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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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얼굴
박 명 순
前 동대부속여고 교장

어느 해 바람이 옷깃에 차갑게 느껴지던 늦은 밤, 우리 학교 교실마다 형광등이 대낮처럼 켜져 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반복되는 자율학습 시간을 지내며, 쉼없는 줄긋기를 힘들어 하듯 맥 빠진 모습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다.
그 풍경 한 켠에는 연이은 수업과 진학지도로 피곤한 담임교사가 수업지도에 석고처럼 굳은 얼굴을 창가에 비추고 있다. 책장 넘기는 소리마저 바윗돌 구르는 것처럼 들릴 만큼 정적이 흐른다. 이따금 불호령이 졸고 있는 학생들을 깨울 뿐. 또 다른 한 켠에는 어둠 깔린 운동장, 학교 주변을 서성거리는 학부모들의 시선이 교실을 향해 꽂혀 있다.
학생들에게 묻고 싶다. 너희들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희망과 포부, 꿈과 이상을 펴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동대부속여고는 부처님 자비정신을 건학이념으로 세워진 학교다. 부처님 자비 아래 고운 마음, 옳은 행동으로 바른 마음에서 새로운 의욕을 다짐하며 학생들에게 밝은 얼굴로 다가서는 이들이 우리들(교사)이다.
우리 교사들은 우리가 사랑하는 젊은 그들(학생)이 교정에서 넓은 사회를 위해 힘차게 걸어 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들 생각의 폭을 넓혀 잠재된 능력을 꽃 피워 사회의 동량이 될 때까지 돕는 것이 교사의 몫인 것이다.
얼마 전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공개된 후 암울한 사회의 그늘과 빈곤의 소리가 교정 안으로 성큼 다가선 듯 하다. 시행 전부터 전국 단위 전수조사의 필요성을 따지던 논란이 결과 발표 후에는 집계 오류와 보고 누락 등 조작 의혹을 더하며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학생이, 학교가 일렬로 세워져 서열화된 결과에 대한 일각의 비판은 차치하고 사회 이슈로 떠오른 학업성취도 평가를 어찌해야 할까?
당장 서열화된 지역과 학교를 보는 순간, 뒷줄의 학교 선생님들은 곤욕을 치루겠구나 하는 노파심이 앞선다. 학부모의 성난 소리와 폭행이 2008년 한 해 일어났던 교사인권 침해의 30%이상을 차지한다는 통계가 석고처럼 굳은 얼굴로 교실에 서 있던 교사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
그렇다고 학업성취도 평가를 중단하는 것만이 옳은 선택일까? 당장 중단하면 이번 결과에서 드러난 기초학력미달 학생은 어떻게 구제할 것이며, 앞으로 발생할 학력미달 학생들은 어떻게 찾아내 도울 것인가?
교사의 사명감과 그들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을 학생을 담당하는 교사의 재량과 판단에만 맡길 수 있다면 좋겠으나, 이미 교육은 학생의 인성과 교과진도에 그치는 것이 아닌 사회 구성원 전체가 공유해야할 사회문제다.
교육 발전의 모체는 평가에 있고, 평가 없이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는 물론 교사의 능력 성장을 가늠하기도 힘들지 않을까? 학업성취도 평가의 취지는 기초학력 미달학생이 집중된 지역을 파악함에 있지, 학생들 평균 성적이 몇 점인가에 있지 않다.
평가를 주관한 교과부도 이번 평가의 실패를 보완해야 한다. 완벽한 대책이 없다면 또 다시 잘못된 평가로 학생과 학부모, 교사를 두 번 죽이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된다.
나는 항상 생각한다. 내 안의 교육철학이 무엇일까? 내가 그들에게 안겨줄 선물은 준비하고 있는가? 학업성취도 평가는 제도적인 방편일 뿐이다. 자애로운 교사의 지도가 없다면 학업성취도는 숫자놀음에 지나지 않는다.
부처님의 중도가 학업성취도 평가의 가부를 갖고 다툼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불보살의 자비가 맥 빠진 학생들에게는 활기를, 석고처럼 굳은 교사에게는 미소를 안겨주길 바라며.
200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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