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타인 존경해서 얻는 겸손으로 존재가치 지녀
부처님 진신사리로 남아 지금도 ‘사람과 때’ 기다려
[원문]
시적쌍림문기추(示跡雙林問幾秋)
문수유보대시구(文殊留寶待時求)
전신사리금유재(全身舍利今猶在)
보사군생예불휴(普使群生禮不休)
-통도사 금강계단 적멸보궁
[번역]
묻노니, 쌍림에서 열반에 드신지 그 몇 해인가
문수보살 보배를 모시고 때와 사람을 기다렸네.
부처님 진신사리 오히려 지금도 있으니
많은 군생들 예배하여 쉬지 않네.
[선해(禪解)]
적멸보궁이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전각을 가리키는데 우리나라에만 해도 다섯 군데가 있다. 원래, 적멸보궁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후,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 금강좌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적멸도량회가 최초인데, 언덕 모양의 계단을 쌓고 불사리를 봉안,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서 적멸(寂滅)의 법(法)을 설했던 곳이다.
불가에서는 진신사리를 부처님과 동일체(同一體)로 보기 때문에 부처님 이상으로 숭배를 하고 있으며,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곳에서는 따로 불상을 조성하지 않는다.
불자들은 사리에 대해 수행자가 열반 후 남기는 구슬모양의 유골로만 대개 알고 있다. 물론 맞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부처님이 남기신 경전도 일종의 진신사리임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남기신 유골(遺骨)의 구슬이 유(有)의 사리라고 한다면, 경전은 부처님께서 남기신 주옥같은 언(言)의 사리인 것이다. 때문에 불자들은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항상 몸 가까이 두고 읽어야만 한다.
우리나라에는 5대 적멸보궁이 있는데 불교 신도들에게 기도도량과 순례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가장 신성한 성지(聖地)로 각인돼 있다. 불자라면 반드시 한번은 가 보아야 할 정신적인 기도도량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 중 하나인 통도사 금강계단에 있는 적멸보궁의 진신사리는 그 의미가 매우 깊다. 이곳의 진신 사리는 신라의 자장(慈藏) 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부처님의 사리와 정골(頂骨)로 알려져 있다. 이를 나중 각각 다섯 곳으로 나누어 보관했는데 이곳이 바로 5대 적멸보궁이다. 양산 통도사(通度寺),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사자산 법흥사(法興寺)이다.
통도사 금강계단에 걸려 있는 주련의 편액은 부처님의 진리사리에 대한 위대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부처님이 쌍림에서 열반하신 후 25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항상 어리석은 중생들의 곁에서 머물러 제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글이라 할 수 있다.
‘묻노니 쌍림에서 열반에 드신지 그 몇 해인가 문수보살 보배를 모시고 때와 사람을 기다렸네.’
문수보살이 누구인가. 그는 바로 부처님께서 부촉하신 대승보살 가운데 한사람이다. 문수는 묘(妙)의 뜻이고 사리는 머리(頭), 덕(德), 길상(吉祥)의 뜻이므로 지혜가 뛰어난 공덕을 가리키는데 석가모니불의 보처로서 지혜를 관하고 있는 보살이다. 말하자면 부처님은 진신사리로 남아 2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문수보살을 데리고 ‘사람과 때’를 기다려 온 것이라 알 수 있다.
선현(先賢)이란 말이 있다. 이는 앞서간 지혜가 뛰어나고 고귀한 현자(賢者)를 가리킨다. 그러나 우리는 이 현세를 살면서 아직도 뛰어난 현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고 때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부처님은 문수보살을 모시고 그 현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 진신사리 오히려 지금도 있으니 많은 군생들 예배하여 쉬지 않네.’
그렇다. 부처님은 이미 열반하셨지만 지금도 우리에게 진신사리로 남아 우리를 돌보아 주고 있다. 이런 부처님께 우리 중생들이 어찌 예배를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 있을 때는 사실, 가람도 필요 없었으며 경전도 필요치 않았다. 부처님이 머무는 곳이 곧 가람이며 부처님이 말씀 하시는 것이 곧 경전이었다. 부처님의 말씀이 곧 교(敎)였으며 마음이 선(禪)이 됐던 까닭이다. 그 후 교는 경전을 통해 법보(法寶)가 됐으며 선은 스님을 통해 오늘날의 승보(僧寶)가 됐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열반을 하신 이후에 사리로 남아 불보(佛寶)가 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법인 불법승 삼보(三寶)가 아니겠는가!
일찍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남기신 유언은 ‘오직 법만을 따르되 나를 상징하는 것은 아무것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이 같은 말을 제자들에게 남기신 이유는 바로 맹목적인 기복 신앙의 대상이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세는 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찌 보면 진신사리는 부처님의 유언에 대해 역행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과거 부처님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세상은 마음이란 실상의 존재를 부인했을 것이다. 참 마음’이 무엇이며, ‘참 존재’가 무엇이며, ‘참 나’가 무엇인지를 정녕 우리는 모르고 살아 왔을 것이다. 때문에 오늘날에도 부처님을 두고 우리는 절대적인 성인(聖人)으로 모시고 있는 까닭이다.
통도사 금강계단은 부처님의 진짜 사리가 묻힌 곳이다. 예부터 우리나라의 진신사리는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많은 수탈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곳은 어느 노스님이 진신사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첩첩산중의 토굴 속으로 피신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통도사 금강계단은 불가에서나 국가에서나 매우 중요한 유적지로 알려져 있는데 국보 290호이다. 원래 금강계단은 승려가 되려는 사람에게 일정한 과정을 거친 다음 계율을 내려주는 수계의식 장소이다. 그러므로 이곳에 부처님의 진리사리가 놓여 있는 것은 그 의미가 매우 깊다.
그런고로 주련에 새겨진 그 깊고 깊은 선구(禪句)를 어찌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처님 진신사리 오히려 지금도 있으니 많은 군생들 예배하여 쉬지 않네.’
삶이란 남을 존경함으로써 얻는 겸손에서부터 그 존재가치를 지닌다. 부처님은 이를 현세의 사람들에게도 아직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불자들이여! 자신을 돌아보고 항상 그 마음을 낮추어 보라! 그래야만 진정 자신의 ‘사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조계종 원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