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니 그대로 여여하구나!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부처가 된다 안 된다를떠나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
근본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지금 중세계에서 바로 이런 공부를 해서
공부에 종지부를
찍는다면
그냥 세세생생입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여러분이 살아나가면서 밖에서 다가오고 안에서 일어나고 하는 모든 것을 내가 어떻게 이루 말로 다 합니까? 그러니까 남이 해 주는 게 없어요. 남이 대신 살아 주면서 대치를 합니까, 어떡합니까? 그러니까 여러분이 살고 있는 거 아닙니까? 누가 아무리 친절하다고 그러더라도 똥 누는 거 대신 눠 줄 수도 없고, 먹는 것도 그렇고, 또 죽는 것도 그렇고, 아픈 것도 그렇고, 자는 것도 그렇고 대신 해 줄 놈이 없어요. 그러니까 자기가 애틋하고, 자기가 행하고, 자기가 괴로운 거를 그냥 ‘거기서 또 나오는구나! 하하, 나 공부시키느라고 참 잘 나온다. 이렇게 괴롭게 하지 마라. 내일은 생각지도 않아. 그저 오늘 모든 걸…. 너를 믿으니까. 다 네 몸이니까. 그리고 네가 끌고 다니니까. 네가 형성시켰으니까.’ 하고 그 모든 걸 거기다가 입력해서 믿고 놓는 거죠.
그런데 대치를 해서 바꿔 놔야만이 바꿔져서 나오지, ‘너 할 대로 해라’ 하고 그냥 놓으면 아무것도 입력되는 게 없어요. ‘너 할 대로 해라’ 그것만 입력이 되는 거죠. 음식을 하더라도 양념이 제대로 들어가고 간이 맞아야 되죠. 간이 맞지 않으면 덤덤하고 맛이 없죠, 똑같은 거라도. 그래서 사람들이 태어나도 간이 맞게 태어나야 된다 이런 거죠. 인생이 간이 맞게 태어나면 간이 맞게 살거든요. 넘치지도 않고 줄지도 않고 말입니다.
난 그래서요, 옷 한 가지가 더 들어오면 거북해요. 거북한 것도 사실 알고 보면 그것도 착이죠. 그러나 번뇌가 바로 부처님 법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나가는 데 번뇌 아닌 것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생각하는 거, 잘한다 못한다 하는 것도 전부가 번뇌입니다. 번뇌라고 이름을 했기 때문에 번뇌지, 그것이 도를 이루어 나가는 도법에 속하는 거죠. 그러니까 그대로 그 도리를 알아서만 한다면 여여하게, 그냥 참 가지런히 살 수 있다는 얘기죠. 그리고 우리가 지금 중세계에서 한번 이런 공부를 해서 공부에 종지부를 찍는다면 그냥 세세생생입니다. 그래서 ‘한 생 좀 어려우면 어떻고 한 생 좀 고달프면 어떠냐?’ 하는 거죠. 어저께도 합창단 후원회에서 참 많이 도와주시고, 그런 계기를 마련해 주신 거에 대해서 ‘참, 고맙구나.’ 하면서 생각한 겁니다. ‘아하, 좀 고달프면 어떠냐. 더불어 같이 고달팠지 여러분만 고달프라고 한 거는 아니잖느냐.’
자나 깨나 나도 여러분 못지않게 하고 있어요. 편안하게 사는 사람 아닙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리만큼 말입니다. 그건 눈물이 아니라 뼛속에서는 피가 흐를 겁니다, 아마. 그러면서 그것을 즐겁게 생각을 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부처가 된다 안 된다를 떠나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 근본이 아니겠느냐는 얘기죠. 그럼으로써 우리가 사람을 또 리드해 나갈 수 있는 상세계의 자유인이 된다면, 마음으로써 마음껏 건질 수 있고, 마음껏 할 수가 있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우리 세상은 좁은데 우주 세상은 넓다고 생각지도 마세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나 하세계에서 사는 것들이나 또 상세계에, 즉 말하자면 우주에서 사는 세상이나 똑같아요. 크고 작을 뿐이죠. 우리가 인구가 많아지면 줄이고, 또 늘어나면 또 줄이고 또 솎아 내고, 이렇게 하듯이 별성도 역시 그렇거든요.
