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게’ ‘밖에서’ ‘늘려’ 사는 것이 ‘채 나눔’ 건축철학
경제·미적 요소 결합된 건축은 생활 담아내는 것이 중요
강 사 : 이일훈 (건축스튜디오 ‘후리’ 대표)
일 시 : 2009년 1월 20일
장 소 : 마포 다보빌딩 대강당
주 최 : (재)대한불교진흥원
월간 ‘불교문화’
주 제 : 더 깊은 아름다움을 찾아서
이일훈 건축가는 ‘채 나눔’으로 유명하다. 채를 나눠 동선을 길게 늘인 그의 건축설계는 ‘동선을 짧게 할수록 좋다’는 기존 상념에 위배된다. 그의 느리게, 그리고 조금 불편하게는 ‘탄현재’ ‘궁리채’ ‘작은 큰집’ ‘가가불이’ 등 주거건축에 녹아있다. ‘도피안사 향적당’ 등 불교건축활동도 활발히 펼친 이일훈씨. 그는 1월 20일 월간 <불교문화> 화요강좌에서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속가능한 삶을 지향하는 건축에 대해 말했다. 빠르고 편리함을 강조하는 현대문명 속에서 늘임의 미학을 외치는 그의 공간으로 들어가 보자.
#세상에서 사라진 것 다시 지어보자
“정자가 사람이 만든 그늘이라면, 나무는 자연이 만든 정자다. 나무는 스스로 풍경을 만들어낸다. 사람의 손길이 거치지 않으면, 정자는 폐허가 되지만 나무는 더욱 더 나무다워진다. 건축적 잣대로만 정자를 보려하면, 건축의 어둠에 가려 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집에 가려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모형속을 걷다> ‘정자와 나무의 궁합’에서)
우리가 만든 집은 땅위에 얹혀 있습니다. 100~200년 간다면 마치 나무와 같죠. 나무는 바람이 불 때 흔들리고, 낙옆을 떨구며, 자라면서 넘어지지 않도록 구조돼 있습니다. 합리적이고 유기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나무와 집은 매우 비슷합니다.
저는 집을 생각하면 나무가 떠오르고, 나무를 보면 집이 떠오릅니다. 건축가로서 일종의 직업병 같습니다. 이제 여러분과 저는 편견과 고집이 가득한 건축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연을 맺겠습니다.
어느날 작업실을 옮겨쓸 때입니다. 10여 년 동안 쓰던 공간이기 때문에 살림 곳곳에 많은 것들이 수납돼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작업했던 수많은 모형부터 정리해야할 입장에 처했습니다. 치울 엄두도 못내던 차에 ‘모형을 부숴 버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년이 넘게 간직한 모형을 부수며 그 흔적을 슬라이드 필름으로 남겼습니다. 부서진 모형들과 남겨진 필름을 보며, ‘이제는 세상에서 사라진 것들을 생각으로 다시 지어보자’해서 나온 것이 <모형속을 걷다>입니다,
#‘채 나눔’은 조상들의 삶의 방식
저는 ‘채 나눔’을 주장하는 건축가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채 나눔’은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삶의 방식입니다. 저는 그것을 현대적인 방법으로 구현하고 덧붙였을 뿐입니다. 저는 ‘채 나눔’ 삶을 현대적으로 적용함에 세가지 방법론으로 정리했습니다.
첫째는 ‘불편하게 살자’입니다. 건축을 비롯한 우리의 삶은 불편해야 합니다. 몇 대를 가도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조금 불편하게 사는 것이 해답입니다.
저를 포함한 여러분은 자식들과 손자, 그 이후 자손들이 넉넉한 환경에서 잘 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후손들에게 남겨줄 것까지 모두 까먹고, 파먹고, 태워버리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 자식과 손자들을 위한 길은 ‘불편함’. 간단합니다. 그래서 삶의 방식 중 하나인 집을 짓는 근저로 ‘불편하게 살자’를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두번째는 ‘밖에서 살자’입니다. 집의 공간을 구성할 때 몽땅 내부만 있는 방식으로 건축하지말고, 구석구석 스펀지처럼 외부와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외부가 개입된 삶을 살자는 것이죠.
