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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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각지마사(覺知魔事) ⑤ 끝
復次 若見魔境不謝 不須生憂 若見滅謝 亦勿生喜 所以者何 未曾有人坐禪 見魔化作虎狼來食人 亦未曾見魔化作男女來爲夫婦 當其幻化 愚人不了 心生驚怖 及起貪著 因是心亂 失定發狂 自致其患 皆是行人無智受患 非魔所爲 若諸魔境惱亂行人 或經年月不去 但當端心正念堅固 不惜身命 莫懷憂懼 當誦大乘方等諸經治魔呪 默念誦之 存念三寶 若出禪定 亦當誦呪自防 懺悔愧 急誦波羅提木叉 邪不干正 久久自滅 魔事衆多 說不可盡 善須識之
다음으로는 마군경계가 사라지지 않은 것을 본다 해도 근심할 필요가 없으며 마군경계가 사라지는 것을 본다 해도 역시 기뻐할 일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밝히고 있다. 왜냐하면 좌선을 하면서 마군이 호랑이로 변화하여 실제로 사람을 잡아먹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또한 마군이 남녀로 변화하여 정말로 부부가 되는 일도 지금껏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허깨비의 변화인 마군에 대해 어리석은 사람은 그 실재를 모르고 무서운 경계에선 마음에 공포를 일으키기도 하고, 사랑스런 곳에선 탐욕의 집착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처럼 마음이 혼란하기 때문에 선정을 잃고 미친 마음이 발동하여 스스로 환란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은 수행인이 지혜가 없어 스스로 환란을 일으키는 것이지 내 마음밖에 마군이 따로 있어 외부에서 찾아와서 생기는 일은 아니다.
모든 마군경계가 수행인을 뇌란시키면서 한달 한해가 지나도록 떠나지 않으면 단정한 마음으로 올바른 생각을 견고하게 다져야하며 내 목숨을 아끼지 말고 근심과 두려운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이럴 경우 대승방등경 등 모든 경전과 마군을 다스리는 주문을 외우면서 삼보에 마음을 간직해야 한다. 또는 선정에서 나왔을 때에도 주문을 외워 마군을 방비하고 참회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하며 파라제목차의 독송을 오래토록 지속하다보면 삿된 마군이 정도를 간섭하지 못하고 스스로 소멸하게 된다.
마군의 일은 수없이 많아 이루 다 설명하기 못한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를 잘 식별해야만 한다.

대승방등경은 능엄경(楞嚴經) 유마경(維摩經) 사익경(思益經) 해탈심밀경(解脫深密經)등이며, 마군을 다스리는 주문은 능엄주(楞嚴呪) 대비주(大悲呪) 등이다.
파라제목차는 번역하면 계율이다. 이도 역시 대승계와 소승계의 구별이 있다. 수행자가 선정 속에서 마군에게 뇌란을 당할 때에 일체 계율의 모습과 삼보와 모든 대승경전을 가만히 암송하면 마군은 자연스럽게 소멸하고 삼매도 스스로 목전에 나타나게 된다.
삼보는 불법승인데, 이 세 가지는 세간에서 가장 존귀하기 때문에 보배라고 한다. 그러나 이도 주지삼보(住持三寶) 동체삼보(同體三寶) 별상삼보(別相三寶)로 나뉘어 대승삼보와 소승삼보가 동일하지 않다.

是故初心行人 必須親近善知識 爲有如此等難事 是魔入人心 能令行者心神狂亂 或喜或憂 因是成患致死 或時令得諸邪禪定 智慧 神通 陀羅尼 說法敎化 人皆信伏 後卽壤人出世善事 及破壤正法 如是等諸異非一 說不可盡 今略示其要 爲令行人於坐禪中 不妄受諸境界 取要言之 若欲遺邪歸正 當觀諸法實相 善修止觀 無邪不破 故釋論云 除諸法實相 其餘一切皆是魔事 如偈中說
若分別憶想 卽是魔羅網
不動不分別 是則爲法印
초심수행인은 반드시 선지식과 친근히 해야만 되는데, 그 이유는 이와 같은 마군의 어려운 일이 있기 때문이다.
마군은 사람 마음으로 들어가 수행자의 정신을 미치게 하여 기쁘게도 하고 근심하게도 하기 때문에 병이 나고 끝내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어떤 때는 수행인이 삿된 선정과 삿된 지혜와 삿된 신통과 삿된 다라니를 얻어 삿된 설법으로 교화시키면 사람들은 모두 그를 믿고 복종하기도 한다. 하지만 훗날에는 출세간 선한 일과 정법을 파괴한다.
이와 같은 모든 특이한 경계는 한결같지 않아서 이루다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은 간략히 요점만을 제시하여 수행인이 좌선하는 가운데 모든 경계에 망상으로 오염되지 않게 할 뿐이다.
삿된 마군을 버리고 정도로 귀의하려 할 경우 제법실상의 이치를 관찰하여 지관을 훌륭하게 닦으면 그 어떤 삿된 마군이라 할지라도 타파하지 못할 일이 없다. 따라서 석론(釋論)에서는 “제법실상을 제외한 그 밖에 일체 모든 것은 다 마군의 일이다”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실상을 떠난 밖에 따로 얻을 법이라고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게송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가령 분별하고 기억하고 상상한다면 그것이 바로 마군의 그물이며 움직이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법인(法印)이다”

여기에서는 사견에 집착한 이유와 그 과보에 대해 밝히고 있다. 초심수행인은 최초로 발심하여 지관을 수행하는 자이다. 선지식은 병을 알고 약까지 식별하여 병에 따라서 그에 알맞은 약을 주는 자이다.
다라니는 번역하면 총지(摠持)라고 하는데, 일체 선법을 지니고 흩어지거나 잃지 않는 것을 말한다. 또는 일체법을 총괄하고 한량없는 의미를 지녔다고 말하기도 하며, 선법을 잃지 않고 악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를 들으면 천 가지를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총지라고 말할 수 있다.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는 이 네 글자는 법화경의 주요골자이다. 십법계인과(十法界因果)의 법이 본래 허망한 모습을 떠나 모습마다가 모두 진실임을 말한다. 때문에 제법실상이라고 부른다.
알아야 할 것은 실상은 분별상이 없다는 뜻이라는 점이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사물을 보면 그것은 실제로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이것은 망상의 견해이다. 만일 현실적으로 눈앞에 보이는 것이 있다 해도 그 자체는 실제 있지 않는 것을 허깨비와 같은 망상의 모습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관찰한다면 차별적인 모습 그 자체에서 분별의 모습이 없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청정한 실상이다.
기신론에서는 “일체 차별적인 경계는 망상 분별 때문에 일어난다. 만일 망상분별이 없다면 일체 차별적인 경계의 모습이 없게 되는데 그 자리가 바로 여래의 평등 법신이며 이 법신을 의지해서 본각(本覺)이라고 설명한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본각은 실상의 이치이다.
따라서 우리가 여기에서 간과해서 안 될 것은 마군은 내 마음밖에 실재하는 마군이 아니고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허망한 분별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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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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