지금 지구가 시공을 초월해서 돌아가듯이 우리도 지금 시공을 초월해서 돌아가는 건데, 우리가 초월해서 돌아가는 걸 모르고 살고 있는 거죠. 부처님이 “색(色)이 공(空)이고 공이 색이니 그대로 여여하구나.” 하신 것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내가 항상 듣는 거, 보는 거, 말하는 거, 만나는 거, 가고 오는 거, 자는 거 할 거 없이 뭐 전체가 다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냥 찰나찰나 바뀌어서 자꾸 돌아간다.’ 이렇게 얘기하죠. 아, 생각들 해 보세요, 안 그런가! 멍청하게 이것만 (컵을 들어 보이시며) 보고 있으면 ‘저 사람, 갓 돌았는데….’ 이럴 겁니다, 아마. 한 가지만 듣고 있는 사람 어디 보셨어요? 이 사람 만나면 이 소리 듣고, 저 사람 만나면 저 소리 듣고, 이거 보면 이렇게 생각되고, 저거 보면 저렇게 생각되고…. 아니, 고정되게 한 생각만 하고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미쳤든 성했든 말입니다. 그러니 시공을 초월해서 그대로 여여하게 돌아가는 거 아닙니까? 왜 거기에 연연하고 그렇게 애쓰고 사십니까?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리죠. “하늘이 무너져서 다 깨진다 하더라도 너만 깨지는 게 아니니 걱정하지 마라.” 하하하…. 이 모습은 세상에 한 번 죽지 두 번도 죽지 않는다. 그런데 죽는다고 해도 그게 아주 죽는 게 아니라 씨앗은 남아요. 그 씨앗이 또 심어지면 그게 또 모두를 먹이고 또 되남아요. 그런데 이 공부를 하면 그 씨앗이, 종자가 달라진다는 거죠. 보이지 않는 씨이기 때문에 달라질 수 있는 거예요. 형체가 있는 씨앗이 아니라 형체 없는 씨앗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달라질 수가 있는 겁니다. 화해서 달라질 수가 있죠. 그러니까 비행기 모습으로 물체가 보였지만 그건 물체 아닌 물체죠.
부처님께서도 그런 말씀 하신 게 생각납니다. ‘십 리 안팎으로 모든 거를 지켜 주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전에 산에서 공부할 때의 얘기죠. 먹을 걸 생각할 수도 없었죠. 그런데 그믐밤에 수풀을 깔고 앉아 있는데 “얘야, 십 리 안팎으로는 다 주둔을 하고 있고, 위에서는 다 비춰서 지켜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빵도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이러는 겁니다. 이런 것이 뭐, 한두 번이 아닙니다. 빵! 사실은 떡이라고 그랬는데 내가 지금 빵이라고 그럽니다마는, 하하하…. 그런데 미련해서 말입니다, 이 떡이 어디서 떨어지나 하고 밤새도록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대중 웃음) 아, 이거 웃을…, 아이! 지금 웃죠? 나도 그 후에 너무나 기가 막혀서 껄껄대고 하늘을 쳐다보고 웃었다니까요. 떡이 떨어질 줄 알고, 어디서 나올 줄 알고 그렇게 기다렸는데 허탕이에요. 그랬는데 말입니다, 한 가지 얘기할 게, 배가 고프질 않아요. 허기가 지는 법도 없고, 배가 고픈 일도 없고 말입니다. 참, 이건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물을 마시는데도, 내가 학자가 아니고 글을 잘 모르니까 뭘로 가르쳤느냐 하면 물 한 모금 먹는 걸로도 가르쳤어요. 몸이 다 지친 상태니까 엉금엉금 기어가서 그걸 먹는데 말입니다, 한 모금 먹고 두 모금 먹고 세 모금 먹으니까, “네가 그렇게 여러 모금 먹어도 소용없다. 한 모금을 먹어도 아홉 모금이고, 아홉 모금을 먹어도 한 모금이니라.” 이거예요. 이렇게 해서 가르쳤어요. 그러니까 고정됨이 없어서 아홉 모금이 따로 없고, 한 모금이 따로 없고, 하루가 따로 없고, 삼천 년이 따로 없다. 이 세상은 모두가 수레바퀴 돌아가듯 돌아가느니라. 그러니까 네 마음에 따라서 한 모금에도 목을 축일 수가 있고, 아홉 모금 먹어도 몸이 부증이 나고 다루어진다 이거죠. 그 뜻을 알면 한 모금을 먹어도 아홉 모금 먹은 몫이 된다 이런 뜻이고, 둘째는 삼천 년 전도 지금 현실이고, 하나도 셋이 되고 셋도 하나가 되고, 그래서 그거를 알게 되니까 삼천대천세계를 둘 아니게 알게 되더란 얘기죠.
