次有師言 臍下一村名憂陀那 此云丹田 若能止心守此不散 經久卽多有所治 有師言 常止心足下 莫間行住寢臥 卽能治病 所以者何 人以四大不調 故多諸疾患 此由心識上緣 故令四大不調 若安心在下 四大自然調適 衆病除矣
지 수행을 통해서 병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배꼽에서 한 치 아래를 ‘우타나’라고 하는데, 이는 단전을 말한다. 어린아이가 처음 태어날 때 달고 나오는 것을 탯줄이라고 하고 탯줄이 끊어진 곳을 배꼽이라고 한다.
단전이란 내단(內丹)을 수련하는 곳이다. 의서인 황정외경경(黃庭外景經)에서는 “단전가운데 정기가 은미하다”라고 하였다.
일설에는 단전이 세 군데라고 한다. 배꼽아래를 하단전이라고 하고, 심장아래 있는 것을 중단전이라고 하고, 양쪽 어깨사이에 있는 것을 상단전이라고 한다.
지금 밝히고 있는 것 셋 가운데 배꼽아래 있는 하단전이다.
수행자가 하단전에 마음을 집중하여 흩어지지 않도록 하여 오랜 시간 지나면 병이 치료되는 경우가 많다. 단전은 바로 기해혈(氣海穴)인데, 이 혈은 만병을 소멸할 수 있다. 만일 여기에 마음을 집중한다면 호흡이 조화롭게 이루어진다. 때문에 병이 나을 수 있는 것이다.
수행인이 알아야 할 것은 단전만 지켜도 병이 나을 뿐만 아니라 배꼽에 의식을 집중해도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두고 옛날 큰스님은 말씀하기를 “마음을 배꼽에 집중한 뒤에 눈을 감고 입과 치아를 합하고 혀끝은 윗잇몸을 떠받쳐 기운이 조화롭게 해야만 한다. 만일 마음이 밖으로 달리면 거두어 되돌리고, 생각을 해도 배꼽이 보이지 않으면 다시 그 모습을 자세히 살피고 의식을 집중하면 치료하지 못할 병이 없다”라고 하였다.
외도에게도 이 같은 수련법이 있기는 하지만 단지 그들은 이 경지를 최고의 깨달음이라고 집착을 하는데, 그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또 어떤 스님은 “항상 마음을 발바닥에 집중을 하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모든 병환은 사대가 조화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사대가 조화되지 않는 것은 마음이 위로 들뜨기 때문인데, 만일 마음이 아래로 내려가면 음식이 소화되고 오장육부가 순조롭게 돌아가면서 사대 역시 조화를 이루게 된다.
옛날에 나이 구십이 넘은 어떤 늙은이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에게 장수하는 비결을 물었더니 “나에게는 특별한 비결은 없고 매일 잠이 들기 전에 발을 씻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단지 발만 씻어도 병이 낫는데 마음을 발바닥에 집중한다면 이는 가장 훌륭한 치료법이 될 것이다.
발바닥이란 의서에서 말하는 용천혈(湧川穴)을 말한다. 이 치료법은 병을 치료하는데 많은 이익이 있으므로 수행인은 항상 이 법을 사용해야만 한다.
有師言 但知諸法空無所有 不取病相 寂然止住 多有所治 所以者何 由心憶想鼓作四大 故有病生 息心和悅 衆病卽差 故淨名經云 何爲病本 所謂攀緣 云何斷攀緣 謂心無所得 如是種種說 用止治病之相非一 故知善修止法 能治衆病
어떤 스님은 말하기를 “제법은 공적하여 실제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서 병의 모습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고요하게 정지하면 병이 낫는 경우가 많다”라고 하였다. 우리의 마음은 지수화풍 사대를 고무시키기 때문에 병이 일어나므로 마음을 쉬어 사대를 화기롭고 기쁘게 한다면 모든 병환이 바로 낫게 된다.
정명경(유마경)에서는 말하기를 “무엇이 병의 근원인가. 이른바 밖으로 분별하고 치구하는 반연심이다. 어떻게 반연심을 끊어야 하는가. 마음에 얻었다는 소득심이 없어야만 한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갖가지 말씀을 살펴보면 지 수행으로서 병을 다스리는 모습은 한결같지가 않다. 그러므로 지 수행을 훌륭하게 하면 많은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수행인이 도학을 강론하고 불법을 선양하는데 있어서 세간의학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생사를 해탈하고 불과를 증득하려면 반드시 허깨비로 있는 사대를 의지해서 수행을 해야만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다.
만일 이 몸이 없다면 도를 닦을 수 없다. 이를 두고 거짓을 빌려서 진실을 닦는 것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반드시 사대가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
가령 사대가운데 일대만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해도 백 한 가지 병이 일어나는데 사대 모두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어떻게 수행을 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옛사람은 말하기를 “마음이 편안해야 도가 융성해진다”라고 하였는데, 만일 몸에 병이 있어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다면 도를 어떻게 성취할 수 있겠는가.
수행인이라면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대략적으로나마 알아야만 하고 그것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어떤 스님은 말하기를 “단지 모든 법은 공적하여 실제로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존재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허깨비라는 것을 명료하게 알아야만 한다. 일체 제법은 법마다 실제하는 모습이라고는 없다. 때문에 이와 같이 고요하게 마음을 머물고 안주하여 병의 모습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병이 치료되는 경우가 많다.
이 몸은 실제가 아닌 허망한 허깨비의 모습인데 무엇 때문에 집착을 하겠는가. 단지 고요하고 담담하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가운데 안주해야만 할 것이다.
영가(永嘉)스님은 말하기를 “사대를 놓아버리고 적멸한 성품가운데서 임의로 마시고 먹는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이 의미에 해당된다.
무엇이 병의 근원인가. 그것은 이른바 밖으로 치구하는 반연심이다. 반연심이란 집착 때문에 있게 된다. 반연심 때문에 소득심이 있고 소득심이 있으면 병이 있게 된다. 수행인이 소득심이 없는 무심의 경지를 구하려면 반드시 반연심을 끊어야 하며 반연심을 끊으려면 집착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떻게 반연심을 끊어야 하는가. 이는 마음의 소득심을 없애면 된다.
혜가(慧可)대사께서는 달마대사에게 말하기를 “마음을 찾아보았으나 끝내 얻지를 못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반연심이 끊어진 경우이다.
또 능엄경에서는 “내 외 중간 그 어느 곳에도 마음으로 집착하는 바가 없어야만 한다”라고 했는데, 이러한 말씀들이 반연심을 끊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는 속담에서 말하는 “가죽이 존재하지 않은데 털이 어디에 붙겠는가”라고 하는 것에 해당된다.
이것이 지 수행으로서 병을 다스리는 근본방법이다. 따라서 지 수행을 훌륭하게 한다면 모든 병을 다스릴 수 있다.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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