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인류가 지닌 서로에 대한 ‘보편책임’
불교윤리학자 키온… 오계서 출발한 의무이자 권리
불교인권학교 3강
강 사 : 안옥선 교수(순천대 철학과)
주 제 : 부처님 사상에 입각한 인권개념
일 시 : 2008년 11월 18일
주 최 : 국가인권위원회
주 관 : 종단협 불교인권위원회
장 소 : 전국비구니회관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은 2008년. 전국비구니회관에서 비구니스님을 대상으로 1박2일간 ‘불교인권학교’가 열렸다.
불교인권학교에서는 불교인권의 개념과 이론, 그에 대한 교리적 근거를 배우고, 이를 토대로 불교가 우리 사회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인권향상 방안이 모색됐다.
불교인권학교 3번째 강의 안옥선 교수의 ‘불교와 인권’ 세계로 들어가 보자.
# 불교인권의 전제
불이·자기보존·자비
불교의 인권을 논의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고려돼야 할 개념은 불이(不二), 자기보존의 보편성, 자비다. 이 세 개념은 불교인권에 전제돼 있으면서 불교인권을 그대로 나타내주기 때문이다.
불이는 인권(人權)이 인권에 한정될 수 없고 모든 존재의 안녕까지 보장해야 함을 의미한다. 자기보존의 개념은 타자보존 및 모든 존재의 이고득락(離苦得樂)의 욕구 인정 또한 포함한다. 자비는 그 요청의 논리상 권리와 의무의 개념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 우리 자신에 대한 보살핌을 주장함과 동시에 타인과 타존재에 대한 보살핌의 책임을 지고 있다.
# 달라이 라마 ‘불교인권론’ 대표적
1993년 단체 및 정부 세계회의에서 달라이 라마(Dalai Lama)가 피력한 불교인권론은 인권을 보는 불교의 기본입장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인권과 관련해 ‘보편책임(universal responsibility)’을 피력한다. 그는 “전 지구의 인류는 한 가족처럼 국경 없는 세계에 살고 있어서 한 국가의 영향력은 다른 나라에까지 미치고 있으므로 범지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달라이 라마에 의하면 보편책임은 무국경적 현실과 상호의존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달라이 라마는 ‘보편책임’이라는 말을 분명하게 개념정의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은 ‘우리 모두가 세계의 모든 동료 인간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예컨대 지구 어느 한쪽에서 누군가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면, 우리들 모두가 그에대해 항거해야 한다. 형제자매가 학대당하는 것에 항의해야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전 인류가 우리의 형제자매이므로 전 인류를 대상으로 그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이러한 ‘보편책임’을 인류생존을 위한 열쇠로서 인류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서, 그리고 인류가 함께 번영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제시한다. 그는 인간 개개인의 행복은 인류 공존적 번영 없이는 확보될 수 없다고 본다.
현대 불교윤리학자 키온(Keown)은 ‘불교인권’을 의무에서 권리까지 확장시킨다. 그는 불교인권이 오계(pancasila)로부터 도출된다고 말한다. 그는 계가 일종의 약속으로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며, 수계하는 것은 불법이 제시하는 지켜야할 의무를 형식적으로 시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키온은 계의 의미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고 부연하며, 계로부터 권리의 개념을 도출한다. 예컨대 첫 번째 불살생계가 의미하는 권리는 부당하게 죽임당하지 않을 권리로, 희생자가 갖는 권리는 공격자에 대한 부정적 청원권으로써 죽임을 당하지 ‘않을’ 권리인 것이다.
희생자는 공격자가 존중해야할 의무인 생명권을 갖듯이 의무의 성격을 지닌 계들은 각각 권리로 환원된다. 생명권뿐만 아니라 불투도계로부터 자신의 재산을 도둑질 당하지 않을 권리(재산권), 불사음, 불음주계로부터 충실하고 신뢰의 결혼을 보장받을 권리와 개인의 안전권(사회권, 사회안전권), 불망어계로부터 거짓말 당하지 않을 권리(인간존엄)가 생겨난다.