여러분이 질문한다고 뭘 자꾸 적어 가지고 나오시기도 하고 그러는데 난 이렇게 생각해요. 자기가 그냥 평소대로 살아가다가 지금 이 자리에서 문득 생각나서 ‘아, 요런 건 좀 모르겠는데, 이게 뭘까?’ 할 때, 질문을 허심탄회하게 그냥 하면 되는 거니까요. 그게 무슨 어려운 것도 아니에요. 살아가면서 자기 형제들한테 “형! 이거 이런데 이게 뭐야?”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높은 것도 아니고 여러분이 얕은 것도 아니고, 여러분이 높은 것도 아니고 내가 얕은 것도 아니에요. 평등한 가운데에서, 단지 내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먼저 다녀왔고 여러분은 안 갔다 왔기 때문에, 내 경험에 의해서 이렇게 가면 갔다 올 수 있다 하는 것을 말할 뿐이에요. 자유스럽게 과거를 드나들고, 과거로 갈 수도 있고, 미래로 갈 수도 있고, 현실로 올 수도 있고, 마음대로 할 수 있죠.
또 이 도리를 알면, 바른 대로 얘기하는 거지만, 이 몸 하나가 그대로 있는 게 아니에요. 그대로 하나로 보이기도 하는데요, 그 몸 하나가 수천 수만으로 늘어나서, 즉 입자로 화해 가지고 딴 모습으로 자꾸 행동을 하게 되죠. 지장도 되고 뭐, 관세음도 되고 여러 가지로 다 나투니까 부처님이 말씀해 놓으신 그대로죠. 그래서 ‘만불(萬佛)이다 하더라도 일불(一佛)이다’ 이렇게 말을 하는 거죠. 진리가 두 개, 세 개가 되는 게 아니니까요. 어디서든 똑같이 그 공부를 했다면 똑같아지는 거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무엇을 따지고 그러는데, 이게 따지게 되면 벌써 그르게 돌아가는 거죠. ‘돈오(頓悟)다. 돈오가 옳다. 금방 그냥 깨치는 거다.’ 이런 게 문제가 아니에요. 애를 낳아 놓으면 금방 어른이 돼서 사회에 나갑니까? 그건 언어도단이죠. 그래서 점수(漸修)를 넣은 겁니다. 그런데 이 점수와 돈오가 어떻게 둘이냐는 얘기죠. 그럼 여러분이 지금 그 정신계, 영원한 자기의 정신이 없다면 자긴 송장이 될 텐데 어떻게 그게 둘입니까? 그와 같은 거죠. 병원에 가서 마취하면 정신이 없어서, 다리를 잘라 내든, 구워 먹든 삶아 먹든 아무것도 모르시죠? 그런데 어떻게 자기 몸뚱이만 자기라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몸뚱이 속에 생명들이 무수하게 들어 있는데 그거는 자기 과거를 알고 인정하라고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속에 천차만별로 모습이 돼 있거든요. 그러면 자기가 미생물에서부터 인간이 되어 온 그 자체의 모습들이 다 있어요. 누구나가 똑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들을 귀하게 생각해라. 너의 생명 아닌 것이 하나도 없느니라. 지금 미생물의 모습도 네가 예전에 그렇게 해 왔던 것이니라. 그렇게 거쳐 왔느니라. 그러니 업신여기지 말고 전자의 모자랐을 때 나로 보라. 내 생명같이 보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오분향만 잘 알면 오계를 받은 뜻이 그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오분향을 알면 오계는 다 그냥 저절로 되는 거니까. 나는 오계를 여러분한테 전할 때 좀 달리 했죠. 원래는 술 먹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간통하지 마라, 살생하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이렇게 ‘하지 마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난 하나같이 그랬거든요. 네 생명같이 생각해라, 또 거짓말을 하더라도 남을 이익하게 하는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이렇게요. 술을 먹어도 식구들 괴롭게 하지 말고 내가 괴롭지 않게, 망주로 하지 말고 약주로 해라 하고요.
