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수유중앙시장
가게마다 흰 김이 피어오르고
묽은 죽을 마시다 보았지, 김밥을 말다가
문득 김발에 묻은 밥알을 떼어 먹는 여자
끈적이는 생애의 죽간(竹簡)과
그 위에 찍힌 밥알 같은 방점들을,
저렇게 작은 뗏목이 싣고 나르는 어떤 가계(家系)를
한 모금 죽을 마시며 보았지
시큼한 단무지 시금치며
색색의 야채들을 밥알의 끈기로 붙들어놓고
붓꽃 같은 손이 열릴 때마다 필사되는
검은 두루마리, 이제는 하나가 된
그 단단한 밥알 속에서 피어 오르는
삼색의 꽃들을
장만호/ 시집 <무서운 속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