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무조건 믿고 닥치는 대로 그냥 거기 놓으세요!
남이
나를 잘해줄 것만
생각하지 말고
다 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지난 호에 이어서)
질문자1(남) 금왕지원 심천회 회원입니다. 두 가지 질문 올리기 전에 큰스님과 함께 이 자리를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 제 주인공 자리에 무한한 감사를 올립니다. 첫번째 질문은 윤회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불가에서는 죽고 난 뒤에 육도윤회를 한다고 합니다. 천상, 인간, 아귀 등 육도윤회를 한다고 하는데, 죽고 나면 육도윤회만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육도윤회라는 것도 중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방편이라는 생각이 언뜻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여섯 가지 이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명이 없다’라고 말하는 돌이나 나무, 방석 그런 무생물로도 윤회를 하는 것인지 궁금해서 큰스님께 여쭙습니다.
큰스님 내가 이 말을 묻고 싶군요. 돌이 이렇게 섰는데 말입니다, 바람에 씻기고 스쳐서 그냥 반드르르하게 쪽이 닳아 나갔어요. 그런 걸 볼 때 그거는 바꿔지지 않는 거요?
질문자1(남) 바꿔집니다.
큰스님 그렇죠? 그런데 육도윤회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 노릇 하다가 바로 자식 노릇 할 때가 윤회예요. 자식이 남편 노릇 하다가 아버지 노릇을 할 때가 바로 윤회라니까. 윤회가 별다른 거 아니에요. 살면서 윤회하는 것이, 죽어서도 살아서도 그냥 윤회예요. 그러니까 전부 윤회가 되기 때문에 윤회도 없다 이러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애기로 태어나서 젊어지고, 젊어졌다가 늙어지고 하는 것도 바로 윤회죠. 또 우리가 지금 말을 했는데 그 말은 도망가고 또 딴 말을 해야 하니까 그것도 윤회고요.
그래서 마음은 너무나 많기 때문에 마음은 없다고 하는 거죠. 너무 바꿔지고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기 때문에 윤회도 없다, 붙을 데가 없다. 반은 있고 반은 없어야 윤회라고 할 수 있지 윤회가 너무 많아서 그냥 막 돌아가는데 무슨 윤회가 거기 붙습니까? 지구가 돌아갈 때에 쉬었다가 가고 쉬었다가 가고 그럽니까? 그런다면 윤회가 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나 쉬지 않고 돌아가요. 그러니까 윤회도 없다 이런 문제예요. 이거를 고차원적으로 한번 뒤집어서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부처는 없는 것이 부처지 있는 것이 부처가 아니다.
질문자1(남) 그러면 육도윤회라는 그 가르침도 중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렇게 생각해도 맞습니까?
큰스님 그거야 학술적으로 꼭 있어야 배우는 거 같으니까 경전에도 있고 다 있죠. 없는 거 아니에요. 육도윤회니 팔정도니 육바라밀이니 다 있는 거지만 우리가 이 공부하는 데는 그런 것에 조금도 걸려서는 안 된단 얘기죠, 그런 걸로 인해서 걸리니까. 또, 걸리니까 그런 걸 하지 말라고 그러는 것도 아니에요. 육도윤회에 대해서 쓰여져 있는 것도 모두 읽어 봐서, 내가 침착하게 한번 거기다가 놓는 거예요. 책을 보는 것도 움죽거리게 하는 것도 듣게 하는 것도 만나게 하는 것도 일을 하게 하는 것도 모두가 고놈이 하는 거거든요. 자기 자성이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것이 없는 게 아니죠. 그런데 내가 나를 알고 나서야 그것이 다 해당되죠. 가르치는 데 해당된다는 얘기죠. 그래서 여러분이 이 도리를 알아 가지고 그 천차만별의 문제를 다 여러분이 해라 이거죠. 하지 마라, 해라가 없이 그대로요.