그리고 남을 안팎으로 어렵게 만들고, 죽을 때까지 이미지를 흐리게 해 놓고 가면 자식들까지도 언짢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부부로 맺어졌으면 잘났든 못났든 서로 사랑하라, 서로 화목해라. 서로 그저 요 모습으로 요 한 생 살 거를 그 뭐, 천년만년 살 거라고 그러느냐? 그 한 생, 예쁜 거 미운 거 좀 놓고, 그저 어차피 만났으니 인연이다 하고 그냥 살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만들어 놓으면 얼마나 귀찮아요? 생각해 보세요. 다 이렇게 털고 살 거를 오히려 하나를 더 붙여 가지고는 고생을 죽도록 하는 거예요, 그냥! 그리고 끝까지 그냥, 자식까지도 그렇게 만들어요, 이게. 그게 물이 들거든요. 그러니 자기가 죽을 때까지 그 이미지를 그렇게 남겨 놓고 간다면 요다음엔 뭐가 또 좋겠습니까? 또 자기가 그 지경을 당해야 할 테니 그것 참 문제가 크죠. 그게 일심이 천심이라고 안 그랬습니까? 내가 예전에 그 얘기 했죠.
마부가 당나귀에게 얼마나 심하게 굴었던지 맞은 당나귀는 남편이 되고 때린 마부는 아내가 됐어요. 그래 가지고 그냥 술 한 잔 먹었다 하면 마부가 당나귀 때리듯, “야!” 하곤 들어와서 아무거나 집어서 팽개치고, 치고 박고 이러니 멍들은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죠. 아! 그렇게 자기 한 대로 받는데, 이거는 지금 같으면 뭐 이혼했죠. 그러나 예전에는 이혼도 못하고 그렇게 살다가, 스님이 지나가시는 걸 보고 “이렇게 살아서 뭐 합니까? 이렇게 하면서도 살아야 합니까?” 하고 그냥 대성통곡을 하고 우니까 “그건 인과응보니라. 네가 전자에 마부로서 얼마나 그 사람을 때렸느냐? 네 남편이 바로 그 당나귀였고, 그 당나귀를 때린 네가 바로 그 아내가 됐느니라. 그렇게 해서 받는 것을 내 어찌 하겠느냐마는 이제 마음을 고쳤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돗자리를 쫙 말아서 꼭 매 가지고선, 술에 취해 들어왔을 때 손쉽게 집어 가지고 때릴 수 있게끔 해 놔라. 그런다면 돗자리 엮은 줄기마다 몽둥이가 되니까 그 마부가 당나귀를 때린 그 수효를 곧 채울 수 있게 되느니라.” 그래서 정말 돗자리를 그렇게 만들어서 놔두었더니 한 이틀인가 사흘, 아, 그걸 그냥 집어서 치고 치고 그러더니만 어느 날은 술을 먹고 들어오더니 떡 하는 소리가, “내가 오늘 왜 이렇게 술을 먹었지?” 하면서 “그런데 자네를 내가 왜 그렇게 때렸지? 이상하게, 그 약한 몸을 내가 왜 그렇게 때렸지?” 하면서 그렇게 울더랍니다, 인생을 한탄하고. 그러더니만 그날부터 싹 없어졌답니다.