# 불교인권 성립근거는 ‘불성’
불교인권 성립의 근거는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부처 될 도덕적 가능성’과 ‘불성’에서 찾아진다. 이 두 개념은 외연에 있어서 차이는 있지만 그 태생과 지향점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서 모든 사람이 예외없이 평등하게 태어나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천명한다.
‘도덕적 가능성’으로 인해 우리는 어떤 인간에 대해서도 포기할 수 없고 버릴 수 없는 절대적 신뢰를 갖는다. 짐승같은 행위를 하는 자라도 결코 짐승일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인간은 결코 소멸될 수 없는 도덕적 가능성으로 인해 짐승과 비교될 수 없는 존엄성을 갖는 것이다. 인간 모두가 갖는 ‘도덕적 가능성’으로 인해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하는 인권의 존재인 것이다.
인권의 성립근거가 이와 같이 인간의 ‘도덕적 가능성’ 혹은 ‘도덕적 능력’에 있다는 것은 인권실현의 문제 또한 근본적으로 법적, 정치적, 사회적인 강제적 구속력보다 인간의 도덕성 개발과 성숙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권실현에 있어서 외적 강제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내면화된 도덕성의 발현이라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인권의 실현범위를 우리 자신만의 인권수호나 타자의 인권보호에 한정하지 않고 약자의 인권에 대한 적극적 보호와 자발적 배려까지 확대하려면, 그 무엇보다도 우리들 각자 고양된 내적 도덕성을 필요로 한다.
# 불교인권 원칙은 ‘연기’ ‘평화’
불교인권 실현의 원칙은 연기적 원칙과 평화적 원칙이다.
‘연기적 원칙’은 인권인식과 실현에 있어 연기의 이치에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인간존재의 실상을 독립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으로 파악하고 자신과 타자의 인권을 함께 실현하는 것이다.
‘평화적 원칙’은 세가지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일차적으로 어떠한 폭력에 직면해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고부동한 ‘무한한’비폭력의 태도로 이해될 수 있다. 둘째로 보다 적극적인 불살생, 자비, 자애하는 덕목을 통해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악에 대한 교화의 태도를 통해 나타난다. 악을 악으로서가 아니라 악 내면의 선을 봄으로서 일체의 폭력을 배제한다. 불교가 실천코자 하는 평화는 언어ㆍ행위를 통해 나타나는 외적 폭력뿐만 아니라 마음의 폭력상태까지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 인간·동물·만존재 존중
블교적 관점에서 인권은 인간존중에 국한되지 않고 만존재의 존중까지 확장된다. 연기, 공, 무아의 불교적 세계관에 의하면 인권은 인권만으로 달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권, 동물존중, 만존재 존중의 개념은 모두 연기에 근거한 개념으로서 자비의 실천을 요청한다. 불교적 관점에서 ‘존중’은 다름과 차이를 인정한 ‘평등’으로 풀이될 수 있는데, 그것은 만존재의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자신을 대하는 것과 같은 태도로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각 개체의 차이를 인정하고 차별심없이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다.
‘다름의 존중으로서의 평등’은 존재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는 동체자비의 실천을 의미한다.
# 인권 보장 및 신장에 불교 사상 필수
인권은 법의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도덕의 문제다. 인권은 실정법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당위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대에는 아직 실정법화 되지 않은 수많은 인권들이 법과 도덕사이에 잠재적 형태로 놓여있다. 도덕적 권리의 최소치로서 법적 권리를 지니는 우리의 현실로 보아 법의 현실을 넘어 도덕적 당위를 실현하는 인권 보장과 신장에는 불교사상의 기여는 필수적이다.
현재까지의 인권은 인간만을 생각하는 인간중심 경향이 짙다. 만존재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진정한 인권도 가능하다는 불교인권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 이를 생태, 환경까지 확대하는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리=노덕현 기자 dhavala@buddhapia.com