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者辯眞正禪發相 行者若於坐中發諸禪時 無有如上所謂諸邪法等 隨一一禪發時 卽覺與定相應 空明淸淨 內心喜悅 擔然快樂 無有覆蓋 善心開發 信敬增長 智鑒分明 身心柔軟 微妙虛寂 厭患世間 無爲無欲 出入自在 是爲正禪發相 譬如與惡人共事 恒相觸惱 若與善人共事 久見其美 分別邪正二種 禪發之相 亦復如是 三明用止觀長養諸善根者 若於坐中諸善根發時 應用止觀二法修令增進 若宣用止 則以止修之 若宣用觀 則以觀修之 具如前說 略示大意矣
두 번째로 진실하고 올바른 선정삼매에서 일어난 선근의 모습에 대해 밝히고 있다. 수행자가 좌선을 하는 가운데 모든 삼매가 발현할 때는 마음속으로 애증의 감정을 일으키지 않고 놀라지도 않으며 앞에서 설명했던 갖가지 삿된 선정없이 낱낱이 텅 비고 밝고 청정해야만 한다.
그것은 마치 만 리의 푸른 하늘에 끝내 한 물건도 없는 것처럼 자기의 마음가운데 한 가지 천연적인 오묘한 즐거움만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하며 또한 내 마음을 번뇌가 뒤덮는 일도 없어야 한다. 그것은 지혜로 분별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 삿되고 거짓되고 오염된 법과 서로 일치하지 않게 되는데 이것을 진실하고 올바른 선정에서 발현한 선근의 모습이라고 한다.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우리의 마음은 본래 선도 악도 아니고 단지 선악의 인연을 따르는 가능성이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그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선성으로 일어 날 수도 있고 악성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가령 악인과 함께 일을 하면 무명 번뇌가 진여를 훈습하여 즉시 진여가 무명번뇌를 따라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은 항상 번뇌와 저촉하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선한 사람과 공동으로 일을 하면 진여가 무명을 훈습하게 되고 무명이 진여의 훈습을 받기 때문에 이와 같은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좋은 일을 보게 된다.
이는 옛 성인이 말했던 “선한 사람과 사귀면 마치 향기로운 방으로 들어가 오랫동안 있으면 향기와 하나로 조화되는 것과 같고, 반대로 악인과 교제하면 마치 어물전에 가서 오래토록 있으면 그 냄새와 하나로 조화되는 것과 같다”라고 한 경우에 해당된다.
수행인이 선정삼매에서 발현한 모습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분별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의미이다.
세 번째로 지관수행을 통해서 선정삼매를 자라나게 한다는 것에 대해 밝혔다. 수행인이 좌선하는 가운데 안과 밖으로 일체 선근이 개발될 때에 반드시 지관수행을 닦아서 선근이 더욱 자라나게 해야만 한다.
그것은 지 수행을 해야만 할 경우 지를 닦고, 관 수행을 해야 마땅하다면 관 수행을 하여 지와 관을 혼란스럽게 닦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종류의 지관수행 법문은 앞장의 정수행장에서 자세히 풀이한 것과 같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그 의미만을 대략 제시할 뿐이다.
覺知魔事 第八
梵音魔羅 秦言殺者 奪行人功德之財 殺行人智慧之命 是故名之爲惡魔 事者 如佛以功德智慧度脫衆生 入涅槃爲事 魔常以破壤衆生善根 令流轉生死爲事 若能安心正道 是故道高方知魔盛
본서는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7장까지는 설명은 끝났고 지금 8장에서는 수행자의 깨달음과 마군의 일에 대해 밝히고 있다.
수행공부가 더욱 순수해지고 깊어지면 마왕이 기회를 틈타 수시로 찾아와 수행을 방해하고 선근을 파괴한다. 따라서 마군이 찾아오면 반드시 그것을 깨닫고 알아 그에게 미혹을 당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마군은 범어로는 마라(魔羅)라고 하며, 한문으로 번역하면 살자(殺者)이다. 마군은 수행인의 공덕법을 빼앗고 지혜의 생명을 죽이기 때문에 그를 ‘악마가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육신과 마음이 임시로 연대하여 일정기간 유지하는 것을 말하지만, 모든 부처님은 지혜부처의 종자로서 생명을 삼는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마군의 일과 부처님의 일은 까마득히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부처님의 일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육도만행으로 중생들을 개과천선하게 하여 미혹을 깨달음으로 전환하고 괴로움을 떠나 안락함을 얻게 하는데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밖에 따로의 법문이라고는 없다. 이는 이른바 생사를 떠나 열반을 증득하고 미혹을 버리고 피안에 오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마왕의 일은 이와는 정반대이다. 그는 항상 중생의 선근을 파괴하여 생사로 유전하게 하는 것을 자기의 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생사고해에 빠져 있는 한량없는 중생은 모두 마왕의 자손이라는 점을 알아야만 한다.
가령 어떤 한 중생이 청정한 수행을 하여 생사에서 벗어나면 마왕은 즉시 진로심을 일으키고, 생사를 따라 유전하면 환희심을 일으킨다.
올바른 도에 마음을 안주하면 도가 높아지고 도가 높아야만 마군이 성대함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내적인 마군과 외적인 마군이 수행인을 교대로 공격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행을 할 경우 마왕은 즉시 찾아와 수행을 하지 못하도록 마음을 요란하게 뒤흔든다.
우리의 현전 일념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두루 보편하다. 만일 이러한 마음이 망상으로 어지러울 때에는 마군이 그것을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한 생각 망상도 일으키지 않고 본래 밝은 마음이 환하게 드러나면 마군의 궁전이 진동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세존께서 설산에서 고행하고 성도하려 할 때 마왕의 궁전이 진동하였는데, 그때 마왕은 세존 한 사람이 성도함으로써 많은 사람이 따라 수행하여 마왕의 경계를 벗어나 마군의 백성이 감소할까봐 매우 두려워했다.
이때에 마왕은 마군의 병사에게 명령하여 세존을 교란시키라고 하였으나 세존을 대광명신통장에 이미 깨달아 들어갔기 때문에 한결같이 마음이 담연하여 일체제법은 법마다 모두 실제의 이치라는 것을 명료하게 통달하였으므로 모든 마군의 병사들이 그 어떤 방법도 써 볼 수가 없었다.
마왕은 다시 자기의 딸을 시켜 유혹하게 하였으나 세존은 신통력으로서 마왕의 딸을 추한 여인으로 변하게 하여 그들 스스로가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 후 마왕은 자신이 직접 찾아와 세존의 성도를 방해하려고 하였으나 그도 역시 세존에게 항복을 당하였다. 그 때문에 팔상성도 가운데 항마의 설이 있게 된 것이다.
도가 높아야만 마군이 왕성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도가 한 자 높으면 마군은 열 자가 높아진다고 한다. 이를 잘 분별해야만 한다.
그러나 마군을 봐도 마군으로 여기지 않으면 그 마군은 스스로 파괴되고, 괴이한 일을 보아도 괴이하게 여기지 않으면 그 괴이함이 스스로 무너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평등하여 가이없는 올바른 생각으로 한계가 있는 마군의 일을 소멸하는 것은 마치 끊는 물속에서 얼음이 녹는 것과 같다.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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