지금 여러분이 이렇게 앉아 있는 것도 행선입니다. 우리가 앉아 있으면, 좌선을 하고 있다는 걸 생각을 하게 되죠? 일어날 땐 다 했다는 생각을 하고 일어나죠? 그러니 쉬지 않고 돌아가는데도 불구하고 선(禪)은 끊어지죠? 자기 마음이 그렇게 끊어지게 만들어요.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섰든지 앉았든지, 일을 하든지 누워 잠을 자든지, 이거를 입선·좌선·행선·와선이라고 말을 하는데, 이런 것을 한데 합쳐서 모든 걸 둘 아니게, 그 행동 하나하나 하는 게 그냥 참선이 돼 버릴 때 바로 그것도 이름 해서 묵선이라고 할 수 있죠.
질문자1(남) 감사합니다. 두 번째 질문 올리겠습니다. 요즘 국가 경제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적어도 1, 2년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생을 해야 된다고 얘길 하는데 저희 한마음선원 신도분들께서는 그 국가적 위기조차도 공부의 재료, 또는 수행의 방편으로 삼아서 열심히 정진하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저희들 불자, 또는 국한시키면 한마음선원 신도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되는지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십시오.
큰스님 나는 말을 만들어서 할 줄을 모르거든요. 그것도 걱정할 게 없죠.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걱정할 게 없어요. 이태를 간다, 5년을 간다, 이렇게 해서 빚을 어떻게 갚나 이러지마는…. 자기가 하는 대로 자기를 알게 하고 깨치게 하기 위해서 부처님은 이 세상에 모두 출현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하는 대로 살게끔 돼 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의 마음이 하나도 도움을 주지 않느냐 하면 그게 아니죠. 마음이 착하고 제대로 자기와 더불어 같이 위하는 사람, 남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라고 그러는 게 아니라 더불어 같이 살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이라면 이태 동안에 될 거 1년에 되고, 1년에 될 거 석달에 되고, 이렇게도 될 수 있는 건데요, 뭐. 그런 힘이 있는 사람이면 걱정을 할 게 없다 이런 소립니다. 그런데 걱정이 되는 거를 어떻게 걱정을 안 하느냐 하는 것도 사람이 살아온 그 관습에 의해서 모두 집착을 갖는 것일 뿐이지, 자기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 같으면 그까짓 거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런 소리죠.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요.
어떤 때는 애들이 학교 다니다가 나가서 안 들어오고 그런다고 그러는데, 들어오더라도 절대로 욕하고 때리고, 또 말로 그냥 죽일 놈 살릴 놈 하고 그러지 말라고 하죠. 대신에 “어디 가서 자는데 괴롭지나 않았니? 뭐 굶고 다니지는 않았니?” 이렇게 따뜻하게 말해 주고 안으로 관(觀)해야 뿌리가 뿌리끼리 통하는 거죠. 뿌리와 뿌리끼리 통하면은 그건 마음이 통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집으로 들어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그냥 들어오는 거지, 마음이 나가고 싶으니까 나간 거거든요. 그러니까 말로 해서 될 일이 아니다는 얘기죠.
그래, 그걸 가르쳐서 얘길 해 주면, 사실 줄창 얘길 하죠. 그러면 얼마 뒤에 “들어왔어요, 스님. 감사합니다.” 하고 전화를 해요. 그때 또 한마디 해 줍니다. “이거 봐! 들어왔다고 마음 턱 놓지 말고, 마음에다가 관하고 부드럽게 해 주고 부드러운 행동해 줘. 남편도 그렇고 자식도 그렇고 다 그런 거야. 남이 나를 잘해 줄 거만 생각하지 말고 내가 다 줄 수 있는 거를 생각한다면 그건 행복한 사람이다.”라고요.
