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心外旣無佛 何起佛見 遞相惑 不能了本心 被他無情物攝 無自由 若也不信 自無益.
마음 밖에는 부처가 있을 수 없는데 어찌하여 마음 바깥에 부처가 있다는 견해를 일으키며, 서로 속여서 본심을 알지 못하고 저 무정물(無情物, 불상)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느냐? 만약 믿지 못한다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니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해설]
달마 스님은 부처님의 법을 이어 받은 분으로서 우리에게 수행의 바른 길을 간절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진리의 차원에서는 일체가 마음으로 돼 있으니 마음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육안으로 보는 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우리가 육안으로 보는 물질 세계는 인연에 의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착각일 뿐입니다. 모든 물질은 1초에 99억 번 진동하는 에너지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집착하고 애착하는 육신 또한 어제와 오늘, 1초 전과 1초 후가 똑같지 않다는 말입니다. 모든 것은 항상 그대로 있지 않고 변하기에 부처님께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하셨어요. 변하는 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우리가 꿈 속에서 본 것이 진짜가 아니듯 현실에서 보고 듣고 하는 것도 꿈속에서 본 것과 똑같다는 겁니다. 꿈에서 깨면 허망하듯이 지나온 시절을 생각해 보면 허망하죠. 그와 같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본 것은 본 것이 아니고 들은 것 역시 들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속지 말아야 하는데 과거로부터 익혀온 습 때문에 자꾸 휘둘립니다. ‘꿀은 달다’ 라는 인식을 바꾸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실상(實相)이 물질의 세계라는 인식을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주의 실상은 생명 그 자체인데 말이죠. 달마 스님께서 ‘마음 밖에 불성이 따로 없다’고 하신 말씀도 일체가 마음으로 돼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마음 밖에는 부처가 있을 수 없는데, 우리는 어찌하여 마음 바깥에서 부처가 있다는 견해를 일으키며 저 무정물(無情物)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는가 하고 반문하고 계십니다.
우주는 모양이 없는 하나의 마음으로 돼 있기 때문에 나눌 수가 없죠. 나눌 수가 없기 때문에 진리의 차원에서 우주를 하나의 생명으로 보는 겁니다. 생명을 인격적으로 우리는 ‘부처’라 부르지요. 그 부처님을 우리가 선(禪)이라 부르기도 하고 불성(佛性)이니 진공(眞空)이니 진여(眞如)니 다양한 명사를 붙여놓았습니다만, 우주의 실상은 모양이 없기 때문에 사실은 이름붙일 수가 없어요. 그러니 부처님께서도 49년 동안 법을 설하시고 한 마디도 설하지 않으셨다 하신 것입니다.
무정물 또한 사실은 무정물이 아닙니다. 불상은 오랫동안 나무를 건조시켜서 조각을 한 거잖아요. 그러나 나무가 말랐다고 해서 생명이 없는 게 아닙니다. 나무 자체도 생명체예요. 그런데 여기서 무정물이라 언급한 것은 다만 이름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사실 생명 아닌 게 없는 겁니다. 우리가 절을 할 때 앞에 계신 분을 향해서 절을 하는 게 아니거든요. 여기 계신 불상을 향해 절을 하는 것이 아니고 눈으로 볼 수 없는 우주 실상의 부처님을 생각하며 절을 하셔야 된단 말입니다. 마음의 본래 그 자리가 부처님이예요. 본래 내 마음 자리에서 보면 우주는 그대로 하나의 마음으로 돼 있습니다. 우리가 원래 부처이면서 부처의 삶을 살지 못하고 중생으로서의 삶을 살기 때문에, 우리는 부처가 돼야 하기 때문에 본래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절을 해야 된단 말씀입니다.
그래서 반야부(般若部)에 보면 우주에 대해 강조를 많이 합니다. 우주는 모양이 없으니까 상대가 없잖아요. 상대가 없으니까 ‘실상 자리’에 마음을 두고 행을 하는 것이 곧 부처가 되기 전 수행인 보살행이 되는 겁니다. 참다운 보살행은 우주를 상대로 하기 때문에 그 복이 끝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상대를 생각하면서 하는 행은 그 상대와 인과(因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받은 만큼 행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반면, 우주를 상대로 한 행은 그 복이 영원히 ‘새지 않는 복(無漏福)’이 됩니다.
쌀 한 톨이라도 우주와 관련이 돼 있습니다. 쌀 한 톨이 나오기까지 태양이 있어야 하고 바람이 불어주어야 하고 일체가 우주와 관련이 돼 있습니다. 그러니 공양을 하실 때에도 우주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무량한 복이 되겠죠. 우리가 ‘불자다’ ‘불교를 믿는다’ 했을 때에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우주의 실상 진리를 믿는다고 해야 됩니다. 신도분들이 불상을 마음에 두고 절을 한다면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본래 마음 속에 있고 그 진리 차원에서 보면 부처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분이 말씀하신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출현했던 석가모니 부처님은 화신불(化身佛)입니다.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진리의 길을 안내해 주시기 위해 출현하셨던 분입니다. 우주 실상인 마음자리는 문자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법신불(法身佛)입니다. 부처는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눈을 뜨면 부처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를 만약 믿지 못한다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니 아무 이익이 없을 것입니다.
■ 청주 혜은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