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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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꽃 피고 물 흐르듯 살아보자”
자연의 발성법은 무념 무심, 진리 그냥 드러낼 뿐
부처님과 항상 같이함에도 업연으로 진체를 못 봐

[원문]
장상명주일과한(掌上明珠一顆寒)
자연수색변래단(自然隨色辨來端)
기회제기친분부(幾回提起親分付)
암실아손향외간(闇室兒孫向外看)
-가야산 해인사 명부전

[번역]
손바닥 위의 영롱한 한 개의 구슬
색은 자연을 따라 변함이 없어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친절히 알려 주었건만
어리석은 중생들은 밖에서만 찾네.

[선해(禪解)]
인간의 삶은 유한(有限)하고 자신이 살아온 길에 따라 부침(浮沈)이 심하다. 하지만 자연은 천년이 지나도 그 빛깔을 결코 잃지 않는다. 자연에게 배울 수 있는 건 무수히 많지만 그 이치를 잘 모르는 게 바로 인간이다. 자연의 발성법(發聲法)은 무념 무심(無念 無心)이다. 진리를 그냥 밖으로만 드러내고 있을 뿐, 그저 침묵하기만 한다.
봄이 되면 잎이 피고, 여름이면 짙푸르고, 가을이면 남김없이 자신의 몸을 지우는 잎, 겨울이면 새로운 잎을 틔우기 위해 인내하는 나무, 이렇듯 자연은 진리 그 자체이며 이를 인간은 깨쳐 알아야 한다. 자연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많은 것을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가르쳐 주지만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慾樂)에 젖은 인간들은 잘 모른다. 허나 자연은 세세생생(世世生生) 영원하다.
오늘 아침 신문에서 나는 역사에 대한 짙은 의미를 체감(體感)했다. 역사란 하나의 자연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그 장대한 역사 앞에 그냥 흘러가는 하나의 시냇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새삼 절감했다.
옛 백제의 고읍(古邑)인 익산 미륵사지석탑에서 천 년 전에 만들어진 국보급의 영롱한 ‘사리장엄구(砂利莊嚴具)’가 발견된 것이다. 그동안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은 그 형체가 변변치 못해 겨우 시멘트로 덧 씌워진 채 간신히 버티고 있는 하나의 볼품없는 석탑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석탑이 천년의 역사를 품고 있었던 게다.
늘 그렇듯이 자연이 주는 위대한 힘을 오늘 나는 목격했다. 이런 현장을 귀로 들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행운이다. 사리금제호 표면에 새겨진 다양한 문양과 세공기법은 백제금속공예의 우수성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참으로 기가 막힌 작품이라고 한다. 가히 한국 불교의 전통성이 새삼 드러난 역사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미륵사지석탑은 7세기에 세워진 석탑이니 1400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은 게 아니다. 인간의 삶은 겨우 백년도 살지 못한다. 아니 죽어 그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는 게 바로 인간의 육신이다. 하지만 사리금제호는 무려 1400년이란 장대한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영롱한 빛을 잃지 않고 후세에 발견된 것이다.
가히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가야산 명부전에 새겨진 주련(柱聯) ‘손바닥 위의 영롱한 한 개의 구슬/ 색은 자연을 따라 변함이 없어라’의 내용과 다름이 없다. 또한 천년의 국보에 새겨진 문안(文案) 또한 가히 불세(佛世)의 내용이다.
‘가만히 생각하건데,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중생들의 근기(根機)에 따라 감응(感應)하시고, 중생들의 바람에 맞추어 몸을 드러내심은 물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석가모니께서는 왕궁(王宮)에 태어나셔서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면서 8곡(斛)의 사리(舍利)를 남겨 삼천 대천세계를 이익되게 하셨다. 그러니 마침내 오색(五色)으로 빛나는 사리(舍利)를 7번 요잡 오른쪽으로 돌면서 경의를 표하면서 그 신통변화는 불가사의하다’라고 적혀 있다. 실로 가슴 뭉클한 내용이다.
이와 같이 1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처님은 이 우주법계에 충만하여 안 계신 곳이 없다. 시방(十方)과 상생(相生)을 초월해 사람은 물론, 모든 풀과 나무에 이르기까지 그 은혜를 입지 않은 게 없는 것이다. 이렇듯 자연은 모든 역사를 고스란히 가슴속에 품는다. 부처님의 법신 자체도 그 속에서 남아 흐른다. 때문에 재재처처(在在處處)가 불찰불신(佛刹佛身)이오, 삼라만상이 청정법신(淸淨法身)이며 어느 곳 어디엔들 상적광토(常寂光土)가 아닐 수 없으며 무량수(無量壽) 무량광(無量光)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진실로 실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중생들은 지혜가 암둔하고 업장이 후중한 까닭에 부처님과 항상 호흡을 같이하고 동정(動靜)하고 있으면서도 부처님이 곁에 있는 걸 잘 모른다. 말하자면 부처님의 진체(眞體)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지없는 업연(業緣)의 소치 탓으로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불신(佛身)은 법계에 충만하고 모든 중생들 앞에 항상 나타난다. 또한 인연법에 따라 미치지 않은 곳이 없지만 항상 부처님이 계셔야 할 보리좌(菩提座)를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어 부처님은 우리의 주변에 항상 계시면서 그 본분을 다하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이쯤에서 원효 대사의 말씀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 땅에 왜 부처가 있어야만 하는가? 왜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처님이 우리들 곁에 있어야만 하는가? 원효 선사는 부처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처는 부처의 세상에서는 결코 필요 없다. 고통 받는 중생이 있기 때문에 부처가 필요한 것이다.”
참으로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법언(法言)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중생들은 고통을 받고 있다. 불국토(佛國土)에서는 부처가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부처를 두고 사바세계에서는 석가모니불이요, 미륵세계에서는 미륵용화불이라고 한다. 바로 이 고통 받는 세간에 부처가 필요하다. 묘(妙)한 이치이다. 1400년 전에 세워진 석탑이 이를 말해 주고 있다.
우리는 지옥과 극락이 마치 딴 곳에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 찰나 사이에 갈라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마음하나에 달려 있다. 자연은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이를 가르쳐 주었지만 어리석은 중생들은 간파하지 못하고 밖에서만 진리를 구하려 하고 있다. 참으로 우치(愚癡)의 소산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꽃은 피고 물은 흐르듯이 그저 자연이 던져주는 진리에 순응하여 몸을 기대고 사는 게 바로 부처의 삶이며, 자연이 우리들에게 던져 주는 진리이다. 이것이 바로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빛깔을 가진 영롱한 옥(玉)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중생들은 이를 깨달아야만 한다.
■ 조계종 원로의원
200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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