질문자1(남) 감사합니다. 큰스님, 오래오래 만수무강하시고요, 저도 나를 죽여서 진짜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큰스님 우리가 지금 한 찰나 생각을 해 보시오. 죽으러 가는 길로 지금 가고 있잖아요. 하하하…. 죽으러 가고 있다고. 고정된 게 하나도 없이 그냥 (양 손을 서로 굴려 보이시며) 빙글빙글 돌아서 그냥, 그냥 죽으러 가고 있는데 뭘 더 죽겠다 덜 죽겠다 하느냐구. 허허허…. (대중 웃음)
질문자2(남) 제가 선원에 나오면서, 법문 듣고 환희심이 생겨서 처음에는 법문만 기다려지고 법회 날짜만 기다려지고 그랬는데, 그렇게 쭉 하다 보니까 여러 가지 체험을 하게 되고 그러니까 환희심은 더 생겼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어려운 일이 닥치니까 이제 환희심은 사라지고 진짜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 해서 이렇게 쭉 하다 보니까 이제 어려운 일 가운데서도 마음이 딱 쉬어지는 거를 알게 됐는데 그렇다고 해서 푹 쉬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간절해지질 않아서 ‘간절해지는 것도 당신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계속 관을 하다 보니까 자연히 간절해지긴 했는데, 어떤 일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그러려면 오직 주인만을, 내 주인만을 딱 믿고 가는 ‘오직’이 돼야 되겠다 해서 그렇게 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일 가운데서도 쉬어지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어려운 일 자체가 상당히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주인공 공부를 하면 종합적인 공부를 몰아서 하는 거 같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것을 녹여서 참사람이 되면 자동적으로 자기 근본이 드러나겠지마는, 저도 이제 나이가 오십이 가까워 오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늦는 거 같고, 그래서 먼저 자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녹여 나갈 수 있는 법이 있지 않을까 하고 질문 드리려고 했는데, 아까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을 다 하셨기 때문에 알고는 있는데 저에게 해당되는 말씀으로 좀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큰스님 아니, 뭐라고 그랬죠? (대중 웃음) 뭐라고 그랬어요?
질문자2(남) 저희가 계속 관을 하고 자기 업장을 소멸하고 이렇게 해 나가다 보면 자기 근본이 드러나서 자기를 발견하겠지만요, 그 전에 부족한 점도 많고 뭐, 여러 가지가 있더라도 우선 자기 근본을 먼저 발견을 하고….
큰스님 그렇게 이유를 붙이지 마세요. 이유가 붙어서 되는 게 아니고, 예전에 내가 걸어올 때 생각했던 거는 그게 아니거든. 빨리 이거를 해결을 해야겠다도 아니고, 이거를 안 해야겠다 이런 것도 아니고 단지 믿고, 믿고 그냥 거기에서, 내가 사는 게 아니라 그가 살게끔 하는 거. 내 마음은 거기에 둘 아니게 (양 손바닥을 서로 붙여 보이시며) 탁 믿어 버리고…. 그러니까 말로 할 수 없는 거지만 움죽거리게 하는 것이 그놈이 아니겠냐 이거야. 사실이지, 영원한 자기의 근본이 없다면 지금 모두 송장들일 거예요. 허허허…. 그러니 송장을 움죽거리게 만들어 가지고 자기가 다니는 거니까 뭐, 잘돼라 못돼라 할 것도 없고, 잘돼야 한다 못돼야 한다 이럴 것도 없는 거죠. 자기가 그대로 사는 거니까. 그리고 믿는다, 믿어라 이렇게 할 것도 없는데 그런 거죠.
질문자2(남) 그렇게 알고는 있습니다만 완전히 증득을 해서 아주 탁 쉬어질 정도로 하나가 되어야 되는데 알면서도….
큰스님 그렇게 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요. 그렇게 급하시면 그냥 무조건 믿고 닥치는 대로 그냥 거기 놓으세요. 감사하게 놓고, 되게 하는 것도 너다 하고 놓고, 모든 걸 그렇게 놓고 가세요. 마음이 급하고 급하지 않고 이걸 떠나서 그냥 닥치는 대로요. 거기에 진짜 묘미가 있는 겁니다. 정말입니다. 그렇게 서두르지 마시고요.
질문자2(남) 그럼 한 가지밖에 없는 걸로 알겠습니다.
질문자3(남) 청주지원에서 왔습니다. 큰스님을 스승님으로 모시고 제 나름대로 공부를 한다고 한 게 한, 4년여 되는 거 같습니다. 큰스님의 말씀이 가슴에 너무나 닿아서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또 ‘그래서 너는 죽은 거다’ 그렇게 생활을 하다 보니까 극락의 문턱까지는 온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큰스님 하하하…, 네.