그러니까 그것도 억지로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때는 내가 그래요. “야! 당신 남편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야! 속의 업식들이 자꾸 충동질을 해서 그렇게 되는 거지, 당신 남편은 참 착해.” 허허허…, 그러죠. 그러니까 그 업식을 제거하기 위해서 자꾸 관(觀)하고, 남편도 관하게끔 자꾸 좀 관해라. 관하는 데 돈이 드니 못하느냐, 재산이 없어져서 못하느냐? 자기 나무가 자기 뿌리를 믿지 누굴 믿느냐 이거야, 지금. 이 세상에 어디를 믿을 데가 있어? 그런데도 왜 안 믿느냐? 그러니까 관하라고 해라. 그러면 그게 다 없어지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고, 새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돌보게 될 것이다. 이런 말이죠.
할 말은 많은데요, 만날 이렇게 여러분한테 말씀 들려 드리다 보면 반갑고 즐겁고 이런 것이 딱 하나 있어요. 여러분이 춥거나 덥거나 그걸 가리지 않고, 아무렇게나 생긴 조막댕이만한 이 모습을 싫다고 안 하고, 얕보지도 않고, 그다지 높이 보지도 않고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그 여러분의 마음이 좋을 뿐이에요. 내가 누구한테든지 떳떳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요, 내 모습만 가지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한번 그렇게 뛰어넘어 보세요. 그러면 내 뜻을 다 아실 겁니다. 왜 내가 이렇게 안달복달을 하고 그러는지를요.
옛날에 어떤 사람이 그럽디다. 그 사람 지금은 외국에 가서 잘 살고 있지만요. “스님, 스님!” “왜 그래?” “글쎄 꿈에요, 천야만야한 데를 그냥 발을 떼어 놓으래요. 그냥 뛰래요.” 그런데 그 아래를 내려다보니까 길은 두 갈래로 있는데 해골이 그냥 뭐 막 널려 있더랍니다. 그런데 그 천야만야한 데를 그냥 뛰어 내리라고 그러지 않아요? 그래서 “네가 죽는다고 생각을 하걸랑은 뛰지 말고 네가 산다고 생각을 하걸랑은 뛰어라.” 했더니, “뛰어라! 뛰어라!” 하더랍니다, 내가요. 그래서 에이, 눈을 꽉 감고 그냥 다리를 턱 떼어 놓으니까, 발이 끈적끈적한 무엇에 묻은 것처럼 착 붙더랍니다. 그래서 그냥 착 붙어서 내려가니까 그냥 내려가지더라는 거예요. 내려가서 보니까 두 갈래로 길이 있는데 한 길은 아주 험한데 지름길이라고 하고, 한 길은 아주 가기 좋더랍니다.
그래서 지름길이라니까 험한 데로 들어섰대요. 무엇이 그렇게 급한지 아이구, 그냥 시간이 급하니까 그냥 간다고 가다가 해골바가지가 쭉들 늘어서 있는 곳에 당도를 했는데, ‘죽든지 살든지 에이, 그까짓 놈의 거, 이 세상에서 살면 뭘 하고 죽으면 뭘 하느냐.’ 하고 그냥 하염없이 가다 보니까, 이상하게 왕이 사는 큰 대궐 같은 데가 턱 나오는데, 보니까 “아무개 왔느냐?” 그러더래요. 그래서 보니까, 머리카락 한 가닥을 요렇게 들고는 “이게 네 머리카락이니라.” 그러면서 “요 머리카락 하나에 네 인생 전체가 달려 있느니라.” 그러더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머리카락을 쥐고선 “아무개지?” 하고선 이름을 부르는데 자기 이름이더라는 거죠. 그런데 “죽거나 살거나 그저 길을 인도해 주셔서 이렇게 왔습니다.” 하고 말하는데 아, 그냥 별안간에 내가 나타나더라는 거죠.
그 아래가 큰 바다로 그냥 화했는데, 그 바다 가운데서 왕관을 쓰고, 법륜 마크가 그냥 번쩍번쩍번쩍 금으로 됐는데 거기서 나와서는 “너무 상심 말고 떳떳하고 여여하게 살라. 너는 부처님께서 인정을 했느니라.” 그러더라는 거예요. 그래 그런 꿈을 꾸었다고 그러기에 그랬죠. “그런 꿈 꿨다고 자만하지 마라. 하하하…. 올라가다 떨어져.” 그랬더니 그저 항상 든든하게만 가지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까 사는 데에 어떤 것도 그다지 지장이 없고, 자기에게 어떤 게 닥쳐도 공부로 생각을 하니까 그냥 금방 돌아가고 돌아가고, 한 찰나에 돌아가고 돌아가고 그러더라는 거죠. 그러면서 참 잘 살고, 4개국 말을 하면서, 또 외국으로 간다고 합디다마는 하여튼, 요점은 자기를 자기가 우습게보지 말라는 얘기죠. 자기가 자기를 우습게 보지도 말고, 또 높이지도 말고, 아주 그냥 중심에 심봉을 꽂고, 아까 오분향 얘기했듯이 그렇게 다지고 나간다면 그건 뭐 100% 성공이다라는 얘기죠.
