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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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의 시대는 이제 그만
이 우 상
소설가

부끄러운, 익명의 추억이 하나 있다. 예비군 훈련을 받던 시절이었다. 예비군복이란 유니폼은 괴력을 발휘한다. 그것을 입고 무리 속에 섞이면 객기와 투정, 오만과 방자가 발휘된다. 현역병 시절의 분노와 억하심정이 창처럼 솟구친다. 그래서 일부러 훈련장 질서를 뭉개고 교관을 희롱한다. 동조하는 동지들이 수두룩하다. 익숙하지 않은 쌍소리도 거침없이 나온다. 어지간히 심술을 부려도 결코 구타할 수 없고 영창도 못 보낸다는 걸 안다. 솜털 보송보송한 조교들만 발을 동동 구른다. 내 속에 그런 악마성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만용을 부려대곤 했다. 유니폼 속에, 무리 속에, 익명 속에서 누리는 쾌락이었다.
바야흐로 익명의 창과 송곳이 창궐하는 시대다. 인터넷이란 무한바다에 표현의 자유란 갑옷을 입은 창기병들이 넘쳐난다. 마구잡이로 던지는 돌에 누가 맞아 머리통이 깨지든 다리가 부러지든 혹은 목숨을 잃든 알 바 아니다. 심심해서 내지른 창질에 누군가의 가슴팎에 벌건 피가 흘러도 알 바 아니다.
작은 송곳으로 콕콕 찔러보았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가 나타나고 박수치는 무리들이 우르르 몰려오니 신명이 난다. 우쭐해진다. 어흠! 어느 순간 황제가 된 기분이 든다. 선거유세 한번 하지 않았는데 ‘ㅇㅇ대통령’이라 부르는 백성들이 생겼다. 통반장 한번 해본 일이 없는데 단숨에 대통령이라니, 기분 째진다.
부처님께서 이르시길, 인간은 태어나면서 입안에 도끼를 물고 나온다고 했다. 섬뜩한 경고이다. 인터넷의 바다에는 도끼가 난무한다. 정보의 창고라는 순기능보다 악성 루머, 악성 댓글이 사회문제가 되었다. 인터넷진흥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의견이나 논리를 제시하기보다 단순한 욕설과 협박으로 일관하는 악플이 전체의 14.3%를 차지했다. 0.1%의 누리꾼이 댓글의 30%를 도배했다.
정신질환자라고 해도 좋을 골방백수들이 악성루머, 악성댓글의 주생산자이다. 어느 악플꾼은 하루 23개 꼴로 75일간 1755개의 악플을 생산했다. 긍정보다는 부정, 포지티브보다는 네가티브가 더 매혹적이다. 우리 속에 있는 악마는 생명력이 끈질기다. 부정적 글과 댓글에 누리꾼이 더 몰린다. 그것은 어느 순간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왜곡된 여론=영향력이란 원리가 작동된다.
이러한 구조와 심리현상은 고쳐지고 치유되어야 한다. 이것은 대결과 질타, 역공격과 문책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악마성에 반발심이란 기름을 부으면 대형화재가 된다. 무차별 공격, 묻지마 살인도 이런 심리와 무관하지 않다.
골방백수와 비뚤어진 심성의 소유자들을 태양에너지가 풍성한 세상 속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 땀 흘릴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바람소리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연의 품이 가까이 있음을 알게 해야 한다.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짧게는 한 달이면 족하다. 망가지면 반사회적 존재가 된다. 친구 P는 잘나가던 증권회사 지점장이었다. 사건이 터져 그는 잠적한 지 한 달만에 노숙자가 되었고 지금은 연락두절이다. 가정이 해체된 것은 물론이다.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기로 되어있던 ‘미네르바’는 결국 구속되었다. 바라건데, 곤장 몇 대 세게 치고 각서 받고 내보냈으면 좋겠다. 그의 재능을 사회에 유익하게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유능한 해커들이 해킹방지시스템을 구축하는 역군이 되고 있는 것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은 참으로 묵묵하고 은은하다.

“남의 허물은 보기 쉬워도/ 자기 허물은 보기 어렵다/ 남의 허물은 겨처럼 까불어 흩어버리면서/ 자기 허물은 투전꾼이 나쁜 패를 감추듯 한다.” <법구경>

“쇠에서 생긴 녹이/ 쇠에서 나서 쇠를 먹어 들어가듯/ 방종한 자는 자기 행위 때문에/ 스스로 지옥으로 걸어간다.” <법구경>
200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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