질문자3(남) 그런데 도반들하고 서로 얘기를 하다 보니까요, 이 공부를 그냥 이 세상에서도 할 수 있는 거냐 아니면 산으로 들어가야 되느냐 이런 문제가 서로 대두가 돼 가지고 어떻게 하면 더 큰 법을 알 수가 있겠느냐 그래서 큰스님이 그전에 공부하실 때 얘기를 한번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부산에 계시면서 거기서 식당 같은 것도 하시다가 버리시고 산으로 들어가셨다고 했는데 왜 그렇게 하셨는지, 그게 궁금해서 나왔습니다.
큰스님 나도 모르죠, 그것은. (대중 웃음) 나 아닌 나가 아마 자기 몸뚱이를 형성시켜 가지고 끌고 돌아다녔는지 그거는 모르죠. 부처님께서는 그 과정을 나시기 이전에 이미 다 하시고도 나셔서, 부처님이 되셔서 또 그렇게 했어요. 그건 왜냐?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의의 나를 위해서죠. 알고 보니까 나 아님이 하나도 없는데, 그들이 바로 나의 입장이니까 그냥 모두 가르치기 위해서 또 고행을 이차적으로 했다는 얘기죠.
그리고 지금 그걸 말씀이라고 하는 겁니까? (대중 웃음) 예를 들어서 아수라장이라서 듣기 싫고 고달프고 그래서 산으로 떠난다 한다면, 먹지도 말고 입지도 말고, 허허허…, 뜨듯하게 불도 때지도 말고 사셔야죠. 모든 게 더불어 같이 사는 건데, 더불어 같이 사는 도리를 알아야 할 텐데 더불어 사는 도리를 다 내버리고 산으로 올라간다면 그럼, 아예 다 그냥 벗고 먹지 말고 살 테면 사세요. 허허허….
질문자3(남) 감사합니다. 그게 항상 의문이 가서요, 그래서 도반들하고 서로 대화를 할 때도, 사람들이 많이 사는 이걸 인산인해라고 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인산에서 산의 가시는 피할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의 가시를 내 스스로 치료할 수 없으면 안 되지 않느냐. 서로 이렇게 토론을 했는데도 왜 그럼 큰스님이 그때 그걸 버리고 산으로 가셨겠느냐. 그럼 산에 가서 공부하는 게 더 잘되는데….
큰스님 음, 그렇게 산으로 다니다 보니까요, 왜 산으로 다녔느냐 하는 거를 그때 생각을 하니까 물러서지 않는 패기, 두려움 없는 패기, 그리고 둘로 안 보는 패기! 그 모두를 기르기 위해서 그믐밤에 그냥 산이든 어디든지 두려움 없이 다니게 됐더라 이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렇게 길을 걸어 보니까 길도 없고 도도 없고 아무것도 없더라. 그러니 이렇게 내가 가르치는 것이 진짜 정상이다 이러는 거죠, 지금. 꼭 그렇게 하려면 미쳤다는 소릴 한번 들어야 하니까, 미쳤다는 소리 안 듣고도 할 수 있는데 왜 그러냐 이거죠. (대중 웃음)
질문자3(남) 분명히 미쳤다 소리 안 듣고서도 해탈을 할 수가 있는 거죠?
큰스님 할 수 있죠, 예.
질문자3(남) 고맙습니다.
큰스님 허허허…. (대중 박수)
사회자 질문이 없습니다.
큰스님 모두 도인들이신가 봅니다. (대중 웃음) 허허허…. 따지고 보면 걱정이 없으니까 말수도 없어지고, 마음이 뛰는 것도 없어지고 그렇게 돼요.
이 정신분열이라는 것도요, 내가 항상 말하죠.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인연이 되거든요. 인연이 돼서 이 몸뚱이 속에 주둔하게 돼 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이익하게 작용을 해 주기도 하고, 전자에 배신을 당하고 그랬던 인과의 인연은 그냥 나쁘게 작용을 해서 몸을 외려 망가뜨리죠. 그러니까 어떠한 정신분열이라도 타의에서 귀신이 들어온 거는 아니다 이거죠. 자의에서 일어난 건데 자의에서 일어나는 거를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자기의 불성 주인공밖에는 없거든요.
