀리서만 찾으려고 한다. 이것은 어리석음 때문이다. 부귀나 명예, 쾌락 그런 것만을 추구하다보면 진정한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 수 없으며 또한 자신의 존재조차 까맣게 잊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남을 위하는 이해심과 온전한 사랑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관음사의 주련은 우리에게 진정한 불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즉 ‘삼라만상이 모두 부처님의 법신이며 진실한 부처님은 반달이요 세 별이다’라는 것이다.
길을 가다 만나는 꽃 한 송이, 바람 한 자락, 하늘에 떠 있는 별과 달, 해가 모두 부처라는 말이다. 이 모든 삼라만상이 부처님의 법신인데 우리는 어찌 이 모두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참으로 가슴을 울리는 진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곁에 있는 모든 생명과 사물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족이 아프면 함께 아프듯이,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중생들이 괴롭고 아파하면 자신도 아파해야 한다. 반대로 중생이 즐거우면, 자신도 아픈 것이 바로 보살의 마음이다. 우리는 이와 같이 진정으로 내안(內岸)에 든 부처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옛날 마음이 지어내는 극락과 지옥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한 일본의 젊은 무사가 선사(禪師)를 찾아와 불경에 있는 아름다운 극락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선사는 당장 무사에게 “극락과 지옥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하자, 무사는 얼씨구 좋아 선사를 따라 나섰다. 그 순간 선사는 발길을 돌려 그 무사의 뺨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이 바보 같은 놈아 극락과 지옥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너는 그것을 믿는다는 말이냐?”
갑자기 뺨을 얻어맞은 검객은 어안이 벙벙했다. 거기다가 바보 취급을 받았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당장 선사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만약, 사과를 하지 않으면 무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을 베겠다고 했다.
“꼴에 무사라고 자존심을 내 세우긴. 벨 테면 베어라.”
무사는 정말 화가나 높이 칼을 들었다. 그 순간 벽력같은 목소리로 선사가 말했다.
“잠깐 지금 이것이 바로 지옥이다. 그대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사람을 죽이려 했으니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 순간 무사는 칼을 땅에 떨어뜨리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용서를 빌었다. 그 순간 선사는 “이게 극락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우리 마음속에는 부처와 악마, 극락과 지옥이 함께 들어 있다. 주산 관음사의 주련이 우리에게 던져 주는 진리의 말씀은 바로 이것이다.
■ 조계종 원로의원
200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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