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징 자
칼럼니스트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의 연말은 지금 유쾌한 모습이 아니다.
‘거품’이라는 단어가 생활 전면에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꿈과 같고, 허깨비 같고, 거품 같고, 그림자 같은’ 인생을 실감하는 것일까?
그런 거품 가운데서도 실소를 자아내는 이야기가 있다.
금융위기 여파로 자산이 쪼그라든 전 세계 억만장자들이 비용절감 차원에서 숨겨둔 애인을 정리하고 있다는 조사내용이다.
조사결과 억만장자 대부분은 숨겨둔 애인이 있는데 이 가운데 70%가 애인의 생활비 지원을 줄였으며 12%는 재정상태를 이유로 관계청산을 고려하고 있다 한다. 남성 억만장자의 경우다.
한편 여성 억만장자의 경우 절반 이상이 애인에게 쓰는 비용을 더 늘릴 것이라고 답했다는 것인데 조사에 임했던 사회학자 曰, ‘외도가 남성에게는 재산이나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이지만, 여성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위한 것으로 근심에 대한 도피처로 이용되기 때문’이란다.
어느 경우든 대표적 ‘욕망의 거품’ 하나를 본 셈이다.
동물에게도 ‘욕망의 거품’이 있을까?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인간이 오늘처럼 인간답게 진화해 올 수 있었던 것으로 여러 가지가 거론되고 있지만 그 가운데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이 좀 더 그럴듯해 보인다.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 인간은 그 반응에서 다른 동물에 비해 그다지 빠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동물들 뇌는 외부자극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인간의 뇌는 약간 느린 반응을 보인다. 아니 반응을 지연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반응을 지연시킬 수 있는 능력, 그 능력으로 하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왔고, 인간의 역사와 사회를 그리고 문명과 과학 문화 철학 종교를 만들어 왔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지연’이라는 틈새에 생각이 있다고 믿는다면 이런 주장이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 틈새에서 생각이 진화해 왔다고 보아야 할까?
즉각적인 반응. 인간의 삶에서 그 전광석화 같은 재빠름이 필요한 경우는 많다. 그러나 재삼재사 숙고해야 할 일도 많으며, 특히 생각의 깊이에 따라 인간의 정신세계가 형성돼 왔을 것이다.
‘한번 사색에 빠져들면 더욱 깊은 사색에 빠져들고 이처럼 반복되는 사색으로 해서 우주론이 탄생한다.’는 천문학자들의 믿음에도 그런 생각의 힘을 엿볼 수 있다.
방울뱀이 적외선으로 우주를 감지한다지만 인간처럼 우주를 읽어내려 하지 않는다.
무한 우주를 보이지 않는 미세 세계의 ‘초 끈 이론’으로 풀어내는 인간의 사색과 연구 성과를 보라.
초강력 현미경이 있어 미세한 소립자 규모의 세계를 들여다본다면 보이는 것은 수백 가지의 점 입자가 아니라 단 하나의 진동하는 ‘끈’이라는 사실. ‘그 끈의 진동패턴에 따라 입자의 종류가 달라지며 우주는 이 끈이 연주하는 교향곡’이라는 과학적 추론은 깊은 명상 속에서 우주를 체득하는 종교의 경지에 근접하고 있다. ‘티끌 하나마다가 우주를 품고 있다는….’
생각이 올바로 흐를 경우 인간은 이처럼 우주의 신비를 얻을 수도 있고, 올바로 흐르지 못할 경우 ‘욕망의 거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인터넷 혁명이라고들 한다. 인터넷 세계를 구성하는 인터넷 인류들, 지난 한해 그 네티즌들이 보여 준 사회적 여러 문제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들에서 우리는 생각의 깊이를 발견할 수 없다. 동물에 없는 ‘반응의 지연 능력’을 포기하는 것일까?
이는 연말의 화두가 되고 있는 경기침체에 대한 반응에서도 보인다.
‘생각’에 깊이를 더해 보면 우리에게는 잘못 길든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인간적인 품위에 대해서도 성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