주인공이 그 의식을 다스리고 내 몸뚱이를 다스리고 그러는 거니까 거기에다가 다 밀어 던져야죠. 거기다 일임하고 ‘네가 안에서 그러는 거니까 너만이 해결할 수 있어.’ 하고 다 놓으면 그대로 정신분열증도 그냥 낫는데 그거를 안 하거든요. 그렇게 하지를 않아요! 그렇게 인식을 하지 않아요. 꼭 귀신이 나한테 들렸다고 생각을 하죠.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그게 유전이 되죠, 또. ‘아무것도 없다’고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생각을 잘못한 연관성으로 인해서 자기가 그런 거니까 무슨 유전성으로 이렇게 온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되죠. 아니, 하지 않아야 된다는 게 아니라 그런 게 없거든요. 그런데 사람의 생각들은 그게 아니거든요. 사실은 아무 걱정이 없다고요.
그러고는 또 이러거든요. 부모가 암으로 죽었으면 ‘아이구, 간장이 나쁘대. 아이구, 또 유전인가 보다.’ 아니 ‘유전인가 보다’ 그러는 게 아니라 ‘아버지도 그렇게 돌아가셨는데….’ 이러거든요. 허허허…. (대중 웃음) 그러니 이 생각이 얼마나 옹졸합니까, 응? 그리고 생각이 옹졸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패기가 없고 그렇게 떳떳하지 못하고 그렇게 약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약하게 생각을 하니까 약하게 되는 거예요.
왜? 자기가 약하게 생각을 하면 이 속의 의식들이 다 약하게 되는 거니까요. 그대로 따라요. ‘오늘 저녁에 도둑질하러 간다’ 그러면 그대로 여기 의식들이 따라 주고요, ‘오늘은 좋은 일 하러 간다’ 그러면 좋은 일로 또 따라 주고요. 그냥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뿐이에요, 여긴. 그러니까 생각에 따라서 몸을 튼튼히 할 수도 있고 약하게 되는 수도 있고, 과거의 업보로 인해서 벗어나지 못하고 당하는 사람이 많기도 하고 그렇죠. 하여튼 죽는 날까지는 살 거 아닙니까? 허허허….
그리고 또 한 가지는요, 식구들을 좀 보고 갔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한 사나흘만 있다가 가면 어때요? 그, 똥을 싸서 받아 내고 온통 식구들을 다 그렇게 고생을 하게 만들고 가야 꼭 속이 시원한가요? 내가 말하려는 거는요, 그것도 생각해 둬야 될 거예요, 아마. 사는 날까지 살다가 옷을 벗고 새 옷으로 바꿀 때, 그냥 그 자기 영혼만 딱 빼면 될 거 아니냐는 얘기죠. 병원에 가서 마취하면 살을 잘라도 모르게끔 되듯이 말이죠.
그건 자기가 용도에 따라서 모두 기발하게 생각해서 쓰는 거지, 누가 일일이 알려 주고 누가 일일이 그렇게 해 줍니까? 사람이 살다 보니까 아쉬운 거라든가 모두를 자기가 만들어서 그렇게 하는 거죠. 이거는 이렇게 고쳐서 써야겠다 하면 고치고 말이에요. 마음이라는 건 천리를 건너뛰어도 건너뛴 사이가 없는 겁니다. 예? 천리를 건너뛰어도 건너뛴 사이가 없다. 육체로는 문을 찾아서 열고 닫고 다니지마는, 마음은 문을 찾아서 그렇게 열고 닫고 다니지 않아도 다닐 수 있고, 천리를 건너뛸 수 있고, 건너뛴다는 소리조차도 없다, 이런 거죠.
하여튼 열심히 배워서 바깥에서는 바깥대로 이 마음의 도리를, 관하는 걸 가르쳐서 모두 이익하게 하시고, 안에서 스님네들은 스님네들대로 이익하게 남을 이끌어 주고 한다면 아마도 우리나라로부터 앞으로는…. 또 나라를 위해서 세계가 좋아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고립해서 사는 세계가 아니라 더불어 같이 사는 세계가 지금도 돼 있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이런 말을 해요. 우리나라 하나를 위하려면, 딴 나라를 위해 줘야, 즉 딴 나라의 일이 성사돼야 이 나라가 좋아진다는 거죠.