‘밖에 살자’의 반대는 ‘안에 살자’. 이것이 더 심해지만 ‘안에만 살자’가 됩니다. 근대건축은 산업혁명 이후부터 내부지향적 공간을 만드는데 몰두해왔습니다. 콘크리트와 철강 산업의 발달로 인한 100층 200층 규모의 고층건물들이 탄생했습니다. 이런 건물들은 대부분이 내부지향적 공간으로 이뤄져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거대한 내부공간을 만들어 놓고, 자연을 그 내부 안에 담아놓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외부가 그리우니 바깥으로 나가자고 합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습니다. 집 현관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사무건물에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에 올라옵니다. 한번도 내부에서 벗어나지 않아도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서 외부로 놀러 나가자고 합니다.
내부지향적 살림의 극단적인 예가 김치 냉장고입니다. 삶은 바꿔도 먹거리를 바꾸기는 어려우니 화석에너지에서 나온 전기로 쉬지 않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김치 하나 시원히 먹기 위해 화석연료를 엄청나게 태우는 겁니다.
김치를 밖에 놓으면 시원합니다. 밖에서 살아야 합니다. 밖은 여가와 유흥의 공간이 아닌, 삶과 살림의 공간이 돼야 합니다. 1평이라도 외부공간을 늘리자 이것이 저의 두 번째 건축철학입니다.
세번째는 ‘늘려 살자’입니다. 혹자는 ‘느리게’로 오해하지만 ‘길게 살자’입니다. 현대 건축의 가장 원칙적인 불문율은 ‘동선은 짧을수록 좋다’입니다. 그 예로 ‘엘리베이터에서 모든 방이 가까운 것이 났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이 원칙은 고층건물을 만들 때는 맞지만 절대 원칙은 아니죠.
하지만 우리들은 늘일 수 있는 것도 줄이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사는 주거공간에서 동선이 늘어봐야 얼마만큼 늘까요. 화장실 갈 때 1박2일 걸리겠습니까. 다만 몇 걸음을 더 걸을 뿐입니다. 현대인들은 비만과 운동부족, 게으름을 탓하며 헬스 및 다이어트 등을 일부러 찾아하면서 정작 삶의 방식은 편리함만을 추구합니다. ‘편하게 살자’ 안의 탐욕이 모든 화를 부릅니다.
#작가에게 직접 묻다
-건축가는 건축의 전문가입니다. 전문성을 요하는 건축의 세계는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보편성의 측면에서 건축과 건축가는 무었입니까?
건축은 의식주에서 주(住)에 해당하는 삶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식에 비유하자면, 매일 밥을 하는 사람은 요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먹는 사람도 마찮가지죠. 사실 매일 하는 제일 중요한 요리임에도 요란하고, 화려하게 무언가 하는 것을 요리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건축으로 돌아오면, 화려하고 거창한 것만이 건축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방 한 칸, 작은 공간 하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바로 건축이죠.
건축가는 전문성을 요하지만 보편성을 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보편성이야말로 사람을 위한 건축의 본질입니다. 부처님은 특수한 상황에서 특수한 방법 맞추는 설법, 즉 대기설법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설법 자체가 특수한 것은 아니라 방편이 특수한 것입니다. 상황의 특수성보다 본질적인 보편적 가치가 상위에 있습니다.
-선생님이 설계한 건축물들이 예리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주변 환경과 조화를 얘기하시면서 초기 건축 작품들은 각이 살아있는데 왜 그렇습니까?
스텐레스로 만들어진 구는 완벽한 구의 입체지만 차가워 보이고, 스펀지로 만든 사각형이 부드러워 보이듯이, 형태가 무엇을 제약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품들이 직선 구성된 이유는 주재료인 나무기둥을 그대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초가집은 이엉을 써서 둥글게 생겼습니다. 콘크리트는 각지게 네모나죠. 그 이면에는 물의 하중을 견디고, 재료와 기술이 연계된 고도의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철근, 나무로 둥근 건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디자인 욕구가 너무 반영된 인위적 건축입니다. 건축은 경제적 요소와 미적요소 등 다양한 요소들이 고려됩니다. 일부분에 집착하지 않고 조화시켜 생활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형속을 걷다>는 제 생각의 일부입니다. 저는 제 후배들이나 선배 건축가들이 이런 책을 쓸 필요조차 없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불편하게 살고, 밖에 살고, 늘려 삽시다.”
정리=노덕현 기자 dhavala@buddhapia.com
이일훈 약력
1978년 한양대 건축과 졸업.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대우교수 역임.
건축스튜디오 ‘후리’ 대표.
서울시 건축상, 크리악어워드 등 다수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