아, 재미있는 얘기도 못해 드리고, 만날 만나면 이런 얘기만 해서 죄송합니다만 어쩔 수 있나요?요다음에 또 다시 만날 텐데…. (대중 스님들을 보시며) 그리고 참, 뭔 얘기를 하라고 그랬지? (대중 스님들 중 ‘연예인 불자 법당’이라고 대답함) 응! 불교방송국에, 참, 그 여러분한테 거둬서 하기가 너무나…. 여러분 괴로움이 내 괴로움이고 그러니까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이 조금조금 용돈 쓰라고 주기도 하고 이러는 걸 모아서 갖다가 줬어요. 저는 요만한 거 하나도, 가슴 아프게 벌어서 가져오는 거 조금도 허탈히 쓰는 법 없습니다.
그랬는데 또 부산에서도 도왔답니다. 그런데 또 지난번에도 도와 달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제 지원 스님네들이 알아서 단돈 10만 원씩이라도 모아서 하기로 했죠. 또 지금 동국대학교에서는 병원도 그렇고 탑지도 그렇고 운영을 해 나가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하시는데, 그거는 내가 법회를 해서 도와드릴 처지도 못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거는 그냥 우리 스님네들이 주머니를 다 털어서라도 모아서 하기로 하고, 난 얘기를 다 해야 재밌을 것 같아서요.
그랬는데 또 정신대 노인분들의 집을 짓는데 도와 달라고 자꾸 요청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탤런트 되시는 분들이 연예인 불자 법당을 짓는다고 하면서 한마음선원이 어딘데, 한마음선원이 이런 거를 안 하면 어떡하느냐고 이 한마음선원이 아주 큰 부자나 되는 것처럼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다른 데서는 또 “이 집을 못 짓는 거 보니까, 아주 쫄딱 망해 가는구나.” 하하하…, (대중 웃음) 이러기도 하거든요. 어쨌거나 우리는 누가 어떤 생각을 하든지 어떤 마음이든지 무슨 말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고 꿋꿋이 가지만, 그저 우리가 할 거는 해야 되겠다 이래서 그러는 거죠.
안양회관에서 1월 셋째 주에 법회 할 때…, (사무장님이 ‘소년소녀 가장돕기’라고 말을 함) 아니요, 그건 못하죠. 지금 앞에 닥친 게 이렇게 많은데 어떡합니까? (대중 웃음) 저 연예인 불자법당 짓는 데 하고요, 또 정신대 분들 집 짓는 거 하고요, 두 가지를 가지고 해야 돼요. 아, 그럼 어떡합니까. 내가 가지고 있기만 하다면 그냥 턱턱 내주고 말아 버리겠지만 그래도, 힘 닿는 대로는 해야죠. 어떡합니까?
그러니 이리 끼우고 저리 끼우고, 이리 끼우고 저리 끼우고 참, 그거 심부름꾼 노릇 하기도 참 힘드는데요, 힘든다고 생각 안 해요. 그것도 그렇고, 어저께도 보니까 여러분이 추울 때도 더울 때도 그냥 저 바깥에 서서 듣고 그러는 걸 보니까요, “참, 저 양반들이 부처지 너희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랬죠. “저렇게, 저런 부처님들이 세상에 어디 계시냐?” 이러고요. 그러면 너무나 흐뭇해서요, 괴롭고 뭐, 분잡하고 그런 것도 모르겠어요. 하여튼 감사합니다. (합장하시며) 나 하고 싶은 말 다 했는데요. 하하하….
※위 법문은 1995년 12월 3일 국내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