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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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사랑 준 엄마로 남고 싶어요”

“아무래도 아들 녀석이 삼수를 해야할 것 같네요. 이번에도 점수가 자기 생각만큼 안 나온 것 같아요.” 그 말을 하며 정씨는 웃고 있었다.
“지나 나나 또 고생이겠지만, 그래도 감사한 마음만 들어요. 정말 감사하거든요. 이해가 잘 안 가시죠?” 정씨는 또 밝게 웃었다.
아들이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정씨는 웃을 수가 없었다. 아들은 성적이 중간 정도여서 도무지 대학을 갈 수 있을지 안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매일 공부하라 잔소리하고 오로지 성적에만 신경 썼다. 특히 친구들의 자녀가 공부 잘 한다는 말을 들을 때는 화가 나고 속상했다.
“너는 왜 좀 더 열심히 안 하니?” “엄마, 나도 잘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걸 어떡해요.” “공부해서 남 주나 뭐, 다 자기 잘 되라고 하는 건데.”
결국 정씨는 항상 공부 못 하는 아들에게 불만이었다. “아유, 제발 공부만 좀 잘해 주었으면! 저러다 대학도 못가면 어쩌려고.” 웃는 얼굴로 대해지질 않았다.
도무지 따뜻하고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없었다. 아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하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 중3이 되자 아들 공부 잘 하게 하려는 마음에서 친구 따라 절에 나가기 시작했다. 기도라도 하면 좀 달라질까 해서였다. 그러나 아들 성적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정씨는 “이제 삼수한다는 아들에게 감사하는 이유가 궁금하시죠?” 하며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절에 다니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전화가 왔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집 아들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정씨 아들보다 한 살 많은 고등학생이었다. 공부를 잘 해서 늘 정씨가 부러워하는 집이었다. 전해주는 다른 엄마가 “학교에서 돌아오다 교통사고가 났대요.” 믿어지지 않았다. 영안실에 갔다. 그 엄마는 실신해서 일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정씨는 멍한 상태에서 영정 앞으로 가 절을 했다. 절을 하고 일어나는 순간 앗! 하고 휘청하며 넘어질 뻔하였다. 영정의 사진이 순간 자기 아들 얼굴로 보였던 것이다. 가슴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주위 사람들이 놀라며 “괜찮으세요? 조심하세요” 했다. 정씨는 자기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 통곡하며 울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제가 그 아들 때문에 울어주는 줄 생각했을 거예요. 너무 죄송하지만 그 때 그럴 정신이 없었어요.”
정씨는 그 순간 난생 처음으로 자기도 아들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만일 그 애가 아니라 우리 애에게 사고가 났다면, 전 아마 살 수가 없었을 것 같아요.” 그 날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오자마자 아들 방에 가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다녀왔습니다” 하는 소리가 들리고 아들이 방문을 열었다. “아니, 엄마 뭐 하세요?” “응, 아니다” 하고 정씨는 가서 아들을 꽉 껴안았다. 아들은 놀라서 “엄마, 왜 그러세요?” “아무 일도 아니다. 그냥 네가 고마워서. 얘야, 너 많이 힘들었지. 엄마 때문에. 만날 공부하라는 말만 하고 미안해, 미안해.” 정씨는 또 울음이 터졌다. 아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때 가슴 속에서 저절로 ‘감사합니다’하는 소리가 나오는 거예요.” 그래, 살아있어 주어서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마치 염불 하듯이 그 소리가 정씨 가슴을 맴돌았다.
그 날 이후 정씨의 기도는 바뀌었다. 매일 남편과 아들이 건강하게 살아있어 주는 데 대해 감사하게 됐다. 아들 성적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재수를 하게 되었지만 정씨는 불평하지 않았다. 자기가 가고 싶은 대학에 꼭 도전해 보고 싶다는 것이다. “한 번 더 삼수한다고 하면, 아마 예전의 저라면 열불이 났을 거예요.” 인생에 한번 뿐인 젊은 시절에 아들이 원하는 대로 뒷바라지해주고 싶다고 한다. “언제 이 애와 헤어져도 사랑해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성적이나 대학이름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내 새끼로 그냥 받아주고 사랑을 준 엄마로요. 다 부처님 덕분이지요.” 그러더니 슬며시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그 엄마는 평생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 것 아닙니까. 해마다 대학 입시 때가 되면 얼마나 아들 생각이 나겠어요. 그 아들영가를 위해서도 기도 드립니다.”
황수경(동국대 선학과 강사)
200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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