그래서 예를 들어서 얘깁니다. 병자도 천차만별이에요. 병자가 하나 들어오면 어떤 병자는 그냥 해도…, 어떤 병이나 또, 병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자꾸 죽고, 그냥 별 볼일 없게 가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랬을 때, 그거를 해결을 하려면 저승을 갔다 와야 되거든요. 그런데 몸뚱이로는 못 가는 데가 저승 아닙니까? 그러니까 지장으로 화(化)하든지 해야 갔다 올 수 있는 거죠. 그래서 한 집을 살릴 수 있다 이런 말이죠. 그런 거와 같이 남의 나라도 잘살아야 우리나라도 그렇게 잘살 수 있다 이거죠.
그런데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이 내가 나가면 잘한다고 말로만 그랬지 그것이 실행이 되질 않고 진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실명제로 인해서 아예 망한 거 아닙니까. 그것도 어느 정도지 흘러가는 물을 꼭꼭 그냥 막아 놓고는 어떻게 피가 돌고 살이 돌라고 그럽니까?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되면 사람의 몸뚱이를 딱 가둬 놓은 거와 같으니까 스위스나 뭐 이런 데로 다, 허허허…, 옮겨지죠. 나라의 돈이 다 그렇게 딴 데로 퍼지고 딴 나라로 나가고, 또 그렇지 않으면 얼마 안 되는 건 집에다가 그냥 쌓아 놓고 이렇게 한다면 문제가 많죠. 그렇지 않아도 이 나라는 지금 가뜩이나 반씩 나누어서 전세 살고 있는 셈인데 그럭하면 되나요?
그러니까 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들어왔다 나갔다 이래야 썩지를 않는데, 이 실명제로 딱 해 놓으면 문제가 생기죠. 그건 하나만 알지 둘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거예요. 물이 들어오는데 이 물 들어오는 걸 막고 꼬장꼬장하게 내 물만 요렇게 두려고 한다면 그 물은 썩어요. 결국은 없어지고요. 그래서 그것도 더불어 같이 사는 세계고, 우리나라도 더불어 같이 살아야 되기 때문에, 그냥 누구나가 마음 언짢지 않게 섭섭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주고 그러면서 돌아가는 게 월등히 더 발전도 되고, 의합 되고, 도깨비들도 생기지 않고, 강도들도 생기지 않고, 만약에 있다 하더라도 아주 소수에 가깝죠. 그렇게 해야 하는데 이거는 하다못해 빵 장수의 돈까지 묶어 놓은 셈이니까요. 허허허….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의 지혜에 모두 달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말할 것은요, 우리가 ‘불교’ 하면 진리가 불교인데 불은 생명이요 교는 바로 생활인데, 내 종교만 제일이고 남의 종교는 다 아니라고 하는 대통령은 그건 대통령 자격이 없죠. 그건 대통령이라고 할 수 없는 거죠. 어느 종교를 막론해 놓고 다 싸안아 줄 수 있고 펴 줄 수 있는 사람이라야만이 그건 대통령의 가치가 있는 거죠. 아, 요 주머니 안에서 자기가 대통령 노릇을 하는 것도 미안할 텐데, 하하하…, 아이, 요 주머니 속의 한 귀퉁이에서, 또 그것도 한 귀퉁이를 막아 가지고, 그것도 반쪽씩 나누어 가지고 들어앉아서 그러는 그게 할 일이에요? 공기주머니 하나를 버스라고 할 때 버스 안에서 걸상 하나씩 틀어쥐고 앉아서 이거는 내 거라고 하는 격인데 어떻게 그 버스가 목적지까지 가겠습니까?
말을 하다 보니까 지나치게 한 거 같죠? (대중 웃음, 박수) 말 잘못하면 뭐, 붙잡혀 간다는데…. 그 뭐 나는 하나도, 붙잡혀 가든지 말든지…. 요말 했다고 붙잡혀 가지는 않겠지. 날 붙잡아다가 뭐 하겠어요, 또? 날 붙잡아 가도 같이 지옥에 들어갈 테니까. (대중 웃음, 박수)
※위 법문은 1997년 12월 7일 법형제 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